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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Nov 02. 2023

02. 오늘은 결항되지 않고, 프라하에 갈 수 있나요?

프라하가 아닌, 뮌헨에게 선택받은 우리


02. 환승비행기가 결항이 되고, 낙오된 사람들끼리 급하게 잡은 숙소에서도 어찌저찌 밤은 지나갔다.
오늘은 프라하에 꼭 가야 한다.



이 글과 함께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https://www.youtube.com/watch?v=i2aoEd3oakE








눈이 번쩍 떠졌다. 시차 때문인지, 불안한 마음 때문인 건지 4시간 밖에 자지 못했음에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짐을 챙겼다.


사실 당시의 나의 감정 상태로는 여행에만 집중하긴 조금 힘들었다. 한국에서부터 내 머릿속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개인적인 일 때문이다. 아마 눈이 번쩍 떠진 것도 이 때문이겠지. 해결되지도 않을 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런 내가 너무 안쓰럽기도 하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그 당시에도 알았지만, 그냥 지금 내가 힘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그 일을 붙잡고 있었다.


눈을 뜨니 또 그 일이 가장 먼저 떠올라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일로 정말 진심으로 행복했었기 때문에, 그 일을 잃는 과정이 유독 더 배가 되어 돌아와 힘들었나 보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고 사람들과 함께 다시 공항으로 가기 위해 도미토리 직원에게 길을 물었다. 하지만 물은 것이 무색하게도 나오자마자 모두 길을 잃었지만, 우리는 낙오를 당해도 이렇게 멋지게 숙소에서 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이 정도는 당황의 축도 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뮌헨역에 도착했다.


공항에 가기 위해 기차티켓을 끊으려고 하는데, 티켓 기계가 있는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표지판이 잘되어있다.


그렇게 역 내부를 샅샅이 뒤져보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 우리 어제부터 기내식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었지 참.’


눈동자에는 점점 티켓 기계가 아닌, 음식들의 상이 맺히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티켓을 끊은 우리는 만장일치로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케밥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케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독일에서 케밥을 처음 먹어보다니..! 터키 기준으론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가까우려나? 그럼 조금 더 맛있는 케밥이겠거니하곤 주문을 했다.


“Where are you from?”


주문을 하는 우리에게 스몰토크를 걸며 주문을 받는 사람들. 이젠 우리 이름까지 묻는다. 그새 우리도 신나 각자의 이름을 합친 뜻까지 친절히 대답해줬다. 이름을 합치면 어떤 의미가 있는 쌍둥이들은 아마 익숙한 대화 레퍼토리일 것이다.


이 대화를 마치고보니 여름의 오스트리아 소시지집이 떠오른다. 아, 그러고 보니 이틀 후면 비엔나에 가는 데 그 소시지 집에 다시 가볼까 싶으면서도 당시 ‘왜 여기가 맛집이냐’라고 했던 대화가 머릿속을 지나친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소식자인 나는 쌍둥이와 케밥 하나를 반으로 나눠 먹기 시작했는데, 케밥과 함께 시킨 환타를 보니 바로 전 직장 직원분이었던 일명 알쓸신잡 아저씨가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당시 독일은 미국 코카콜라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마시는 나라였던 만큼, 탄산음료의 인기가 상당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과 미국이 적대국이 되자 공급이 중단되어 독일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마시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마실 수 있는 탄산음료를 개발했고, Fantasy를 뜻하는 독일어 ‘Fantasie’를 본따 ‘Fanta’가 탄생했다. 당시 독일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나치를 통해 이미지가 확립된 상황인지라 전쟁이 끝나고는 잠시 판매가 중단되었지만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하며 재출시에 성공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항상 새로 알게 되는 지식들을 많이 알려주셨는데, 이게 이렇게 기억이 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예술교육을 담당하셨던 분이라 유독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내 또래 직원들에게 해주시곤 했다.


언젠가 지식의 원천이 어딘지 궁금하여 여쭤봤더니 출근할 때마다 듣는 라디오라고 하셨다. 나도 운전을 하고 다닐 때가 온다면 라디오를 들어야지 했는데, 그러고 보니 올해 초 운전면허를 딴 게 참 잘한 일이다.







이제 슬슬 기차를 탈 시간이다. 기차에 오르니 잠시 후, 흰 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열차. 가는 방향이 맞는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분이 티켓 펀치를 찍지 않아서 불안해하셨다.


‘오, 생각해 보니 왜 안 했지?’


급하게 찾아보니 역무원이 펀치를 하지 않은 티켓을 발견하면 벌금이란 이야기까지 있었다. 이 불안함은 모두에게 전염이 됐고, 결국 다음 역에 문이 잠깐 열리는 틈을 타서 몇 사람들이 펀치를 해오기로 했다.


띠띠-


열차 문이 열린다. 세 사람이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가 펀치 기계를 찾는다.


어어- 잠시만, 문이 닫힌다.


사실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아 닫힌 거였는데 우리 모두는 그 당시 쫄보였기 때문에 문이 닫히는 것에 놀라 그대로 다시 열차에 타고 말았다.


펀치 기계를 포기하고 다시 좌석에 앉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끊은 티켓 종류는 펀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권이었다. 불안감이 사라지자 방금 우리가 했던 이 시트콤 같은 상황이 너무 웃겨 다들 오랜만에 마음을 놓고 웃었다.







열차를 타고 뮌헨 공항에 다시 왔다. 공항 외관은 그러고 보니 처음 본다. 이 커다란 뮌헨 공항에서 공항도둑처럼 쫓기듯 나온 우리의 모습이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이란 게 믿기지 않았다.


공항 주변에는 크리스마스마켓이 작게나마 열려 있는 모양이다. 호두까기인형 모형을 보니 새삼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럽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분명 독일 크리스마스마켓도 꽤 크댔지. 그래서 프라하에서 근교로 드레스덴에 가자고 한국에서 토론을 하다 결국 프라하에만 있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어제오늘을 보니, 어떻게든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마켓을 볼 운명이었나 보다.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한들, 서비스센터는 꼭 가야 한다. 루프트한자 서비스센터로 가 우리의 상황을 읊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받은 답변은 ‘온라인으로 문의하라’였다.


이 답변을 받기 위해 어젯밤부터 공항에서 밤을 새운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참..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탑승구로 왔지만 비행기가 뜨기 전까지는 결항은 모른다. 어제도 잠에 들어서 몰랐다지만 30-1시간은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로 있다가 내린 상황이었다고 한다. 오늘까지도 프라하에 못 가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심란해지고 있을 때쯤, 비행기 탑승을 시작한다.


우리는 제일 끝 좌석이구나.


비어있는 좌석을 급하게 우리에게 대체항공편으로 전달한 모양인지,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한국분들은 다들 뒤쪽 좌석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눈이 덮인 뮌헨을 밑으로 하고 점점 더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다음이야기

https://brunch.co.kr/@daawooon/24




*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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