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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Oct 30. 2023

01. 뮌헨 환승 비행기가 결항됐다.

비행기에서 맞이한 결항 소식, 그대로 비행기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01. 우린 분명 프라하에 있어야 하는데, 예정에도 없던 독일 여행 중



비행기 티켓을 한 달 하고도 15일 전에 끊어놨음에도 이번에도 우리는 계획도 없이 무작정 유럽으로 향한다.

여름에 다녀온 유럽여행에서도 계획 없이 잘 놀았으니, 이미 자신만만이다.


이 글과 함께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https://www.youtube.com/watch?v=XUyNvlglCl4








인천국제공항에 가기 위해 KTX에 몸을 실었다.

인천이라.. 내가 벌써 인천에서 본가에 내려온 지도 4개월이 지났구나. 대학교 생활을 인천에서 보낸 터라 20대 전부를 인천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헛헛한 마음을 겨우 잠재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공항이다.


이번엔 튼튼한 캐리어를 들고 왔으니 문제없다. 그러고 보니 저번 여행이 참 힘들었구나 싶다.

(참고 : #02화 비행기 탑승구에서 캐리어가 고장 났다. https://brunch.co.kr/@daawooon/2)




생각보다도 일찍 도착한 공항. 쇼핑엔 쥐약인 나는 면세품에 관심이 없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우리가 탈 항공사의 기내식이 맛없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아, 자리가 없다.


공항 식당이 맛집이란 게 어디 방송이라도 탔는지 이 한 몸 앉을 공간이 없다. 식사를 포기하고 여유 있게 비행기에 들어가자고 말했지만, 음식이 가장 중요했던 쌍둥이는 이미 메뉴까지 다 고른 모양이다. 기어코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쌍둥이는 젠틀몬스터 안경을 사야겠다며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면세점을 찾아보겠단다. 이미 해탈한 나는 자리에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쌍둥이가 다시 돌아와 여기엔 젠틀몬스터가 없다며 아쉬워한다.


그리고 다시 벌떡. 이제는 어느 쪽으로 가야 가장 빠르게 수속을 밟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오겠단다. 그냥 밥 나오면 후다닥 먹고 빨리 가면 안 될까?


그렇게 자리를 비우니, 우리 음식이 나왔다. 급하게 연락을 넣어 자리에 겨우 복귀시킨 쌍둥이와 함께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반 정도 먹었던가, 시간을 보니 이미 늦었다. 쌍둥이가 알아온 위치는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이미 늦었으니까. 우리도 좀 평범하게 수속 밟으면 안 될까? 결국 앞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한자리 한자리 앞으로 나아간 우리다.


아, 하필 우리가 탑승할 구역이 공항 가장 끝에 있다니. 탑승 지옥편이 따로 없다. 방송으로 우리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라톤 마냥 직원분들이 우리를 보고 쉬지 말고 뛰라고 말하셨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겨우 탔다. 우리가 이 비행기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타자마자 비행기 입구가 닫힌다. 차라리 캐리어 지퍼 터진 게 나았을지도 몰라.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한가득이었고, 한참을 달려온 탓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 정말 유럽에 가는구나.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시작하고, 안정권에 접어들자 캐리어에서 핑크 슬리퍼를 꺼내 들고 편안하게 스도쿠게임을 시작했다. 기내식이 리뉴얼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도 꽤 괜찮았던 기내식과 화이트 와인, 그리고 스도쿠 게임. 폐쇄공포증이 있어 장시간 비행은 힘들면서도 이 시간이 제법 마음에 들기도 했다. 워낙 현생에서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을 때라 그랬던가. 아 생각하니 또 현생이 떠오른다. 생각하지 말자.







첫 번째 목적지는 뮌헨이다. 참, 뮌헨 여행은 아니다! 우리는 이곳을 경유하여 프라하로 향할 것이다. 얼른 프라하에 도착해 한인민박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향해서 귀여운 장식품도 사야지.


10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니 뮌헨에 도착했다. 고등학생 때 독일어를 조금 배웠다고, 처음 와본 독일에 향수병이 느껴진다. 아 혹시 향수병이 아니라 허세인 건가?


뮌헨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맥주를 찾기 위해 공항 안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 여기 있다! 라들러(Radler)!

기분 좋게 라들러를 들고 계산대로 가니, 점원도 싱긋 웃어준다.





라들러는 독일 남부지방에서 즐겨마시는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혼합한 음료로, 탄생에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자전거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술집을 오픈했지만, 너무나 큰 인기로 맥주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창고에 있는 레모네이드를 맥주와 섞으면 양을 늘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업가가 만든 맥주가 바로 라들러! 독일어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를 마신 후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유래만 봐도 느껴지는 맥주의 맛. 전혀 알코올처럼 느껴지지 않은 달콤하다!

맥주 하나를 쌍둥이와 나눠 마시고, 탑승구로 가니 뭔가 조금 이상하다.







[프라하행 : 2시간 지연]



2시간 지연이라고? 프라하에 도착해서 숙소에 가면 너무 늦은 시간이라 미리 숙소에 연락을 넣어놔야겠다. 아니,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넣어두는 게 나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거진 3시간은 기다린 후에야 비행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잠 한숨도 못 잤으니 비행기에 타자마자 나는 바로 기절했다.








눈을 뜨니, 비행기가 멈춰있다. 아 벌써 도착한 건가? 아니다. 분위기가 무언가 심상치 않다. 독일어와 영어로 뒤이어 나오는 기내방송. 사람들이 항의를 하며 짐을 챙기고 밖으로 향한다. 잠결에 들었지만 분명 결항 소식이었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 우리는 그렇게 무작정 독일 뮌헨에서 낙오되었다.


해결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신들은 이미 퇴근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일 안내데스크로 가보라는 이야기만 던져놓곤 항의하는 사람들을 피해 그 자리를 벗어난 직원들. 외국인들은 모두 자기 살 길을 찾아 주변 호텔로 떠난 모습이었고, 결국 그 자리엔 한국인들만 남았다. 꽤 많은 수의 한국인들끼리 어찌어찌 상황을 파악하고자 모였는데, 그때 울리는 알림음. 대체항공편이 잡혔다.


그런데 그 대체항공편의 시각이 모두 제각각이다. 심지어 동행들끼리도 맞지 않은 항공편. 2시간이면 가는 프라하를 어떤 분은 환승 편이 잡혀 6시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더욱더 분노가 차올라 공항에서 노숙하고 아침 6시 안내데스크가 오픈하자마자 가서 따지겠다고 말하는 분도 계셨다. 다행히 나는 쌍둥이와 같은 직항 항공편이 걸렸지만 낮비행기라 다음날 프라하 일정은 물론, 지금 우리가 잡은 숙소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이 공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같은 항공편인 사람들끼리 뭉쳐 주변 호스텔이라도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이 7명. 늦은 시간이라 공항 입출구가 대부분 막혀있었고, 모두가 수속을 밟은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항을 벗어나는 것조차도 허둥지둥 이었지만 가까스로 청소부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겨우 벗어났다.


대형택시를 잡아 이 추운 뮌헨을 돌아다니는 우리들. 심지어는 다들 현금도 없어 신용카드로 결제했어야 했는데, 우리가 대장이라고 부른 이 언니가 없었다면 다들 쭈뼛쭈뼛 무언가 시작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그리고 이 언니와는 아직도 종종 연락하고 지낸다)







8인실인 호스텔에 들어오자 모두 자신들의 짐들을 공유했다. 짐은 이미 모두 비행기인지, 프라하인지에 넘어가있었기 때문에 잠옷조차도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공용으로 쓰기 위해 간단한 폼클렌징, 로션 등을 내놓는 모습이 타지임에도 가족을 만난 듯 든든했다. 심지어 화장실을 쓰는 순서도 각자 양보의 미덕을 보여줬다. 그리고 막내축에 들었던 내가 마지막으로 씻고 침대에 눕자 드디어 방의 불이 꺼졌다.


우리 7명의 조합은 사실 상당히 신선했다. 혼자 여행 온 사람, 어머니와 함께 여행에 온 딸, 신혼부부, 그리고 우리 쌍둥이. 각자 이곳에 온 이유는 모두 달랐지만 갑작스럽게 뮌헨에서 보내게 된 이 상황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던 건 이분들 덕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나 프라하로 갈 수는 있는 거야? 보상도 엄청 복잡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일이 도대체 어떻게 풀릴려나. 아, 우선 5시간 채 자지 못하니까 얼른 자자.




 



다음이야기

https://brunch.co.kr/@daawo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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