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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띵 Nov 06. 2022

연민 돌려막기

노린재야 간사해서 미안해


  한 걸음, 한 걸음, 하늘과 나무를 보며 구름사다리를 건넌다. 오른발 다음 왼발, 왼발 다음 오른발. 좌우 번갈아 디디고 있는 쇠막대보다 가느다란 다리가 격자 모양의 사다리를 간신히 붙들고 있다. 구름에 닿을 듯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다 살짝 중심을 잃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다시 더듬더듬 걸음을 옮긴다. 앗, 한창 위로 올라가고 있던 옆쪽의 한 친구가 순식간에 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등으로 떨어졌다. 괜찮을까 싶어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살펴보는데, 온데간데없다. 신중하고 신중하게 쇠막대를 잡아나간다. 한참 내려온 끝에, 드디어 구름사다리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출구가 어딘지 모르겠다. 좌우로 두세 걸음씩 왔다 갔다 해보다 왼쪽으로 가기로 결정한 듯하다. 얄따란 여섯 개의 다리와 두 개의 더듬이에 기대어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또다시 끝 모르도록 촘촘히 짜인 방충망을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살포시 잡아 놓아줄 때까지 바들거리며 방충망을 오르내리던 노린재였다.

환기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가, 집 안 쪽 방충망에 붙어 있는 노린재를 발견했다. 눈으로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45분이 지나 있었다.




  노린재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곧 겨울이 올 것 같다. 고개 돌리면 곧장 산이 보이는 곳들에 이사 다니면서 알게 된 계절 변화의 신호다. 가을은 겨울과 바통터치를 하면서, 노크도 없이 내 집에 곤충을 들여보내 왔다. 가을이 되면 무당벌레가, 가을이 지날 무렵이면 노린재가, 어느 틈엔가 들어와 있었다.


3년 전 거실 천장을 파스스 날아다니던 무당벌레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날 나는 안구로 피가 쏠리는 느낌을 통해 혈안 된다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감히 허락도 없이 들어온 불청객을 가열하게 처치하고 나면, 슬며시 세모난 방패 모양을 한 노린재란 녀석들이 하나 둘 방충망에 붙었다. 무당벌레에서 떨어내지 못한 분노를 노린재를 잡으며 터트리곤 했다. 그렇게 거의 3년 동안 무당벌레와 노린재는 나의 혐오 대상 1, 2호에 올라 있었다.


  작년 초가을쯤부터 아이는 방충망에 붙은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창에 붙은 무당벌레만 보면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듯 자길 안아 올리라고 발버둥쳤고, 백과사전에서 방충망에 줄곧 붙어 있던 노린재를 발견한 날엔 기쁘다는 듯 뱅그르르 돌기도 했다. 건드리면 지독한 냄새를 뿜으니 절대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아이에겐 그저 신기한 곤충으로만 비친 모양이었다. 아이가 워낙 좋아하니 이맘때면 매일, 그것도 아주 초근접 거리에서 혐오 1, 2호를 보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자주 보면 정든다더니 정말 정이 든 걸까. 베란다 타일에 배를 보이며 떨어져 있는 수명을 다한 무당벌레를 빗자루로 쓸어 보내면서 잘 가라고 나지막이 인사를 건넨 적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오늘 오후처럼 노린재 뒤꽁무니를 쫓는 날까지 생기고 말았다. 일면식 하나 없는 어느 곤충을 보고 45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흘려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혐오를 극복했다고 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싫어하는 것조차 싫을 정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아이 취향에 맞춘다는 것 말고 강력한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머릿속에서 찾아낸 단어는 ‘연민’이었다.




  새벽이면 영하로 떨어지기도 하는 요즘 같은 때, 추위를 피해 우리 집으로 여차저차 기어들어왔을 텐데 오늘은 왜인지 막무가내로 창밖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곤충들이 겨울나기란 녹록지 않아 대나무 빈 통을 반으로 갈라 땅 곳곳에 놓아두면 겨우내 비교적 잘 살아남을 수 있다던, 언젠가 읽은 적 있는 책의 한 페이지가 떠오른 탓일지도 모르겠다.


노린재를 잘 보내줄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거란 기대감에 검색창에 노. 린. 재 세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러나 검색 결과 창에는 노린재 해충, 노린재 냄새, 노린재 퇴치 등 박멸해야 하는 이유만이 수두룩 빽빽했다.

해충이라고? 농작물을 그렇게나 먹어치운다고? 와 냄새가 이 정도라고? 알까기 시작하면 수백 마리가 나온다고? 보는 즉시 박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검색 결과를 보고 있자니 방충망에 매달려 있던 녀석에게 시선을 두기 민망해졌다.


  어느 농작물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안겼을지도 모르는 노린재라고 생각하니, 노린재에게 품었던 연민은 노린재 무리에게 호되게 당했을 어느 과실나무 주인에게 옮겨가 버렸다. 그리고 당장 저 노린재를 제대로 치우지 않으면 언젠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누군가에게 꽤나 고통스러운 짐을 안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미래의 누군가에게 미리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남편에게 휴지를 두툼하게 떼어오라고 했다. 남편은 노린재 냄새 공격에 당한 적 있는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남편은 노린재 냄새가 3일이 지나도 빠지지 않았다는 등 지난 피해가 얼마나 참담했는지 내게 이야기해주며 방충망에 붙은 녀석을 휴지로 덮었다.


“앗, 힘 조절 실패다. 이거 놔줄 수 없겠는데.”

45분이나 공들여 지켜보았던 노린재는 휴지 더미 속에서 변기 레버와 함께 내려보내졌다. 어쩐지 피해자가 뒤바뀌는 순간이라는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변기 위에 앉기가 영 껄끄러운 하루를 보냈다.




  노린재가 사라진 다음, 내 안에서는

‘노린재 - 농부 - 이사 올 사람 - 다시 노린재 - … ‘ 연민 돌려막기가 일어났다.

종내 이러한 결론에 닿았다. 지극히 안타까워 하지만 결사코 변기 물을 내려버리고만 나라는 사람은 참 간사하다고. 탁한 실내 공기 한번 바꿔주려다가 이게 웬 자기 성찰이람.




  실내 공기를 새 공기로 갈아주어야 미세먼지도 줄이고 겨울철 감기도 잘 넘길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래서 더 추워져 눈이 내리는 날에도 나는 창문을 열어젖힌다. 집안 가득 들어차는 찬기에 손발이 허옇게 질려도, 감기 예방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으며 환기를 예찬한다. 나의 예찬론에 남편은, 이렇게 열어두다 감기에나 안 걸리면 다행이라는 찬물을 끼얹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한다. 노린재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괴생명체의 서식지 안으로 잠입하듯 말이다.


  오늘도 나는, 감기에 걸릴지언정 찬 공기를 안으로 들이고야 마는, 괴상한 보험을 들었다. 연민을 품을지언정 기어코 자비를 베풀 수 없었던 노린재에게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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