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꺾어 신고 달리는 느낌이었던 이번 학기 초에, 김세훈이 술을 먹다가 자기가 동아리 회장 하면서 밴드하는 게 결국 공부하기 싫어서 적절한 핑계를 찾은 걸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얘는 지나가는 말로 했을 대화의 여운이 길었다. 그거 딱 난가? ⠀
공부하기 싫어서 춤춘다. 이건 뭔가 멋없고 철없어 보이고 도피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공부하기 싫은 것 맞고, 춤은 재밌는 것 맞다. 하지만 저 질문에 아무 고민 없이 네! 하는 건 뉴스에 나오는 ‘꿈 없이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와서 방황하는 젊은이’가 바로 접니다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조금이라도 반박해보고자 춤추는 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런 의미라도 있다면, 같이 춤췄던 씨댄 사람들은 이제 학점 관리하고 취업 준비하는 동안 학교 돌아와서 다시 춤추겠다고 하는 나를 볼 때, 현타도 덜 오고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아실현 같은 거창한 의미는 없었다. ⠀
무언가를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쏟아부었다가 되돌아보면 부질없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운명적인 만남을 믿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나는 춤에 대해 그러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웃겼다. 더군다나 내가 춤을 기깔나게 추면 또 모르겠는데 남들 보다가 허둥지둥 어리버리한 내 모습을 보면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싶은 것이다. (집에서 스뚝파 보다가 누가 가비한테 혼나는 모습을 보고 엄마 나 학원 가면 저래 라고 하니까 엄마가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물론 꼭 잘해야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춤 영상 남길 때 다 조져놓고 아 오늘 재밌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
잘하려고 열심히 하면 생각만큼 못해서 재미가 없고, 열심히 안 하면 실력이 안 늘고. 이 모든 걸 잡기 참 어렵구나. 그러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만 하자. 열심히를 열심히 해보자. ⠀
열정인간으로서 잘할 자신은 없었으나 열심히 할 자신은 있었다. 마니또 편지에서 승주 형이 장점으로 안무를 잘 외운다고 써줬는데 혼자 머쓱했다. 매일 학복에서 연습해서 그 정도 했던 건데… 여튼 남들이 볼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했고, 5월 초에 가서는 ‘와 이만큼 쏟아부었는데 공연 조지면 얼마나 슬플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연습 때 이름도 많이 불리고 공연에서 자잘한 실수도 했지만 다행히도 걱정했던 민폐까지는 아니게 공연을 마쳤다. ⠀
한 학기를 되돌아볼 때 열심히 하긴 했어서 그런지 잃은 거에 비해 그렇게 후회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하면 뭐든 할 수 있어! 까지는 아니어도 멸망하는 수준을 낮출 수 있어!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나중의 내가 이번 학기를 후회하더라도 이만큼 노력해서 살았으니까 그랬으려니 하고 봐주겠지 생각도 든다. 앞으로도 뭘 하든 간에 열심히를 열심히만 하기. ⠀
그래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춤춘 걸까에 대한 대답은 ⠀
공부는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지만 춤은 열심히 추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