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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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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Jun 09. 2023

약을 끊으려 해 보았지만 끊지 못했다

조금 일렀나 봐


이른 아침, 엄마가 내 옆에 있다. 약을 끊고 3주째 되는 때였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 선 엄마는 내게 괜찮은지를 물었고 나는 당연히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은데?”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발작 순간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잘려나간 듯 없었다. 엄마에게 들은 바로 내 방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 달려와 보니 내가 발작을 일으킨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 내 모습을 엄마는 아마 처음 목격했을 것이다.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그와 반대로 난 미리 예상이나 한 듯 무척이나 담담했다. ‘기어코 터졌어야 할 문제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정된 재난이 닥친 듯 말이다.


이 일이 있기 몇 주 전, 나는 부모님과 함께 대학 병원을 찾았다. 평소와 같은 정기 진료였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의사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뇌전증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으니 끊어보지 않겠느냐는 말에 부모님은 기뻐했다. 확실히 약을 먹은 후로는 한 번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나는 찜찜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좋은 분위기에 굳이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내 병의 가장 큰 원인이 스트레스였던 만큼 다시 스트레스가 있는 곳으로 출근해야 했던 난 자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약을 끊을 수 있다던 의사의 말을 떠올리면서도 상사와의 트러블로 힘들고 불안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른 아침, 항상 일어나던 출근 시간에 발작을 일으켰다. 출근하기 싫어서인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직장에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겐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걸로 상사가 얼마나 나를 갈궜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찌 되었든 그게 이른 아침부터 내 방에서 엄마가 나를 주무르고 있던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좌절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이일로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을 뿐이다. 약을 먹으며 산다고 해서 나쁜 삶은 아니다.


노을 지는 다리 위,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이다. 절규라는 제목답게 엄청난 좌절과 공포가 느껴진다. 그래서 뭉크라는 작가도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태양>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가 지는 배경의 <절규>와 달리 <태양>은 눈이 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이 주인공이다. 그래서일까? 희망이 넘쳐흐르는 것만 같다. 밝은 색채에 절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두 작품을 나란히 두고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망하는 날 태양이 지더라도 다음날 다시 뜨는 태양을 보며 우리는 희망을 얻는구나.’


뭉크라는 이름은 때때로 <절규>의 제목으로 오해받기도 지만, 뭉크는 절규 그 자체가 아니었다. 뭉크는 사람들에게 희망도 같이 보여준 작가였다. 그의 삶처럼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을 수 있었던 건, 그 어려움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것과 희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첫 시도 이후로 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완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증거라고 말하기 뭐 하지만 운동도 계속하고 있고 음식도 건강하게 먹는 편이다.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조급함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아팠을 때 이미 뼈저리게 느으니까. 조급함은 늘 부작용을 낳았다.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미래의 불행까지 미리 끌어안지 말자. 충분한 시간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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