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연주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케스트라는 미니 연주회 준비에 들어갔다. 유진은 새로운 곡이 발표되기를 기대하며 가슴이 설렜다. 새로운 음악과 그 곡을 연주할 기회가 그녀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곡목이 발표된 순간, 유진의 마음은 얼어붙었다. 예상과 달리, 이번에도 서현 딸의 바이올린 협연 곡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정기 연주회에서도 서현의 딸이 협연자로 나섰던 만큼,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유진은 큰 실망을 느꼈다.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또 무산된 것이다. 서현의 딸이 협연자로 선정된 것은 서현의 오케스트라 내 영향력이 다시금 드러났음을 의미했다.
유진은 그동안 쌓여 있던 실망감과 좌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번에도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것 같은 생각에, 그녀는 다시 자신의 자리가 점점 밀려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제 세컨은 그만두고 퍼스트 바이올린을 준비해야 하나?’
유진의 내면은 혼란스러웠고, 그녀는 방향을 잃은 채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더 큰 도전을 위해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한 그녀의 마음은 무겁고도 단단했다. 그 결심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진은 수없이 자신을 의심하며 흔들렸다. 서현의 곁눈질과 견제 속에서 자존감이 점점 깎여 나갔고, 연습을 마칠 때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내 연주가 정말 부족한 걸까?’라는 의심이 들끓었다.
그러나 유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결심한 그녀는 다시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로 결심했다. 오케스트라의 메신저 방에 짧은 메시지를 남길 때, 유진의 손끝은 살짝 떨렸지만 결연했다.
“이제는 더 어렵고 도전적인 공간에서 제 의지대로, 스스로 ‘너무 어렵다, 소리 내기 힘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메시지를 남기고 방을 나가자마자 단원들에게 연락들이 쏟아졌다.
“단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긴 마련이죠. 조금만 더 참아보지 그랬어요.”
“즐겁게 잘하고 계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가신다니 정말 아쉽네요.”
유진은 그 메시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을 남겼다.
“레슨을 받으면서 실력을 더 쌓으려고 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곧이어 답장이 도착했다.
“꼭 다시 돌아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서현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신, 서현의 메신저 프로필 변경 알림이 떴다. 유진이 그 프로필을 클릭하자, 서현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서현은 무대 위 1풀트 in 자리에 앉아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