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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May 20. 2024

곰팡이를 지우면 깨끗해진다

잡념이 너무 많은 그대에게 

나는 청소를 썩 좋아하는 편도 썩 잘하는 살림꾼도 아니다.


그저 어지러지지 않는 선에서 살았을 뿐, 

청소는 분기에 한 번 혹은 대청소의 날을 정해놓고 큰 마음을 먹고서야 시작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 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청소를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빨래가 쌓이고, 음식물이 쌓여 초파리가 날아다니고, 조금만 환기를 하지 않아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곰팡이와 습기에 나는 매일매일 그리고 매 주 주말을 대청소의 날로 잡고 매일 청소를 했다. 도대체 엄마들이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 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지 이제야 정말 깨닫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면 빨래가 빨래를 널면 정리할 빨랫감들이 빨랫감을 정리하면 바닥에 보이는 먼지가 먼지를 청소하면 걸레질을 그러다보면 하루가 다 가고 진이 빠진다. 


이사를 왔던 날부터 부엌에 위치한 배란다 벽에는 

회색빛의 곰팡이가 있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당시에는 부린이라서 그 회색빛의 증거가 무얼 뜻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그것이 조금만 습하면 곰팡이가 생기고 단열이 취약한 구축 아파트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엔가 우리집을 방문한 엄마가 나의 배란다를 보고서는 '앗! 이게 뭐야! 너 이거 빨리 제거해야해!' 하며 벽면을 다 덮은 곰팡이에 아연실색을 했다. 청소를 그리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출퇴근이 힘들다는 이유로 가장 큰 청소는 늘 남겨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괜찮아지겠지' 그것이 나의 변명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아주 작았던 곰팡이들이 어느 새 이렇게 커져버렸다



다가오는 여름에 곰팡이와 지낸다는 마음이 무겁기는 했지만 도리어 무거운 건 내 마음과 몸이었다. 


출퇴근이 버겁고, 그 와중에 자기계발을 한다며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는 이유로 나는 늘 주말에 못다한 공부를 하거나 쉬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 내 삶에 대한 고찰 그리고 직장, 돈 그 모든 것에 답없는 고민들이 하나 둘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밤을 맞이했다. 34살, 곧 서른 중반이 되고 어느 샌가 서른 후반이 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 그리고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마음이 저녁 무렵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식히러 배란다 문을 열었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깜깜해진 곰팡이들을 보다가 나는 광고 속에 나오는 곰팡이 제거제 세트를 주문해버렸다. 



다음 날 도착한 곰팡이 제거제와 함께 마스크, 고무장갑, 긴 츄리닝과 반팔 체육복을 입고 만만의 준비 태세로 나는 배란다 벽면을 가득 메운 곰팡이들에 제거제를 살포했다. 일찍이 흐르는 곰팡이가 있는가하면 버티고 있는 곰팡이도 있었다. '니가 죽나, 내가 죽나, 어디 한 번 해보자!' 장장 3시간에 이르는 곰팡이와의 대전쟁 끝에 나는 승리했다. 코를 찌르고 편두통을 유발하는 제거제 냄새에도 나는 나의 승리를 만끽하며 집안 곳곳에 자리잡은 곰팡이들을 찾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크고 작은 곰팡이들과의 싸움을 끝나자 저녁이 되었다. 


저녁을 해먹을 새도 없이 나는 간단한 배달음식과 함께 맥주 한 잔으로 곰팡이와의 승리를 자축했다. 괜시리 답답한 마음이 곰팡이가 제거된 벽면처럼 흔적은 남았지만 후련했고 개운했다. 지난 밤 내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고민들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퀘퀘한 곰팡이를 지우는데 즐겁기까지 했다.


어쩌면 사무실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머리를 싸매는 일보다 가끔은 단순 노동으로 흘리는 땀이 나에게 더 값어치 있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곰팡이 청소를 했던 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숙면할 수 있었다. 가끔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뒷목이 뻐근해지는 스트레스에 온 몸이 지배당할 때마다 청소를 한다. 냉장고 청소를, 책 정리를, 걸레질을 그렇게 몸을 쓰고 집안일에 땀을 흘리다보면 (생각보다 집안일을 할 때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땀이 나지 않는다) 꽤 개운하고 상쾌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너무 복잡한 세상속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단순한 일을 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잡념이 많다면 오늘 창틀에 끼어있는 뿌연 먼지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보자. 화장실 변기 속을 덮은 곰팡이들을 제거해보자. 집안 곳곳에 안보인다는 이유로 팽개쳐 둔 먼지들을 구석구석 청소해보자. 


생각보다 나는 아주 단순한 노동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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