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다 떨어졌으면, 집으로 와!
항상 아빠는 보고싶다는 말을 '김치를 사뒀다' 는 말로 대신하고는 한다.
그 때마다 아빠의 마음을 알기에 이번 주말에는 꼭 가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정작 주말이 되면 한 주 동안 쌓인 피로에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도파민을 위한 핸드폰질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곤 김치를 가지러 가지 못한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 뒤늦게 밀려온다.
늦은 퇴근 길에 동네 마트에 들러서 무얼살까 고민을 했다. 늦은 저녁이라도 동네 사람들은 꼭 이 마트를 찾는다. 그나마 집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큰 이름없는 마트. 때가 되면 생선을 팔기도 하고, 때가 되면 제철 야채들을 팔기도 한다. 자취를 하면서 집밥을 생활화하면서 느끼는 건 바로 물가 상승을 온 몸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동네 마트에 저녁 떨이 할인은 없다. 원래도 저렴한 금액이었고, 그 금액에 맞는 재료들의 신선함에 더 할인해 줄 여력은 없다. 물론, 오늘 내일 사망 직전의 재료들은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지만.
얼갈이 배추 1,500원. 왜 그 배추가격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다 떨어져버린 청양고추와 미나리, 마늘을 사고보니 얼갈이 배추 아주 작은 1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 김치가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그냥 김치에 밥만 있어도 잘 먹고, 집에 가면 항상 끓여져 있는 엄마의 손맛이 담긴 푹 끓인 김치찌개는 정말 내 최애 밥도둑이다. 그런 우리집에 요즘 김치가 없다. 짧은 휴일 아빠에게로 가자니 시간이 없을 것 같고 당분간은 김치를 사먹어야 할 상황인데 무언가 사먹기는 좀 아깝기도 하다. 양도 적고, 가격도 비싸서 자취생에게 김치는 그야말로 '금치' (금값 같은 김치) 다. 알배기 배추 1,500원에 나는 자연스럽게 '김치를 담궈볼까?' 라는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배추를 담았다.
레시피를 본 적은 없지만 지나가는 텔레비전 어딘가에서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김치 만드는 과정들이 있다. 배추를 깨끗하게 씻고, 4등분을 해서 굵은 소금에 절여놓는 것. 숨이 죽으면 그제서야 양념질을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김치 제조의 전부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취생의 양념통은 아주 소박하기 그지없다. 멸치액젓, 스테비아 설탕, 꽃게액젓, 고춧가루.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던 지식과 있는 재료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밀린 집안일을 하고 간만의 휴일을 즐기며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어디에선가 본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배추를 4등분 하고 굵은 소금으로 숨을 죽이고 양념을 골고루 묻혀주면 끝이라는 김치 제작의 프로세스는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만들어 본 적도 없거니와 자취생의 양념장은 아주 심플 소박하다. 멸치액젓, 꽂게액젓, 설탕, 고춧가루가 전부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김치를 담궜던 것들을 본 기억이 난다. 그 날 하루는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가족들이 먹을 김치를 엄마 혼자서 담그면서 굉장히 복잡해보이고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늘 그 날은 엄마가 허리가 쑤시다면서 반나절은 기절해있던 기억도 난다. 항상 큰 대야에 소금절인 배추와 빨간 양념장에 온갖 재료를 투하했던 기억. 이제는 그 기억으로 내가 김치를 만들고 있다.
나름 엄마에게 보고 배웠던 것들이 있어서 밀가루풀도 쑤어 양념장을 걸쭉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첫 김치를 담그느라 양념장 조절에 실패하여 양념장이 모자르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괜찮다. 양념장이 모자르면 겉절이로 남은 배추들은 만들면 그만이다.
요리는 정답이 없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가 하는 게 정답이다.
한 주동안 고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실수를 하면 작아지고,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일에는 두려움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도 여유보다는 조급해지고, 실수 투성이인 사회생활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칭찬이 고프기도 하고 무엇보다 집밥이 그리워 지는 허기지는 날이 더러있다. 김치를 담그고 있자니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잘 담궜는지 모르겠지만 잘 익기를 바라며 베란다 한 켠에 두었다.
나의 첫 김치가 익어간다.
아직도 내 삶에 처음 해보는 순간들이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작아지고 작아질 필요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