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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청아 Oct 22. 2022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7살 아이는 아빠에게 묻는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과학자인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 의미 없단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단다.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너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학창 시절을 포함한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녀가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남자 친구는 그녀의 잘못으로 인하여 떠나갔다. 대학시절부터 7년간 만난 남자 친구를 잃었을 때, 그녀는 삶의 의미도 같이 잃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의 말씀 중 “너는 중요하지 않아.” 까지밖에 들리지 않았다.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 곰출판 | 2021년 12월 17일


그녀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날, 조던이 30년에 걸쳐 연구했던 물고기 표본들이 모두 바닥에 내평개쳐졌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그 조각난 물고기들 중 상태가 괜찮은 것만이라도 찾아가며 다시 이름 붙이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그의 일대기를 따라가면 혼돈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비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의 일대기를 비롯한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와 서적들을 읽었다.


밤하늘에 수 놓인 별들의 이름을 외우고, 길거리에 숨은 보잘것없는 꽃의 학명을 외우던 소년의 이야기.


부모의 반대나 주변 시선에도 무릅쓰고 꿈을 간직해, 아가시라는 스승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


아가시에게 큰 영향을 받아 어류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이야기.


아가시의 꿈을 이어받아 자연의 사다리를 완성하고자 달려가는 이야기.


결국, 조던이 일생에 걸쳐서 시도했던 것은 자연의 사다리를 완성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가 어떻게 정해져 있는지 알려줄 사다리. 그 사다리 꼭대기에는 인간이 있고,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면 신에 닿을 수 있다는 그 믿음. 신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더 진화할 수 있다는 믿음.


자연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그 믿음은 혼돈 속에서 그를 일으켜줬지만,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우생학을 미국으로 들여온 일이다. 나치가 주장했던 그 우생학 말이다.


조던은 우월한 유전자를 남기고, 열등한 유전자는 모두 없애야 한다는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단순히 지지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에서 우생학 순회 연설을 돌았다. 우생학 연구와 수용소에 대한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원했다.


그로 인해 미국 전역의 뒷골목에선 ‘부적합자’라는 이름하에 불임화 수술이 판치게 되었고, 때로는 처형까지도 이루어졌다.


조던은 죽을 때까지도 일말의 생각 변화조차 없었다. 숨어 있던 보잘것없는 것들의 이름을 외워주던 소년은, 보잘것없는 것들을 말살하려는 남자가 되었다.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그녀가 롤모델로 삼으려 했던 조던은 악당이었다. 더 이상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었고, 그녀는 또다시 길을 잃었다.


그렇다고 그녀는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음 길을 찾기 위해 불임화 수술이 자행되었던 수용소에서 유년기를 보낸 여성을 수소문했고 만나게 되었다. 애나라는 그 여성의 배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애나는 수용소에서 만난 메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7살 때 아버지께 했던 그 질문을 애나에게 다시 묻는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아빠에게서도, 조던에게서도 찾지 못한 답을 물었다.

애나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메리가 불쑥 말했다.

“나 때문이죠!”

애나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메리 때문이에요.”


그 둘은 서로가 그물망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는 그물망이었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으리라 말한다. 수용소에서 나온 이후는 메리가 애나를 잡아줬다.

서로가 서로를 살게 했다. 서로에겐 서로가 중요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그들은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그제야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박할 말을 찾았다. 우리는 아무 의미 없지 않다. 우리는 소중하다. 우리는 민들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것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스무 살 겨울, 나는 첫 알바를 고깃집에서 했었다. 초저녁부터 일하다가 9시쯤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항상 된장찌개 혹은 김치찌개였다. 둘 다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워낙 배가 고파 투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 고생했다고 점장님이 몰래 쫄면을 해준 적이 있었다.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점장님께 쫄면이 너무 맛있다며 신나서 떠들어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이사를 가게 되어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근무 날, 일을 어느 정도 마치고 평소처럼 9시쯤 저녁을 먹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저녁 메뉴가 쫄면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것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룰루 밀러, 그녀가 했던 질문은 나도 항상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면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자신이 없어, 혼자서만 품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또 책을 읽어가면서, 내 믿음은 확신이 되어갔다. 이 책은 그 확신의 종지부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어야 한다. 저 혼돈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가 그물망이 되어주어야 한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ps. 책이 주는 메시지와 별개로, 책의 전개 방식과 그녀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와 결말, 내가 느낀 충격과 신선함을 여러분도 느꼈으면 해서 일부러 '책 제목의 의미'를 본 서평에 넣지 않았다. 과학서의 탈을 쓴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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