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금은 싫어요!
10월 24일 오늘, 군대 선임이 생일이었다.
평소에 나를 잘 챙겨주고, 혹시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나올까 걱정해주고 신경 써주던 선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이 유쾌하고, 호감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생일선물을 뭐 해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군대라는 곳이 참 얄궂다. 무언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기가 어려운 곳이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언제든 쓸 수 있는 기프티콘을 보내면서 마음 편하게 선물했을 텐데 이곳에선 무용지물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만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솔직히 생일 선물을 현금으로 주는 방법도 생각했다. 현금이라면 군대 내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그건 결국, 기프티콘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기 힘드니까 편하게 처리하려는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하기도 했다.
애초에 나조차도 생일 선물은 현금보다는 의미 있는 선물을 선호한다. 괜히 현금은 정 없어 보여서 ㅎㅎ. 돈은 추억을 공유하기에는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몸에 남거나, 두고두고 볼 수 있어서 서로 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 의도에 부합하게 제대로 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딸랑 현금'보다는 '의미가 담긴 선물'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사제담배를 사줄까도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접하기 힘들기도 하고, 애연가기도 하니까 담배를 사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사제담배를 잔뜩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말았다. 아차 싶었지만, 금세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의미 있는 선물을 생각해보자! 하고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어떤 의미 있는 선물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일 자체가 선물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 관계 발전에 있어서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의 평소 취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평소에 그 사람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들여야만 가능했다.
한참을 무엇을 선물하면 좋아할까 생각을 해보다가 pt 클래스권을 끊어주기로 결심했다. 평소에 운동에 관심이 많고, 체중 증량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방법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혼자서 끙끙대는 모습도 지켜봤었다.
군 내에서 pt 상담을 해주는 클래스가 있었는데, 비용이 조금 나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고 신청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로는 그런 거 없어도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만, 막상 선물해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몰래 상담권을 끊어서 전달해줬다.
반응이 어땠을까?
"아 왜 또 이런 걸 챙겨줘~ 생일 선물 챙겨주면 나도 챙겨줘야 해서 안 받으려 했는데~" 라며 투덜댔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 같았다. 선물을 주는 나까지도 입가에 웃음이 피는 그런 미소였다. 그 미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나눠주는 일이다'라는 말이 참 맞는 말이다. 그리고 무슨 선물을 줄지 고민하는 과정 역시 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과정이다.
여러분도 혹시 소중한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주게 된다면, 그 선물에 담긴 의미까지도 같이 전달해보았으면 한다.
아직 내가 어려서 현금보다 의미 있는 선물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 취향마다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현금이 만약 본인이 뭘 좋아할지 잘 모르겠어서 주는 용도라면, 이 기회를 통해서 그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좋겠다. 생일 선물이 꼭 서프라이즈여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니까.
ps. 10월 27일은 제 생일이에요! 마음속으로라도 생일 축하한다고 한마디 부탁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