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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청아 Mar 10. 2023

작가가 페미니즘을 작품에 담으려면

지구 끝의 온실 서평

<지구 끝의 온실>은 김초엽 작가의 SF소설이자, 첫 장편이다.

전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을 통해 워낙 호평받던 작가였고, 천선란 작가와 더불어 SF계에 서 주목받는 젊은 여성작가로 손꼽힌다는 점에서 기대를 많이 했었다.


젊은 여성작가의 경우, 페미니즘과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에서 녹여내는 경향이 있다. 특히 SF는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이 전하는 '이상'이 실현된 무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작가가 본인의 사상을 작품에 녹여내는 시도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서 거부감 없이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다면 자연스레 사람들은 이야기 속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그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여간 쉬운 일은 아닌 데다가, 단순 재미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메시지까지 담아야 하기에 훨씬 난이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얼마나 작가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본인의 역량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기 때문일 테다.


다만 이번 작품인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해내지 못했다. '페미니즘적 메시지와, 스토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쳐버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저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08월 18일

좋은 스토리란 무엇일까? 문학, 취향, 예술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대중성은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결국 대중에게 읽혀야 한다. 그리고 좋은 스토리, 즉 읽히기 위한 글을 위한 필수 요소가 있다. 바로 갈등이다. 갈등이 없는 이야기는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없다. 


학창 시절 국어시간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듯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있고 발단, 전개, 위기(갈등), 절정, 결말이 있다.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가 심심해진다. 과해서도 안되고, 없어서도 안 되는 소금 같은 존재이다. 


<지구 끝의 온실>은 결정적으로 이 갈등이 너무 밋밋하다. '세계가 멸망했다'라는 주제치곤 너무 약하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과거 '더스트'라는 먼지가 세상을 덮었지만 주인공 자매는 우연히 내성을 가지고 있다. 언니만 내성이 조금 약해 짙은 농도에 가지 못할 뿐.


따라서 그들에게 환경은 크게 위기가 되지 않고, 타인과의 갈등만이 주된 위기이다. 실제로 그들은 내성종을 사냥하는 '사냥꾼'을 피해 다니기도 하고, 중간에 다른 여성 집단에게 거처를 빼앗길 위기에도 처한다. 하지만 이 위기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짧게 지나간다. 이유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페미니즘적 메시지' 때문이다.

또한 도피처인 '돔'에 들어가고 나서도 별다른 위기 없이 잔잔하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황급히 마무리가 지어지는 느낌이다. 이 또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로 이야기가 돌아오더라도, 현재는 과거 회상을 위한 매개이기 때문에 별다른 위기가 없다. 굳이 현재와 과거를 이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연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갈등이 없는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지 않는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선 갈등 말고도 떡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떡밥을 굉장히 많이 뿌렸다. 나 역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기보단, 떡밥을 어떻게 풀지가 궁금하여 글을 읽었다.


크게 3가지 떡밥이 있었는데 

1. 이희수 할머니의 정체 

2. 푸른빛의 정체

3. 독을 치료제라고 속인 랑가노 마녀의 진실

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어가며 떡밥이 하나하나 풀릴 때마다 속 시원한 게 아닌! 어이가 없었다.

'이희수' 할머니는 아무 연결고리도 없이 돔의 리더인 '지수'였다.

푸른빛의 정체는 그냥 우연히 발생한 아무 의미 없는 화학반응이었다.

독을 치료제라고 속인 것이 아닌 치료제와 독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생긴 사람들의 오해였다.


이는 떡밥 하나만 바라보고 지루한 이야기 참아가며, 책을 읽은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 빠지는 소식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SF 장편 소설인 <작별인사>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작별인사>는 <지구 끝의 온실>과 비슷하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린다. 하지만 <지구 끝의  온실>과 달리 주인공에게 다양한 위기상황이 존재한다. 외적 위기든, 내적 위기든 이를 극복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뿐만 아니라 작 중 등장인물들의 정체와 떡밥들도 잘 짜여있어, 떡밥이 풀렸을 때의 충격과 쾌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단순 재미만 추구한 것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메시지마저 잘 담아내 많은 생각을 해보는 계기도 되었던 훌륭한 작품이었다. <작별인사>로 눈이 높아졌는지, <지구 끝의 온실>은 스토리적 측면에서 많이 아쉬웠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적 메시지'는 잘 전달했는가? 이 역시 솔직하게 의문이다. 

책에서는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여성 서사'로만 이루어져 있다. 여성 서사로만 이루어진 게 끝이라면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었겠지만, 김초엽 작가는 여기서 한 술 더 뜬다. 작 중 악역은 잠깐 스치듯 지나간 남자 엑스트라가 전부다. 작품 내 여성들은 모두 선역이다.


이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위기가 줄어들었다. 유일하게 '남자'로 분류되는 사냥꾼들은 여성서사 완성을 위해 비중이 굉장히 적게 다루어졌다. 작가가 굳이 남성을 이 서사에 출연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악역의 비중이 적다 보니 위기와 갈등은 자연스레 적어졌다.

심지어 여성들은 모두 선역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래야 발생할 수가 없다. 서로 연대하며 잔잔한 이야기가 진행될 뿐이다. 


이는 캐릭터에 있어서도 치명적이었다. 여자는 모두 선역이기 때문에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남자들 없이도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듬직한 여성들의 이미지만 나타낼 뿐이다. 캐릭터의 첫인상이 곧 끝인상이다. 덕분에 여성이 등장하면 무조건 선역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실제로 그 예상은 적중한다. 


실제로 다른 서평들을 찾아보면 해당 부분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다. 작가가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한계에 갇혀 제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많이 보았다. 단편 소설과 달리 호흡이 긴 장편소설이다 보니 이런 점이 더욱 부각되었으리라 본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작가의 메시지를 이야기에 녹여내는 것의 장점은 거부감 없이 사람들이 해당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페미니즘적 요소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굉장히 아쉽다.




김초엽 작가와 함께 손꼽히는 젊은 여성작가인, 천선란 작가의 SF 소설 <천 개의 파랑>에서는 페미니즘적 메시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잘 풀어내면서도, 스토리가 흡입력 있어서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전하고자 하는 말을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고,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연결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작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작품을 통해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인터뷰를 통해서 작품의 숨은 의도를 알려주거나, 디테일한 요소들을 알려주는 것도 물론 좋다. 하지만 작품으로만 말할 수 있다면 더 좋다.


이번 작품에서는 김초엽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많았지만, 메시지에 집중하다 보니 스토리의 연결성이 약해진 기분이 든다. 명심해야 할 것은 맥락이 없는 메시지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여성 서사'만으로 스토리를 완성하려는 시도에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모든 남자는 악역, 여자는 선역'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또, 같은 실패를 겪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뻔해져 버린다. 남자는 무조건 나쁘고, 여자는 무조건 착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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