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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초 Jun 23. 2024

백일의 기적

국기원 태권도 2품 승품심사

 24.6.22. 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둘째는 태권도장으로 1시에 출발하고 가족들은 2시쯤 시민체육관으로 출발했다. 작년에 첫째의 태권도 품새대회참석차 방문했기에 위치는 쉽게 찾아갈 수 있었으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려 오래 걸렸다.



.

 열심히 태권도 수업에 참석했으나 한 번도 품새를 집에서 연습한 적이 없어 내심 불안했다. 관장님이 00이는 집에서 형이 많이 봐줘야겠단 말씀을 수시로 하셨다. 첫째말에 의하면 동작을 잘 못 외우고 발차기에 흔들림이 많아 관장님이 걱정하신다고 했다.

지난주 부모님 초청 연습날엔, 회식이어서 참석을 못했기에 둘째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도 연습 좀 해. 떨어지면 어떡해?"

 "나, 다 할 줄 알아"

 

 떨어지더라도 실패로 배우는 게 있겠지 싶어서 집에서 연습 안 해도 내버려 뒀다. 작년 큰아들 품새대회 때도 연습을 게을리하더니 4명 중 꼴찌 하는 모습에 '그럼 그렇지'라고 혀를 끌끌 찼으나, 내색하진 않았다. 큰아이는 절치부심하더니 올해도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등했으면 또 도전장을 내밀진 않았겠지, 오히려 꼴찌라서 도전정신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시민체육관 대기실에서 본 맨발의 아들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긴장하고 있었다. 지시사항을 안내하는 관장님 말씀에 귀 쫑긋 눈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두어 시간 대기 끝에 아들의 차례.

몇 번의 흔들림과 동작에서 망설임이 느껴졌지만, 기본동작-4장-고려 품새를 무사히 다 해냈다.

발차기 대련할 땐 호구 등 뒤 끈이 풀려서, 심판이 끈 묶어주다 시간이 다 흘러버렸다.

이걸로 불합격이면 어쩌지 걱정되었지만 아들은

"오히려 잘 됐어, 난 덕분에 덜하고 심사 끝났잖아"  

웃프다. 난 불합격하면 또 19만 원 응시비용 내야 하는데.



 단체사진, 가족사진 찍고 그동안 수고했다며 꽃다발을 안기는데 둘째가 묻는다.


 "이거 비누꽃이야?"


 졸업 입학 품새대회 등 기념일 때마다, 6년 전에 쿠팡에서 샀던 먼지 쌓인 비누꽃만 받아봤던 둘째가 자연스럽게 묻는다.


 "아니야, 생화야. 냄새 맡아봐. 꽃냄새지?"

 "음~ 진짜 꽃이네!"

 "정말 수고했어. 그동안 매일 연습하느라 고생했어"


 태권도 다니기 싫어하던 7살 꼬마가, 형아 따라다니던 태권도에서 벌써 2품에 도전하다니, 부모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둘째는 백일동안 저녁 6시에 수련을 갔고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8:30에 도장으로 달려갔다. 결과를 떠나서 그간 열심히 노력했고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품새를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했다.


 백일동안 노력하면 되는구나, 못할 게 없구나, 나도 백일동안 엑셀에 도전해 봐야지, 불혹을 넘긴 어미는 아들의 도전앞에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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