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공모 에세이 장려상
‘한살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이다. 친한 여고 동창 친구들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만날 때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친구들이 ‘한살림’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직장에 다닐 때라서 육아와 살림을 온통 시어머님께서 맡아주셨다. 그래서 먹거리에 대한 신경을 별로 쓰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한살림’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구나.’라는 생각만 머리 한쪽 구석에 남겨놓았을 뿐이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식구들 덕분에 채소를 장보는 일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가끔 평촌 학원가에 갈 때도 ‘한살림’ 매장을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외국 농산품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우리 토종 벼와 밀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신문기사를 읽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에 지진이 나면서 방사선이 검출되는 식품이 여전히 유통된다는 보도를 듣고 몹시 걱정이 되었다. ‘안심하고 사먹을 수 있는 믿을만한 먹을거리는 없을까? 우리 농산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까? 생산자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시켜서 중간에서 이익만 가져가는 몰염치한 사람을 없애버릴 수 없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올 여름 남편과 건강검진을 받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터라 미루고 미루어서 8월에 받게 되었는데 남편의 공복 혈당치수가 무섭게 높았다. 과체중이고 허리둘레가 너무 넉넉한 탓이려니 하고 지나치기에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의사는 당뇨 약을 권했지만 남편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곧바로 식이요법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의 첫마디는 ‘한살림’ 매장에 가서 신선한 채소와 두부 그리고 방사 유정란을 사오라는 것이었다.
‘한살림’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게시판과 공지 글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한살림’에 대해선 이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조합원 가입 방법을 알아본 후 해당 요일과 시간에 맞추어서 평촌 매장에 갔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했기에 조금 일찍 가서 미리 장보기를 마친 후 소개교육을 받고 조합원이 되었다. 그런데 사고 싶었던 채소 칸이 텅 비어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하고 그 다음 주는 11시쯤 장보러 갔다. 그런대도 채소 선택 폭이 터무니없이 낮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폭염으로 신선한 채소가 줄었지만 아침 개장 시작 시간에 맞추어 오면 그나마 살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한 블록 떨어진 ‘자연드림’ 매장에 가보았다. 채소가 많아 보였다. 조합원가와 일반가가 함께 명기되어 있었다. 잠시 ‘자연드림’에 가입할 걸 후회를 했다. 가깝진 않지만 집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살 수 있는 채소 종류가 많아서 좋아보였다. 좀 더 비교를 해보고 결정할 걸…. 너무 성급 했나 자책을 하며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두 곳을 모두 이용해본 다양한 후기를 읽어보고 또 소개교육 날에 받은 ‘한살림’ 소식지와 안내 책자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나서야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신선한 채소를 많이 사야겠다는 생각에 10시 개장 5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을 서서 사기까지 해야 하다니, 마음속으로 참 과하다 싶었다. 그만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큰 탓이려니 위안하며 매장에 들어갔다. 좁은 매장에 사람들이 복작대니 정신이 없었다. 채소 칸이 모처럼 꽉 차 있었다. 이것저것 채소란 채소는 골고루 다 담다보니 장바구니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토마토와 브로콜리는 보이지 않아서 아쉽지만 사지 못했다.
인터넷 장보기를 활용해보기로 했다. 매번 버스를 타고 매장에 가서 줄서기가 귀찮아서였다. 장보기 서비스는 잘 되어 있었다. 공급 날이 지정되어 있고 공급 날 3일 전까지 주문을 완료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봐야 할 것 같아서 무통장 입금보다는 자동이체로 수정했다. 해당 은행과 거래한 지 몇 년이 지나서 통장을 갱신해야 했다. 그런데 갱신하려면 그 증거물을 제출해야 한단다. 은행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이 되는 통에 짜증이 났지만 규정이라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집에 와서 자동이체 신청 페이지를 출력해서 증거물로 제출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휴, 이제 끝났다. 한살림 새내기 장보기 준비 완료’
김장철을 앞두고 절임배추와 김장재료, 고춧가루, 마늘 등을 미리 주문 받고 있었다. 때마침 그동안 사먹었던 절임배추가 마땅하지 않던 차에 ‘한살림’ 절임배추와 김장재료를 주문했다. 고춧가루도 믿을 만한 곳이 없어서 2년마다 건고추를 말려서 방앗간에 맡겼었는데 이참에 ‘한살림’ 고춧가루와 마늘도 주문했다. 김장재료를 모두 주문하고 나니 큰일을 하나 해치운 것 같아 뿌듯했다.
드디어 첫 번째 공급 날이다. 언제 오나 궁금했는데 친절하게 문자가 왔다. 해당 시간을 알려주어서 조급해 하지 않고 다른 일을 볼 수 있었다. 보냉 박스는 바로 회수해 가고 종이 박스는 다음번 공급 날에 돌려주면 된다고 한다. 빈병을 회수하는 일도 참 좋다. 매번 멀쩡한 빈병을 버릴 때면 아까웠는데 ‘한살림’에서 이렇게 앞장서 주니 참 잘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물건을 주문할 때면 돈을 먼저 입금시켜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살림’ 장보기를 할 때도 주문하면 바로 통장에 해당 금액을 입금해 두었다. 그런데 통장을 확인해 보니 인출된 금액이 없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싶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자동이체가 아니라 무통장 입금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상담실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물건은 받았는데 대금이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더니 ‘한살림’은 선불이 아니라 후불이란다. 공급 받은 날 일 주일 이후에 자동이체 된다고 알려주었다. 와, 후불제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물품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이리라 더욱 믿음이 갔다.
한가위를 앞두고 올해 조상님께는 유기농으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로 상차림을 하려고 인터넷 장보기를 마쳤다. 그런데 해당 공급 날에 문자가 없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주문서가 없단다. 주문조회를 해보니 과연 공급 날이 다른 날로 되어 있었다. 아뿔싸, 공급 날과 주문 수정가능 날을 헛갈렸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차례상 주문은 삭제하고 대신 토마토, 브로콜리와 채소를 주문했다. 매장에서 잘 살 수 없는 품목이라 기분이 좋았다.
안양지부에서 새내기 조합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한살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브로콜리와 토마토를 구입하기 힘든 이유도 알게 되었다. ‘한살림’은 조합원이 주인인 생활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관심과 활동이 무척 중요함을 깨달았다. 천연 생리대를 만들면서 활동가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후에 도서관에 갈 일이 있어서 점심은 혼자 해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한살림’표 점심상을 차려주시는 것이 아닌가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새싹비빔밥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닌 듯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살림’이 올해로 서른 해가 되었다. 인농 박재일 선생님은 “한살림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만나게 하고, 친한 사이가 되도록 하며,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사이가 되는 일을 실현하고자” ‘한살림’을 만드셨다고 한다. 인농 선생님의 꿈이 ‘한살림’의 모토가 되었다. 공자님은 서른이면 ‘뜻을 확고하게 세우는 시기’라 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한살림답게’ ‘한살림’을 잘 굴러나갈 수 있기를 새내기 조합원은 바란다.
남편의 식이요법은 신선한 ‘한살림’ 제철 채소 덕분에 잘 유지되고 있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허리둘레가 눈에 띄게 줄었다. 채소가 풍성한 밥상이 ‘한살림’이 권하는 밥상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사람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채소이기 때문이다. 이 풍성한 ‘한살림표’ 밥상은 앞으로 쭉 이어질 것이다. 더불어 나와 가족들도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불신이 가득한 위기의 시장경제 속에서 지속가능한 건강한 먹을거리 체계를 완성해가는 ‘한살림’이 있어서 참 든든하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고민하며 성장해 나갈 새내기 조합원이 많아지면 좋겠다. 더 늦지 않고 불혹의 끝자락에라도 ‘한살림’을 만나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