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체로 떠난 자매여행
진주는 외갓집이 있는 도시이다. 막내라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외갓집. 그저 외가가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주는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말로만 듣고 상상하던 진주에 드디어 가게 되었다.
생업에 바쁜 셋째 언니가 제안을 해서 모처럼 네 자매가 완전체로 진주통영거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외갓집은 지금은 폐역이 된 문산역 근처라고 한다. 일단 서울에서 진주 문산역을 내비게이션으로 찍고 출발했다.
평일이라 대진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연둣빛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열심히 달려서 내비가 알려주는 문산역에 도착했다. 언니들은 방학 때 외가를 방문하곤 해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문산역 근처를 걸었다.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해야 했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외가가 있을 법한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았다. 진주여고를 기차로 통학했던 친정엄마가 매번 귀가 시간을 체크하는 엄한 외할아버지 덕분에 얼마나 맘을 졸였을지 짐작해 보았다.
진주에 가면 꼭 진주냉면을 먹어보라는 옆지기의 말을 듣고 유명하다는 냉면집으로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맛집답게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육전을 시키고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시켰다. 뜨끈한 육전은 아주 맛나게 잘 먹었다. 냉면은 글쎄 그리 맛있는 줄 모르겠다.
진주성 근처 시내 작은 호텔에 숙소를 예약해 두어서 그리로 향했다. 자그마하지만 깔끔한 방을 확인하고 짐을 풀었다. 걸어서 진주성을 둘러보고 박물관에도 들어갔다. 촉석루에 올라 논개가 뛰어내렸다는 평평한 바위도 확인하고 남강을 떠다니는 유람선도 내려다보았다.
적장을 껴안고 뛰어내렸을 때 논개가 몇 살 쯤이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진주 중앙시장 안에 있다는 육회비빔밥 집을 찾아서 핸드폰을 들고 조금 헤맸다. 조카가 대학 다닐 때 즐겨 먹었다는 맛집이다. 식당은 시장통 안이라 약간 허술해 보였지만 맛있게 먹었다.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언니는 익힌 것을 시키고 그것도 당기지 않으면 국밥을 시켰다. 진주야경을 볼까도 했는데 언니들 체력이 좋지는 않아서 그냥 쉬기로 했다. 진주에서 머문 숙소는 난방이 잘 안 되어 춥긴 했지만 온수가 아주 잘 나와서 나름 괜찮았다.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제공해 준 건 플러스^^
통영은 고려대 출판부 다닐 때 연수로 와 본 적이 있다. 잠깐 바다만 보고 간 거라 별다른 추억이 없다. 통영 케이블카를 꼭 타야 한다는 큰 언니말 대로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했다. 초행길이라 한 번에 완벽하게 길에 접어들지는 못했지만 케이블카 매표소에는 딱 개표에 맞게 도착했다.
날씨도 아주 화창해서 기분 좋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미륵산 정상까지 갔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섬들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인증숏도 찍고 바다도 실컷 보고 통영 숙소인 서피랑 와옥으로 향했다. 주차가 마땅치 않아서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겨우 했다. 차가 생생 달리는 길 가 안쪽 한옥이라 차로 들어가기는 참 애매했다. 뚜벅이에게는 권할 만한 숙소이다.
짐을 풀고 잠깐 쉬었다가 나와서 서피랑 벽화를 감상하고 윤이상 기념관과 박경리 기념관을 관람했다. 노을 명소라는 달아공원에 가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한참 앉아있었다. 노을 지는 것을 다 보고 내려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 촉박해서 아쉽지만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벌떡거리는 싱싱한 생선을 구입하여 회를 떠달라고 하고 식당에서 저녁으로 먹었다. 회를 배불리 먹기 쉽지 않은데 다들 숟가락을 놓은 상태에서 남기지 않으려고 끝까지 내가 다 먹었다.
<김약국집 딸들>에 등장한다는 서피랑 와옥은 부엌과 화장실을 현대적으로 고쳐서 머물기에 좋았다. 난방도 잘 되어 따뜻하게 잘 잤다. 전날 주차장에 차를 파킹해 놓아서 충렬사도 둘러보았다. 충무공 탄신일이라 입장료도 없다 해서 좋았다. 관광안내사 분이 친절하게 해설도 곁들여 주셨다. <난중일기> 이외에도 기록으로 남겨놓은 사료를 해석해 주어서 이해하기 훨씬 편했다. 충무공이 오늘날의 조선을 보시면 잘하고 있다 하실까?
거제도는 둘째 언니가 살았던 곳이다. 떠나온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익숙한 길이라서 손쉽게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다. 지인이 소개해준 노자산 파노라마 케이블카도 타보았다. 바닥이 투명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푸르른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해서 아찔하기보다는 푹신할 것 같았다. 날씨 또한 한 몫했다. 개장한 지 1년밖에 안 되어 사람도 별로 없어서 바로 탑승을 했다. 노자산 정상까지 꼭 가봐야 한다는 둘째 언니를 따라서 올라갔다. 파노라마 사진도 처음으로 찍어보았다. 큰언니가 몽돌해변에 가보자 해서 해변가에 앉아 바다멍을 때렸다. 동글동글 예쁜 돌멩이들이 있는 해변이라 모래를 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좋았다.
마지막날 숙소는 바다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 파도소리 펜션이다. 가는 길에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통통배 소리, 파도 소리가 들려서 좋았다. 두툼한 간이 매트리스와 새로 장만했다는 이불이 기분 좋게 했다. 아침에 날이 흐려서 일출을 보지 못했지만 해안가를 따라 걷기도 괜찮았다. 토요일이라 서둘러 충무김밥과 꿀빵을 사서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큰 걱정을 면했다.
언니들이랑 넷이서 나란히 한 방에 자면서 사흘을 보내고 보니 어릴 적 생각도 났다. 마음 닿는 대로 무리하지 않으며 여행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했다. 사소한 의견 차이도 흘러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우애 있게 잘 지내는 우리 자매들을 보시면 엄마 아빠도 하늘에서 빙그레 웃으실 것 같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잘 안 먹게 된다는 언니들을 위해 여행 후기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훠궈를 준비해서 양고기를 실컷 먹게 해주고 싶다^^
운전하느라 애 많이 쓴 언니들에게 조금 덜 미안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