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연 Apr 13. 2024

내 동생

나는 첫째로 태어나 둘째 동생이 못 해본 돌잔치를 했다. 뭘 집었는지도 기억 못 하는 돌잔치를 동생은 해보지 못해서 서운하다는 식으로 말했고, 나는 그게 뭐 별거냐는 식으로 답했다. 

돌잔치를 못해서 아픈 건 아니었겠지만 내 동생은 어릴 때 많이 아팠다.까맣고 깡마른 몸으로 코피도 자주 흘리고 잔병치례가 많았다. 그에 비해 난 무식할 정도로 튼튼했고 동생을 많이 괴롭혔다.

나는 동생에게 왕이었다. 동생은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들었다. 내가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려보라고 해서 동생은 뛰어내렸고, 다리가 부러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독한 폭군이었다.


동생과 나에게는 작은 세계가 있었다. 왕과 부하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대체로 행복했지만 이길 수 없는 게 있었는데 바로 엄마 아빠가 싸우는 날이다. 나는 그런 날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 장래희망은 요정이라고 그러니까 네 소원을 들어주는 게 내 희망이야 동생은 이불 속에서 가만히 들으면서 날 바라봤다. 까맣고 작은 동생은 내 상상을 들어주는 유일하게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아직도 그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사이다.


얼마 전에 대구에 갔다 왔다. 난 젠틀몬스터 안경을 사겠다고 노래를 불렀고, 동생은 같이 백화점에 가주었다. 나는 신세계 백화점에 들어가자마자 젠틀몬스터로 직행해 내 생애 가장 비싼 안경을 샀다.

기분이 좋았다. 내 생애! 가장 비싼! 무언가를 샀다! 그리고 이왕 쇼핑하는 거 운동화까지 사고 싶었다. 나는 스포츠 매장을 맴돌았고, 어른이 된 부하가 말했다. 언니 운동화 내가 사줄게.

그렇게 나는 운동화까지 사고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동생은 나보다 앞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나보다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있는 게 보였다. 스멀스멀 열등감이 피어올랐다. 아주 구리고 짜증 나는 그 감정에 말이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동생은 인스타를 하면서 말했다.

언니한테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때 백화점 매장에서 뿜어내는 잘난 빛들이 사그라 들었다. 대신 내 속에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빛을 뿜어냈다. 요정말이다.

동생과 나는 많은 시간을 지나왔지만 나는 여전히 요정에게서 뿌려지는

빛 같은 걸 본다. 이제는 우리를 괴롭힐 밤도 없고, 도망칠 이유는 없지만

여전히 왕이고 싶다. 부하를 아주 잘 지켜주는 왕 말이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었어도 내 장래희망은 여전히 같다. 네 소원을 이뤄주는 요정. 그게 내 소원이다 .

작가의 이전글 내가 태어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