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관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정 Mar 13. 2023

존재만으로 나를 살게 하던

네가 참 좋아서.



 "신은 안 믿어, 우리 아빠만 믿지. 우리 아빠가 나한테는 종교야."


 아버지를 향한 견고한 신뢰. 나는 그걸 태어나 처음으로 보았다.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신은 안 믿어도 아빠는 믿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나는 아빠를 떠올렸다. 제일 먼저 떠오른 감정은 공포였다. 그런데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아빠라는 지운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녀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늘 자신감에 차 있었다. 외로움에 휘둘리지 않았고 사람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주변에는 늘 사람이 넘쳐나고 모두가 호의를 가지고 그녀를 대했다. 나는 그녀가 마치 공주님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성장과정을 보지 않아도 사랑받고 자랐음을 온몸으로 내뿜는 사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래서 타인의 악의도 눈치채지 못해 생각지 못하는 사고들이 생기기도 했다.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악의는 없는 것 같아. 설마 나쁜 사람이겠어?’ 

 별 일이야 있겠느냐고 말하고는 꼭 별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네 말이 맞았다고 말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순수함이 참 부러웠다. 늘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나와 달리 세상을 그렇게 아름답게 볼 수 있다니,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지운의 집에 처음 놀러 간 것은 그녀를 알고 세 번째 만나던 날이다. 그녀는 스물둘에 가족들 품을 처음으로 떠나 타지로 왔고, 그녀의 캐리어에는 요리를 해본 적 없는 그녀를 걱정한 어머니가 챙겨주신 것들이 가득했다. 


 "와, 칼이랑 도마까지 다 챙겨 온 거야?"

 "응, 엄마가 나 이런 거 볼 줄 모른다고 다 챙겨주셨어. 나 그래도 라면은 끓일 줄 알아!"

 "오오 그거면 됐지, 라면 잘 끓이나 보다."

 "국그릇에 물 한그득 담으면 그게 딱 라면 하나 끓일 수 있는 분량이라던데… 아니야?"


 자신 있게 라면은 끓일 줄 안다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웃으며 맞지 맞지, 하고 말했고 그녀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캐리어에서 냄비를 꺼내어 들었다. 혼자 살면서 정말 라면만 먹을 것 같아 그날 저녁은 내가 요리를 하겠다고 했다. 저녁 메뉴는 탕수육이었는데 그녀는 내 옆에 붙어 요리하는 내내 이런 걸 어떻게 집에서 할 수 있느냐고 재잘재잘 떠들었다. 나는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멋진 척을 해댔다. 이렇게 말이야, 뚝딱 하면 돼.


 가구라고는 하나도 없는 텅 빈 거실에 박스를 가운데 두고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식사 내내 지운은 가족들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와, 정말? 하는 감탄사밖에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내겐 너무 낯선 이야기.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을 보며 나는 내내 나도 그녀처럼 가족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쾌한 아빠, 다정한 엄마, 가족밖에 모르는 착한 동생.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무슨 정신으로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어.]


 어떤 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숱한 날 중에 하나였을, 흔한 폭력이 지나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틈틈이 화장실에 가서 울며 일을 했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해 문자를 주고받던 중에 보낸 문자, 삼십 분쯤 지났을까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왜, 무슨 일 있어?"

 "잠깐 나와볼래?"

 "어딜?"

 "나 너 일하는데 앞이니까 잠깐만 나와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급히 문을 여니, 가게 앞에 샐리가 있었다(그녀는 그녀의 첫 차인 흰 차의 이름을 샐리라고 지었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기에 한걸음 다가갔는데 불쑥 내밀어진 꽃다발. 분홍색 장미였다. 


 "나 지금 생전 처음 해보는 일 하고 있어서 너무 창피하니까 빨리 좀 받아줘."

 "갑자기?"

 "너 기분 좀 좋아졌으면 해서."


 꽃다발을 받아 들자마자 그녀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 샐리의 뒷모습을 보며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나를 생각해 꽃을 고르고 그걸 전해주러 왔을 지운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꽃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어차피 시들면 버려야 되는데 뭐 하러 돈을 주고 사냐고 핀잔을 주던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꽃을 샀는지 너무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이런 서프라이즈로, 어떤 날은 그저 말 없는 토닥임으로 마음을 안아주는 사람, 그런 여유를 가진 그녀를 나는 참 많이 사랑했다. 후에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고, 일 년에 한 번 나를 보러 와 열흘 정도 머물다가 갈 때에도 그녀는 내 생각을 하며 여러 가지 선물들을 늘 캐리어에 가득 담아왔는데, 나를 나만큼이나 잘 아는 그녀가 나는 언니 같기도, 동생 같기도 했다. 


 자매 같은 친구, 실제로 자매가 없는 내게 지운은 피붙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게 늘 가까이에 있는,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도 마음만은 함께 있는 사람. 그런 지운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애를 쓰는 동안 그녀는 평범하게 일도 하고 연애도 하며 살았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가장 친구로 말했지만, 나는 가끔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졌다 느꼈다. 잘 지내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을 가까이 있던 때처럼 말하기가 어려웠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공감할 수 없는 일들도 함께 늘어났다. 거리감이 느껴져 슬픈 날에는 같은 사진을 꺼내어 보았다. 지운이 보내온 문자를 저장해 둔 사진이었다



   다정아, 다음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

   내가 사랑 많이 많이 주면서 키울게.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나는 절대로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지운은 다정했지만 표현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엄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울며 돌아왔을 때도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었고, 떨어져 있으며 한 번씩 통화를 하고 끊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우 난 쑥스러워서 말 못 해.. 나… 나도 …!’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지운에게 다음생에는 자신의 딸로 태어나라는 말이, 우주의 모든 기운을 끌어와 힘껏 나를 위로한 말임을 알고 있다. 늘 나를 안타까워하던 그녀의 진심이었음을. 여전히도 나는 지운의 문자를 보면 어김없이 울고 만다. 


 생각해 보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같은 귀한 순간들이 많았다.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던 때, 결혼식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우는 내게 괜찮다고, 네 맘 다 안다고 같이 울던 순간. 나의 첫 강아지가 죽던 날, 새벽에 불쑥 전화를 걸어 우는 나와 함께 울어주던 때, 하얀 강아지 두 마리를 품에 안는 꿈을 꾸어 태몽인가 했는데 얼마 후 통화를 하던 중에 임신사실을 알게 되어 함께 울던 일, 반짝반짝 빛나던 흰 강아지 두 마리처럼 귀여운 쌍둥이 딸을 낳아 처음으로 영상 전화를 하던 날, 아이들과 남편을 재우고 몰래 술을 마시며 소곤소곤 통화하던 밤, 아이가 말을 하고 걷고, 뛰게 되는 순간들 마다 보내오던 사진과 영상.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꼭 놀러 오겠다며 몇 번이고 하던 약속. 연말 회식 후 전화가 와서는 가족을 꾸리는 이 행복을 네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혼자 지내는 네가 너무 걱정된다고 말하던 물기 어린 목소리. 나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본 나의 유일한 지운. 






 나는 온전히 나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었던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정말 그냥 나이기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좋았던 순간들 속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지운을 떠올리며, 나도 그녀처럼 누군가에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을 만큼 큰 사람이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딸의 우울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