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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nseo Mar 27. 2024

물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물건이었다.

평범한 물건은 일상에선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지나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 사람과 관련 있는 평범한 물건이, 그의 부재와 동시에 평범하지 않게 된다.


평범한 물건은 이제 위대한 힘을 갖는다.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연결해 주니 말이다.

추억들 뿐만 아니라 손짓, 몸짓, 그 사람의 호흡까지.

’물건에 모두 깃들어 있었다.

평범한 물건은 드디어 인식된다.

물건은 나에게서 존재감을 얻는다.

그렇게 귀중품의 자격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갓 태어난 귀중품은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평범함도 아니다.

이제는 단지 쓰레기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이 되어버렸고.

사랑했던 사람과 쌓았던 추억은 정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물건이 있던 방을 청소해야 한다.

이제 막 정을 붙였던 ‘귀중했던’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청소는 고통으로 이어졌지만,

또 다른 물건들을 맞이해야 하기에,

나는 방을 비워야만 한다.

그래야 새로운 존재로 상실감을 흘려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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