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독 쁘띠 디저트에 손이 가는 이유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 보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아이디어의 주문제작 케이크들이 눈에 띈다. 많은 이들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제작하는 '도시락 케이크'는 일반 홀케이크보다 작은 사이즈지만, 원하는 디자인으로 선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케이크로 애용하고 있는데, 도시락 케이크를 뒤이어 또 다시 특별한 케이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한 입에 넣으면 끝날 사이즈의 케이크, 일명 ‘마이크로 케이크’가 그 주인공이다. 아기자기하고 조그마한 사이즈에 뭐가 얹어질 수는 있을까 싶지만, 섬세하게 오목조목 들어가있는 데코를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지고 감탄을 내뱉게 된다. 비록 7천원에서 만원 정도로 다소 가격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손가락만한 사이즈에 색다른 이벤트와 재미, 감동의 가치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누데이크 마이크로 크로아상’. 지금은 열기가 식었지만, 출시 되었을 당시,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한입 케이크보다 더 작은 사이즈로 거의 손톱만한 빵이었고, 잘못 집었다가는 순식간에 부숴질 비주얼이다.
그래도 제법 크로아상이라고 나름대로 크로아상의 특징은 다 갖춰져 있고, 특유의 달짝지근한 시럽도 잘 살려져있다. 이 흥미로운 빵을 리뷰하기 위한 컨텐츠들이 빼곡했는데, 일부는 그저 장난으로 받아들여지기만 할 뿐 반응은 차가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누데이크를 기념할 겸 한번쯤은 사 봐도 괜찮았을 특별한 경험으로 보기도 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독특한 베이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누군가의 기념일을 위해서, 혹은 특별한 간식을 위해서 차려진 디저트 상차림에는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점들의 빵과, 기본 케이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점차 까눌레, 휘낭시에, 에끌레르 등의 서구식 디저트들이 한국을 강타하면서 성수나 연남동, 방배동 같은 핫플레이스에서 이를 빼놓은 디저트 카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사람들 입맛에 일반적인 구움과자들은 이제 평범해버져린 것인지 마이크로 크로아상이나 한입 케이크 처럼 시그니처가 깃든 메뉴들이 하나 둘씩 개발되고 있다. 서양 만큼이나 우리도 빵을 많이 찾고 있고 식사 이후 디저트 배는 따로 있을만큼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한국의 디저트 문화. 이 흐름에 발맞춰 한국만의 디저트들이 나타나면서 서구만이 디저트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디저트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우리만의 디저트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향유해나가는 것일까.
우선, 많고 많은 서구 국가들 중 디저트의 본고장인 유럽을 살펴보자.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바게트나 브로트 종류의 빵들이 식사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테이블에 놓여있다. 식사 전이든, 식사 중이든, 후이든 언제나 빵에 손이 가도 상관이 없고 오히려 음식의 한 종류로 여겨진다. 쁘띠갸토 같이 여러 맛이 가미된 제과도 예외는 아니다. 보통 이러한 종류는 테이블에 계속해서 함께 존재하기 보다 식후에 즐기곤 하지만, 식사 후에 바로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티타임을 갖게된다. 식사와의 경계가 모호해 이 또한 음식의 일부, 식사의 연장선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유럽에서 식사시간은 기본 2시간을 잡아야 한다.
반면 한국은 빵 자체가 간식이다. 빵으로 한끼를 떼웠다고 하면 그게 밥이 되냐며 꾸중을 듣곤 한다. 양식집 코스가 아닌 이상 식당에서도 빵을 다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빵을 먹기 위해서는 카페나 빵집에 들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식사 시간을 끝마무리 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의 디저트 시간은 식사와 분명하게 분리되고, 카페에서 따로 이뤄진다.
그렇다고 해서 카페에서 디저트를 온전히 즐기는가? yes라고 하기 어렵다는 건 모두가 잘 아는 사실. 어느 카페를 가던지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음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최소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어야 하고, 일행들과 함께 일상 수다 보다는 일과 관련된 대화를 하곤 한다. 음료와 디저트는 그저 각자만의 할일을 위한 자릿세에 불과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식사와의 경계는 뚜렷하지만 업무와 과제를 위한 각자만의 행위 시간과는 굉장히 모호하다.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던 공간은 우리가 그곳을 더 잘 알게 되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장소가 됩니다. 우리는 장소의 안전과 안정을 통해 공간의 개방성과 자유, 위협을 인식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공간을 ‘움직임(movement)’이 허용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pause)’가 일어나는 곳이 됩니다. 움직임 중에 정지가 일어난다면 그 위치는 바로 장소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간과 장소』 이푸 투안
여유로운 안정, 느긋한 자유로움이 허용되는 유럽. 그 곳은 무엇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 강제 쉼을 허용한다. 카페에 앉아있는 유럽인들은 세상의 시끄러움을 하나도 안듣는 듯 평화롭게 커피잔을 기울이고, 주문한 케이크를 맛있게 음미한다. 너무나 바쁜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그들 사이에 앉아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쉼을 허락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의 카페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수많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들이 하나같이 카운터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노트북과 핸드폰을 보는 다른쪽 손은 뒤로 한채 출출한 허기를 채워줄 작은 쿠키들과 간식들이 한손에 들려져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유럽에서는 정지된 상태로 디저트를 향유하기 위한 장소가 마련되지만, 한국에서는 움직이며 디저트를 소비하는 공간이 즐비해있다.
뭐든지 빨리빨리, 완벽하게 부지런히 해내야 하는 우리의 성향은 어쩌면 간식에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유로운 나라에서 날아온 디저트는 항상 바쁜 사회에 정착했다. 그리고 우리의 움직임을 위한 배터리로 가동 중에 있다.
우리에게 휴식의 장소는 오히려 식사를 하는 집이나 식당이다. 유튜브는 밥친구라는 말이 입에 붙은것처럼 혼자서 밥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것 만큼 힐링인 시간이 없다. 유일하게 휴식과 여유가 허락된 시간이다.
여유롭지 못한 디저트 타임, 그렇다고 잘못된 건 아니다. 디저트의 본고지인 유럽에서는 오붓한 시간을 위한 파트이지만 그건 그들의 문화이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디저트가 이곳의 방식대로 자리잡은 것이다.
노트북 하나를 두기만해도 가득차버리는 카페 테이블. 커피를 놓을 공간도 간신히 확보하는데, 배가 허전할 땐 디저트까지 놓아야 한다. 게다가 한손으로는 마우스나 펜을 움직이기 바쁘고, 온전히 디저트에만 손을 쓰기엔 우리는 너무 바쁘다. 그런 상황에서 쌉싸름한 커피의 향을 중화시키고, 허전한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한입, 한손에 다 들어갈 작은 디저트가 필요하다.
서양의 디저트들 중에서 군침을 돌게하는 맛있는 디저트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디저트는 커다란 케이크가 아닌 작은 조각 케이크고, 테이블의 반을 차지하는 식빵이 아닌 작은 휘낭시에와 에끌레르다. 디저트들보다 노트북이 들어설 공간이 우선이기에 아기자기한 쁘띠 디저트들은 테이블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는데 딱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카페를 가서 메뉴를 고를 때, 테이블을 생각해서 작은 사이즈의 쿠키나 구움과자를 무의식적으로 고려하곤 한다.
게다가 허기를 채울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아름답다면 잠시동안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에 작은 미학이 담기면서 하루의 일과를 즐겁게 기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프랑스가 워낙 제과가 뛰어난 나라인 것도 있지만, 다른 유럽의 디저트들보다 프랑스의 쁘띠 디저트는 한국 사람의 라이프에 탁월한 선택지가 된다.
디저트, 비록 다른 땅에서 들어온 개념이지만, 지금은 우리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고, 우리만의 디저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자체의 맛과 시간을 즐기고 음미하는 디저트의 본질이 때로는 부럽기도 하고 동경스럽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삶 자체로 탈바꿈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디저트 문화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우리대로 디저트가 주는 다양한 형태의 즐거움과 뿌듯함, 그리고 이곳만의 디저트를 즐기는게 디저트 문화라고 본다.
곧 연말인만큼 올해 나의 원동력이 되어준 달콤한 간식들을 떠올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아기자기한 쁘띠 디저트로 기념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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