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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터치 May 02. 2024

영국일기 32. 후덥지근함

영국의 날씨는 최저기온 8도, 최고기온 18도. 내가 영국에 온 이후로 이 날씨가 두 달간 유지되었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날씨라 하지만, 영국의 날씨는 역동적인 사계절이 있는 한반도가 고향인 나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변하지 않는 날씨에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기온이 같아도, 나무에 꽃이 피고, 푸릇푸릇 잎사귀가 달렸다)


매번 날씨가 나의 힘을 빼던 와중, 오늘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오늘 날씨는 내가 지난 두 달간 경험했던, 날씨와는 사뭇 달랐다. 기온이 20도를 넘었고, 비가 올 것 같은 하늘, 공기는 습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던 중 땀이 나서 외투를 벗었다. 등에 땀이 찬 것 같은 찜찜 한도 있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름이 온다는 생각에 기운 빠졌겠지만 오늘은 발걸음 가벼워졌다. 다시 집으로 가다, 왜 기분이 좋아 졌는지 고민했고 쉽게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늦봄 집으로 가던 길,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덥고 습한 공기에 아침에 입고 나왔던 외투를 벗어야 했던 그 찝찝한 한국의 날씨와 우연히 다시 조우한 것이었다. 나는 몸이 기억하는 날씨를 만나니, 매번 티격태격하던 부모님이 오랜만에 갑자기 면회라도 것처럼 반가웠던 것이다. 


날씨가 이렇게 까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곳에서 알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아무리 활동하기 최적의 기온이 장기간 유지 될지라도, 사람의 몸이 장기간 기억하고 있는 기온 패턴이 갑자기 변한다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한국의 날씨와의 조우가 반가웠지만, 나는 영국에 살고 있기에 한국의 날씨를 그리워하기보다는 이곳의 날씨와 친해지는 것이 이곳에 정착하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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