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내 몸의 밭을 일구다

2. 회복의 여정 : 흙과 밥상, 내 몸의 기록

by 조영빈

2. 회복의 여정 : 흙과 밥상, 내 몸의 기록


수술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의 차가운 공기와 소독약 냄새, 24시간 꺼지지 않던 복도의 희미한 불빛 대신 집 안에는 나무의 향기와 부드러운 햇살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비록 몸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지만, 드디어 ‘회복의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병상 위의 치료가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다면, 집으로 돌아온 회복은 잃어버린 삶을 되찾기 위한 따뜻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중심에는 언제나처럼 나의 작은 치유정원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였다.

‘스스로 회복의 길을 살아내는 것.’

나는 나 자신을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세우기로 했다. 스스로 설계하고 직접 참여하는 ‘1인 치유 프로그램’의 첫 실험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 길의 출발점은, 오래도록 꿈꿔온 바로 그 치유농장이었다. 이제 그 기록을 남기려 한다.


회복일지 - 흙 위에서 다시 배우는 몸의 언어


봄 – 꺠어나는 몸(4~5월)

퇴원 후 마당으로 나가 맨발로 잔디를 밟았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 냉기가 통증보다 더 선명하게 나를 깨웠다. 회복은 멈춤이 아니라, 느리게 되살아나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물을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 밤마다 몇 번씩 깨어나야 하는지,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흙냄새를 맡는 순간마다 몸은 스스로의 속도로 살아났다.


D+11(5.11) 퇴원 다음 날 ― 집이 최고다

열흘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정원은 계절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풀이 한층 푸르고, 배롱나무엔 새잎이 돋아났고, 백합도 놀랍게 자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자연은 쉬지 않고 자라고 있었고,

나의 삶 또한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회복 중이었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내 회복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바로 이곳이었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몸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D+15(5.15) – 퍼머컬처 치유정원에서 “회복은 지금에서 시작된다.”

퇴원 5일차

오늘은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던 정원으로 직접 들어가

어제 베어둔 풀 위에 손수 퇴비 한 줌을 덮었다.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서리 피해로 시든 바질과 오이를 보며 안쓰러웠지만

이렇게 덮어주고 돌보면 식물도, 나도 조금씩 회복하리라 믿었다.

‘조금만 더 일찍 이렇게 해줄 걸…’ 하는 후회가 스쳤지만

이제는 안다. 회복은 언제나 ‘지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D+17(5.17) 소독을 마치며 “흉터는 고통이 아니라 용기의 자국.”

오늘은 수술 후 세 번째 소독을 받았다.

붕대 아래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가끔 느껴지는 약한 가려움은 살아 있는 세포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복부에 덧대어진 거즈와 테이프 몇 장.

그 흔적들은 더 이상 ‘고통의 자국’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건너온 용기의 증표’처럼 보였다.

몸은 생각보다 강했고, 회복은 뜻밖에도 따뜻했다.

이제 다시, 일상의 한 걸음으로 나아가 본다.

정원으로 향하는 길이 한결 가벼워졌다.


D+21(5.21) 내 몸을 살리는 약이 되다 “음식이 몸과 마음의 언어가 되다.”

먹는 일에서도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짠 음식과 기름진 음식은 멀리하고,

직접 재배한 채소나 지역에서 얻은 식재료로

자연식, 항염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었다.

처음엔 밍밍하게 느껴졌던 맛이 몸이 먼저 반겨주는 걸 느꼈다.

소화가 편해지고, 잠이 깊어지고, 마음이 잔잔해졌다.

음식은 이제 영양의 공급원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서로를 위로하는 언어가 되었다.


D+31(5.31) 퇴원 3주째 “산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퇴원 후 3주째 되는 아침,

햇살이 비추는 정원의 모습은 내 몸의 회복과 꼭 닮아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날의 식탁은 흙이 내게 준 작은 보상이었다.

방금 딴 상추와 케일, 한련화 꽃잎을 섞어 샐러드를 만들고

직접 구운 단호박, 당근, 표고버섯을 곁들였다.

신선한 채소의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의 감각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산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조금 더 평화롭게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 다음은 여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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