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을 왜 외워야 하나요?
어릴 때, 내 두뇌 능력을 얕잡아 본 사람은 없다. 딱 한 사람 작은 누나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찐 친남매 사이라 예외라 치자. 내가 초등 3학년 즈음 작은 누나에게 "공부한다는 것이 뭐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은 누나의 대응은 한결같다. 질문하는 나를 공격하는 것.
여하간, 그때 나는 공부, 즉, 무엇인가 알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다( 노력없이 그냥 다 알 수 있었다는... 똑똑하고 나 잘났다는 이야기). 재수 없을 이야기를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초등학교 2학년 때(2반이었고 출석번호는 6번, 담임 선생님 성함은 이혜숙 선생님) 구구단 외우기 과제가 주어졌다. 어려서부터 누나들, 그리고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교과 과정을 건너뛰어(일종의 선행학습이 되어) 아는 것이 많았다. 특히 수학(당시는 산수라고 부름)은 특히 더 잘했다. 단순 계산을 하는 것은 흥미 없어했지만 그렇다고 못하지는 않아서, 구구단은 못 외워도 곱셈이 되었고 교환법칙도 알고 있었다. 즉, 2x7=14를 알고 있었고, 7x2를 보면 2x7과 같으니 14인 것을 알았다는 것.
그러다 보니 구구단을 외우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됐다. 앞의 숫자가 작고 뒤의 숫자가 크면 자연스럽게 말로 나오는데, 앞의 숫자가 크고 뒤의 숫자가 작으면 머릿속에서 교환법칙을 거쳐서 입으로 나오기 때문에 구구단을 못 외우는 것으로 보였다. 담임 선생님은 하루 날을 잡아서 한 명씩 구구단을 못 외우면 집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계속 불합격을 해서 방과 후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교실에 남아서 구구단을 외워야 했다. 국어책의 시를 외우는 것처럼 다른 과목의 암기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구구단은 머릿속 교환법칙의 간섭 때문에 도저히 줄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담임 선생님에게 내 인생 최초의 항의를 했다.
"선생님, 2단처럼 앞의 숫자가 작은 것은 하겠는데, 반대는 안 외워집니다. 그래도 계산이 다 되는데 안 외우면 안 됩니까?"
그 당시 내 워딩이 대충 이랬던 것 같고, 선생님의 워딩은 아마도,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다 하는데 너만 왜 그러니?"
였다.
이런 문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반복된다.
내 말의 취지는,
"구구단을 외우는 것은 곱셈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충분히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을 하고 있는데 왜 더 노력해서 검사에 통과해야 하는 하는가?"
라는 항의였고, 선생님의 논리는 남들 다 하는 것이니 남들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면,
"선생님이 말하는 관행, 관습, 전통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그 이전에 그것이 이뤄진 근본정신이 있다. 나가 그 근본 정신과 취지에 더 잘 맞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것이고,
나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넌 왜 남들과 다르게 하냐? 그냥 남들과 똑같이 따라 하면 안 되겠니?"
라는 것.
난 구구단은 그때도 결국 못 외었고, 지금도 못 외운다. (그래서 [구구단을 외자]라는 게임을 극혐 한다.)
하지만, 고교 때까지 수학 성적은 최상위였고, 수학경시대회에 입상도 하고, 명문대 수학과를 나왔고, 수학을 가르쳐 제자들도 다수 길러냈다. 이 정도면 내 인생 최초의 반항은 내가 더 타당했음을 증명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 내가 틀렸다고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릴 헤메 다니네
...
부러져 버린 너의 그런 날개로
너는 얼마나 날아갈 수 있다 생각하나
...
내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시대유감> 서태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