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행복이 슬며시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래서 해마다 이쯤이면 어김없이 우리 아파트로 감, 고구마를 팔러 오는 아저씨를 기다린다. 올가을에도 그분이 오셨나 보다. 어느 날 아내는 감을 사다가 서재(書齋)에 감춰 두었다. 나는 전혀 몰랐다.
"혹시 감 사 왔는데, 봤어?"
"어, 뭐라고. 감 사 왔다고. 어디야?"
아내의 손길 따라 가니, 구례 대봉 한 박스가 있었다. 즉시 박스를 개봉해서 잘 익은 홍시(紅柹)를 한 개 꺼내 먹었다. 아주 달달한 맛있는 홍시였다. 문득 아내가 선물한 가을 행복이 슬며시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아내는 동네 마트에서는 1,000원이 더 싸다며 의령대봉감 10kg 3박스와 고구마를 40kg 정도 사 왔다. 유난히 탐스러운 감과 고구마를 보며 나는 함빡 웃었다. 올가을에도 아낌없이 풍성한 가을 선물을 안겨준 아내가 고마왔다. 유독 내가 좋아하는 감과 고구마 선물을 한가득 사 오다니. 감동의 물결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고마운 마음을 고이고이 새겨가며 오래도록 먹으려고 여러 궁리를 했다. 감은 기온이 낮은 뒷 베란다(veranda)에, 고구마는 일단 충분히 말려서 거실에 둘 것이다. 지금은 비록 노랗고 파란 감이지만, 곧 모두 홍시가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씩 하나씩 키친타월(kitchen towel)로 싸서 냉동 보관해야겠다. 홍시를 먹고 싶은 날에는 아침에 냉동 홍시를 하나씩 꺼내 자연해동(解凍)시켜두었다가 물렁해지면 먹을 것이다. 당도가 높으니 하루에 꼭 하나씩만 먹어야겠다. 작년에도 하루에 한 개씩 먹겠다고 아내와 약속했지만, 모르게 슬쩍슬쩍 두세 개씩 배불리 먹지 않았는가? 금년에는 꼭 하루에 한 개씩 먹겠다고 스스로 약속해 보았다.
고구마는 대표(애견 이름)의 최애(最爱) 식품이니, 꼭 같이 먹어야겠다. 썩지 않게 잘 보관해서 한겨울 내내 대표도 맛있게 먹고, 나도 맛있게 먹어야겠다.
금년 겨울에는 대봉감과 고구마 먹는 즐거움에 푹 빠져 아내의 사랑을 무진장 느껴 보고 싶다. 당수치가 높다며 아예 먹지 않고 모조리 내게 양보하려는 아내의 속 깊은 마음도 헤아려야겠다.
ㅎㅎㅎ!
오늘도 나는 대봉감과 고구마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마음 설렘으로 미소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