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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한 Mar 06. 2024

성숙해진다는 것은

허무와 공허를 받아들이면서부터

사람이 성숙해지는 과정에는

삶의 근본적인 허무와 공허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수반한다.

과거로 돌아가보면,

삶이라는 긴 여정에 있어

허무함과 공허를 느끼는 순간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삶은 항상, 혹은 대부분이

즐겁고 충만한 순간들로 채워져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렇기에 이따금씩 불쑥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공허함을

쉽게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손님은

때때로 우울감을 데려오곤 했다.

생각해 보면 삶의 많은 기간들은 텅 비어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깨닫는다.

우리는 그것을 공허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상태는 반드시 필요하다.


짧은 음표 사이의 쉼표들이 존재해야만

아름다운 멜로디 한 소절이 탄생하듯

짧고 강렬하고 충만한 순간들 사이의 공허가

아름다운 삶의 과정들을 탄생시킨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었다.

수많은 쾌락과 충만함이

우리의 정신과 뇌에 주는 자극적인 충격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살다 보면, 기쁨과 쾌락과 자극으로

가득 찬 순간은 삶에 있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기쁨을

더 감사한 마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며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에 익숙해진다.

설렘 역시 찰나일 뿐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충만함을 선물해 줄 만한

상황이 발생하는 빈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우리 삶은 무언가로 채워져 있는 순간보다는

텅 비어있는 순간, 즉 공허의 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여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하는

그 진심 어린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가 온다.


첫 깨달음의 순간에는 두려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이 본래 이토록 허무하고 공허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앞으로 어떤 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걱정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보통 '성숙하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세상의 일에 초연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지키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본래 허무하고 공허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고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공허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혜롭게 느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다.


평정심과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의 태도는

삶이 본래 공허하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로부터 나온다.


세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희로애락, 우리가 느끼는 고통 모두

결국 거시적인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극히 허무하다.


그렇기에 삶에는 크게 두려워할 것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할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온과 성숙이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삶의 공허함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과 큰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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