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을스러운 음악 중 하나인 'Autumn Leaves'. 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가들이 이 곡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하지만 보컬에 한하여 봤을 때가을의 쓸쓸함과 깊음을 가장 잘 노래한 이는 에디트 피아프와 냇 킹 콜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뒤를 잇는 보컬리스트는 당연히 냇 킹 콜이라고 생각한다.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모두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이지만 결국 재즈는 블랙 뮤직이다. 그만큼 재즈 본연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보컬은 흑인이라고 생각하기에 루이 암스트롱의 후계자는 냇 킹 콜이라고 본다.
민족주의, 우생학 그런 거 아니다. 시대적 배경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재즈는 타 장르와 융합되기도 했고 미국만이 아닌 다른 국가에도 진출되어글로벌한 장르가 되었다. 웅산, 이토 타케시, 혼다 마사토 등의 유명 아시아 뮤지션들도 많은 것을 보면 흑인만이 이해하거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도 할 순 없다. 그러나 냇 킹 콜이 활동하던 1940년대에서 50년대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그렇기에 블랙 뮤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본인을 말하고 음악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당시 흑인 뮤지션들이 적격이라 생각한다. 레이 찰스의 'Georgia On My Mind', 존 콜트레인의 'Alabama'와 같은 흑인 인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곡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냇 킹 콜은 흑인 인권에 대해 말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거했던 뮤지션이다. 그래서인지 더 어려웠고 힘들었다. 그런 만큼 목소리로써 청중을 사로잡고, 음악성에 기반한 명성을 통해 당시 흑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했단 점에서 더욱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듣기엔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특히 색깔이 그렇다. 역으로 봤을 때 과거 백인 재즈 뮤지션에 대한 관심과 비난의이유도 피부색 때문이라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흑백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색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인간은,그의 또 다른 명곡인'Smile'의 가사처럼 그저 웃음으로 삶의 남은 시간을 살아내야 할 것 같다.
중후하면서 사연 있는 듯한 목소리의 냇 킹 콜.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그의 블랙 보이스를 통해음악을 감상하며 진중한 생각에 잠겨봐야겠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곡이자 모든 것의 답이자 물음인 사랑(L-O-V-E)을 들으며 이번 가을을 준비하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