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안 나의 책꽂이에 꽂힌 위인전 중 ‘빈센트 반 고흐’라고 적힌 게 있었다. 길고 멋있어 보이는 이름이라 생각하며 책을 꺼내 읽었다. 미술학원을 다니긴 했으나 화가라는 자들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기에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고 읽었던 짧은 위인전이었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게 내 인생의 첫 화가가 되었고 현재까지 가장 애정하는 화가로 남아있다.
어린 날에 비해 나이가 들고 미술에 관심이 더욱 생기다 보니 다른 많은 화가도 알게 되고 좋아하는 작품도 여럿 늘었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빈센트 반 고흐'라 하면 무언가 느껴지는 감정의 결이 좀 다르다. 이유를 찾긴 어려우나 굳이 찾고 싶진 않다. 그저 화가만의 느낌이라 믿고 있다.
고흐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게도 노랑,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색이다. 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란색을 좋아하진 않았다. 수많은 색깔 중 하나였고 주황빛 크리스마스 조명 불빛색과 울트라마린 계열의 푸른색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주황 불빛을 가장 애정하긴 한다) 하지만 고흐를 상징하는 색이 노란색인 건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고 개인적으론 제일 좋아하는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이기에 싫어하는 색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싫어하는 색이 될 순 없었다. 그리고 현재 옷장을 열어보면 색감 있는 옷들 중 노란 계열의 옷이 많이 있고 이를 통해 적어도 지금으로선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렇듯 강렬한 노란빛을 담은 그림을 그린 이유가 압생트라는 초록색 술 때문일 수 있단 이야기를 들은 뒤부턴 반 고흐의 노란색이 주는 느낌이 바뀌었다. 이전엔 차분한 태양을 색깔화 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강렬한 노랑이었는데 초록색의 압생트와 관련한 이야기를 알게 된 후 강렬함보단 측은하단 느낌이 우선되었다. 알코올과 마약 같은 것을 통해 예술을 이어가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술 하나를 두고 그의 전 인생을 판단하긴 어렵지만 반 고흐의 말로를 알기에 느끼는 측은함인 듯싶다.
살아생전 자신의 색깔처럼 빛나진 못했던 반 고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그렸고, 본인의 시선을 가득 채운 노란빛을 그대로 캔버스에 칠해나간 과정, 남아있는 그의 작품들은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거 한다. 이는 이어져 현재까지도 여러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을 추억하고 기념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의 위대함을 후대 인류는 알고 있고 감탄하고 있으니, 그의 인생 자체는 너무나 기구하면서도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인생을 통해 예술의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우리다. 이러한 감상을 선물한 빈센트 반 고흐에게 작은 감사, 혹은 관심을 표하는 것은 어떤가? 감사라 해봐야 별것 아니다. 우린 그를 보통 반 고흐로 명칭 하지만 막상 그는 반 고흐보단 자신을 빈센트라 불러주는 걸 더 좋아했다는 정설 같지 않은 정설이 있다. 만약 빈센트의 작품을 접하고 시선이 머문 적이 있거나 그에 대해 긍정의 마음을 가진 이라면 빈센트 반 고흐를 반 고흐가 아닌 빈센트로 불러 자그마한 고마움을 드러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