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스리랑카라니. 살다 살다 내가 스리랑카에 가게 되다니. 들어만봤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도 서핑을 하러! 예전의 나를 붙잡고 지금의 내가 서핑 때문에 스리랑카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믿지 않을 게 뻔하다. 정보가 없는 곳을 여행할 도전적인 사람도 아닌데다가 심지어 첫 번째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5년치 해외여행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나 이런 데 처음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 것도 내키지 않고,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변수에 긴장하는 것도 싫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담담하게 헤쳐나갈 자신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스리랑카 같은 낯선 나라에 여행을 올만한 위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스리랑카의 이국적인 향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미리 챙겨야할 것들을 일러주고, 어떤 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옆에만 붙어있으면 뭐든 뚝딱뚝딱 해결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서핑샵 사장님들이 스리랑카로 서핑 여행을 가셨고, 다른 한국 사람들도 같이 서핑을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숙소도 큰 집을 빌려 함께 쓰고, 서핑을 할 때도 같이 움직이고, 밥도 같이 먹는 패키지 아닌 패키지 느낌으로. 좋은 기회로 닿아서 17일 동안 스리랑카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스리랑카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 그냥 멀다.
비행기표 예매를 하고, 몇 주가 지났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짐을 다 쌌을 때 그제야 가긴 가는구나 싶은 정도였다.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기 10시간 전, 공차의 제주 그린티 스무디를 당분간 못 먹는 게 아쉬워서 한 잔 사 마셨더니 새벽까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비행기라 새벽 4시쯤 집에서 나와야했는데 한 숨도 못 자고 출발했다. 피곤함 지수를 가득 채워가면 비행기 안에서 곯아 떨어지지 않을까 했지만, 나란 인간은 생각보다 아무데서나 못자는 인간이었다. 이코노미석은 내 방 매트리스만큼 편안하지 않으니 잘 수 있는만큼 최대한 자두어야한다는 걸 배웠다. 다음에 비행기를 탈 때에는 피곤함 지수를 최대한 낮춰서 가야겠다.
한국에서 스리랑카까지 혼자 가야했다면 장벽이 더 높게 느껴졌을텐데 운이 좋게도 지인과 같이 갔다가 올 수 있게 되었다. 아니었으면 아마도 지금쯤 집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멍하니 보고 있었지 않을까. 의지가 가능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 있다는 것은 불안함을 반의 반으로 줄여준다. 지루할 때 떠들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을 때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같이 모른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기다리다 앉고, 서있다가 기다리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꽤 오랜 시간 비행기에 앉아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확인을 해보니 고작 1시간이 지나있거나, 줄을 기다릴 때에는 왜 내가 서있는 줄만 교통체증이 일어나는지 모르겠거나. 영화도 보고, 다운로드 받은 책도 읽고, 잠도 자봤지만 시간을 빠르게 보내기에 큰 효과는 없었다. 지칠 때까지 지쳐서 공항에 도착했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2시간을 더 가야했다. 그래도 정말로 다 왔구나 실감하며 피곤에 절은 몸을 움직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반기는 습기 때문에 스리랑카에 왔다는 게 확 느껴졌다. 하지만 자꾸 무거워져 감기는 눈꺼풀 때문에 그것도 금방 잊어버렸다. 정신줄을 반쯤 놓은 채 숙소에 도착해서 컵라면과 망고 주스를 빠르게 해치우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깊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