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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주 Jan 10. 2024

스리랑카 서핑 여행 2

영화 속에 들어온듯한


웰리가마라는 지역에서 지내고 있는데 여기는 다양한 서핑 스팟이 있어서 초보 서퍼부터 고수들까지 즐길 수 있는 파도가 들어오는 곳이라 한다. 기대를 안고 웰리가마의 파도를 만난 첫 날이었다.


그래도 어제 밤늦게 들어오고 첫째 날인데 설마 새벽부터 서핑을 하러 나가지는 않겠지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새벽 6시 40분까지 준비를 마치고 바다로 출발했다. 툭툭이를 처음으로 타봤는데 사방이 뚫려있어 불안한 것 같으면서도 안정감이 있었다. 한국의 1월과는 전혀 다른 날씨와 습도가 피부에 닿고, 까만 피부와 큰 눈을 가진 사람들, 마치 상형 문자 같은 간판들이 보이니 스리랑카에 와있다는 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해변에 도착해서 서핑샵을 가니 꼬마 친구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줬다.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눈이 마주치니 누구나 미소를 지어줬다. 이파리가 큰 나무들과 서퍼들을 품고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두고, 영어로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니 영화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웰리가마의 파도는


한국에서도 서핑을 많이 해봤던 건 아니지만 스리랑카의 파도와 한국의 파도가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파도의 힘보다 몇 배는 더 강해서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두 세번 고꾸라지며 스리랑카 바닷물을 양껏 마시고 나니 그나마 적응이 된 듯 했다. 션에게 강습을 받았는데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봐 걱정했지만 쉴새없이 몰아치는 파도 덕에 걱정이 들어설 틈이 사라졌다. 피드백을 들으면서 쉬지 않고 파도를 타고 또 탔다. 션은 내 상체가 너무 높다면서 코코넛 나무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습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쉬었다. 세 달만의 서핑이어서 그런지, 웰리가마의 파도가 나를 격하게 반겼던 탓인지 힘들었다. 아무래도 꼬박 하루를 스리랑카로 오는 데에 써서 에너지가 충전될 시간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었겠지. 지쳐서 앉아있으니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서 가져다 주었다. 코코넛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별 맛 안 나는 것 같으면서도 서핑 후에 먹으니 끝내주게 맛있었다.


파도를 스스로 잡는 것에 자신이 없었는데 웰리가마의 파도는 형펀없는 서핑 실력을 가진 나란 사람도 손쉽게 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발이 까지고, 무릎이 쓸리고, 짠 바닷물을 밥을 안 먹어도 될만큼 배부르게 먹었지만 행복했다. 힘있는 파도는 끊임없이 들어오지. 자세가 완벽하진 않아도 일어서기는 하지. 바다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코리아‘ 한 마디만 해주면 좋아 죽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 스리랑카에 오기로 결심해준 과거의 나를 잘했다며 토닥여주고 싶어졌다.


한참 서핑을 한 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 30분 밖에 안 되어 있었다. 역시 하루를 일찍 시작하니 다르구나. 한국에 있었으면 쿨쿨 자고 있었을 시간인데 말이다. 숙소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음료를 파는 곳에서 파인애플 주스를 사 마셨다. 생 파인애플을 갈아서 가득 담아주는데 한국 돈으로 2,000원 밖에 안 한다. 시원하고 달달하게 주스를 들이켰다. 과일 주스 종류가 많았는데, 올 때마다 하나씩 사 먹으면 한국 돌아가기 전까지 다 마셔볼 수 있을 것 같다.


스리랑카인 친구가 생겼다


서핑샵에서 일하고 있는 리욘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한국을 좋아한다며 꽤나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이름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 다가가 영어로 스펠링을 써달라 했더니 한국어 자판으로 바꿔달라 하고 한국어로 자기 이름을 입력했다. 내 이름도 한글로 써주니까 ‘민’ ‘주’라고 스스로 읽는 걸 보고 놀랐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많이 가서 한국인들에게 친절하다고 하는데,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고 좋아해주니까 고마웠다. 얼마나 배웠냐고 물어보니 EBS로 6개월 배웠다고 답을 해줬다. 고작 여섯 달 배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리욘의 한국어 실력은 대단했다. 나중에 한국에 꼭 갈테니 거기서도 보자며 한국말로 ‘또 보자‘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줬는데 게시물, 스토리, 라이브 모든 알림을 켜놓으며 디엠해도 되냐고 묻길래 당연히 된다고 웃어줬다. 같이 셀카도 찍고, 리욘이 한국말 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두고 싶어서 허락을 받고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점심으로 싸온 로띠와 커리를 먹어보라며 나눠주길래 괜찮다고 사양을 했지만 많이 먹으라길래 못이기는 척 한입 먹었다. 그런데 로띠도 쫀득하고, 커리도 살짝 매콤한 게 상상 이상으로 맛있어서 염치없이 몇 번 더 뜯어 먹었다.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친절할 수가 있나.


해외 여행을 갔을 때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나도 그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상대도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손짓 발짓을 사용하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소통하는 것. 못 알아 듣겠어도 대충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게 가지는 낯섬과 불편함도 있지만 그에 준하는 새로움과 신선한 매력이 있다. 리욘이 한국어 공부를 하는 것처럼 나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이렇게나 엉성할줄이야


숙소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 서핑 영상 리뷰를 했다. 서핑 하는 모습을 찍어주신 걸 보면서 고쳐야할 점을 짚고, 자세도 연습을 해보는 시간이다. 내가 타는 모습을 딱 봤는데, 세상에 내가 저렇게 타고 있을 줄이야. 분명 내가 상상한 내 모습은 멋지게 일어서서 파도를 타는 것이었는데, 영상 속의 나는 몸도 흔들거리고 누가 봐도 불안해보였다. 고쳐야할 게 열 가지 정도 돼서 까먹을까봐 메모장에 적어두고 되새겼다. 필터 없이 내 자세를 마주한 효과는 굉장했다. 충격을 받고 내일은 꼭 더 나은 자세로 서핑을 해야지 다짐했다.


동네 구경


이것저것 살 것도 있고, 마침 동네 구경을 시켜주신다길래 따라 나왔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고 흐려서 몰랐는데 해가 뜨니까 외국인들이 왜 노출이 심한 옷들을 입고 다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나시가 하나밖에 없는데 나도 몇 벌 사 입어야 하나.


길거리를 구경하면서 여러 가게들도 보고, 마트도 들렸다. 툭툭이와 오토바이 그리고 앞에 뭐가 있든 말든 빵빵거리며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버스 사이를 피해 걸었다. 시선을 부지런히 돌리면서 스리랑카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사람들이 정말 착한 게 눈만 마주쳐도 웃으면서 인사를 해준다. 한국 사람이라고 얘기해주면 더 활짝 웃으면서 환영해준다.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가벼운 인사가 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 왔을 때 받는 대우는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굳어진 이미지와 편견 때문에 이렇게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거나 피해 다닌다는 걸 모두 알 것이다. 나조차도 그들에게 일말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리랑카에 도착한지 겨우 반나절만에 말끔히 사라졌다. 다른 한국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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