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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주 Jan 09. 2024

내가 스리랑카에 와있을 줄이야

ep.1

스리랑카라니. 살다 살다 내가 스리랑카에 가게 되다니. 들어만봤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도 서핑을 하러! 예전의 나를 붙잡고 지금의 내가 서핑 때문에 스리랑카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믿지 않을 게 뻔하다. 정보가 없는 곳을 여행할 도전적인 사람도 아닌데다가 심지어 첫 번째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5년치 해외여행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나 이런 데 처음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 것도 내키지 않고,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변수에 긴장하는 것도 싫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담담하게 헤쳐나갈 자신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스리랑카 같은 낯선 나라에 여행을 올만한 위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스리랑카의 이국적인 향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미리 챙겨야할 것들을 일러주고, 어떤 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옆에만 붙어있으면 뭐든 뚝딱뚝딱 해결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서핑샵 사장님들이 스리랑카로 서핑 여행을 가셨고, 다른 한국 사람들도 같이 서핑을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숙소도 큰 집을 빌려 함께 쓰고, 서핑을 할 때도 같이 움직이고, 밥도 같이 먹는 패키지 아닌 패키지 느낌으로. 좋은 기회로 닿아서 17일 동안 스리랑카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스리랑카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 그냥 멀다.


비행기표 예매를 하고, 몇 주가 지났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짐을 다 쌌을 때 그제야 가긴 가는구나 싶은 정도였다.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기 10시간 전, 공차의 제주 그린티 스무디를 당분간 못 먹는 게 아쉬워서 한 잔 사 마셨더니 새벽까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비행기라 새벽 4시쯤 집에서 나와야했는데 한 숨도 못 자고 출발했다. 피곤함 지수를 가득 채워가면 비행기 안에서 곯아 떨어지지 않을까 했지만, 나란 인간은 생각보다 아무데서나 못자는 인간이었다. 이코노미석은 내 방 매트리스만큼 편안하지 않으니 잘 수 있는만큼 최대한 자두어야한다는 걸 배웠다. 다음에 비행기를 탈 때에는 피곤함 지수를 최대한 낮춰서 가야겠다.


한국에서 스리랑카까지 혼자 가야했다면 장벽이 더 높게 느껴졌을텐데 운이 좋게도 지인과 같이 갔다가 올 수 있게 되었다. 아니었으면 아마도 지금쯤 집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멍하니 보고 있었지 않을까. 의지가 가능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 있다는 것은 불안함을 반의 반으로 줄여준다. 지루할 때 떠들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을 때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같이 모른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기다리다 앉고, 서있다가 기다리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꽤 오랜 시간 비행기에 앉아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확인을 해보니 고작 1시간이 지나있거나, 줄을 기다릴 때에는 왜 내가 서있는 줄만 교통체증이 일어나는지 모르겠거나. 영화도 보고, 다운로드 받은 책도 읽고, 잠도 자봤지만 시간을 빠르게 보내기에 큰 효과는 없었다. 지칠 때까지 지쳐서 공항에 도착했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2시간을 더 가야했다. 그래도 정말로 다 왔구나 실감하며 피곤에 절은 몸을 움직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반기는 습기 때문에 스리랑카에 왔다는 게 확 느껴졌다. 하지만 자꾸 무거워져 감기는 눈꺼풀 때문에 그것도 금방 잊어버렸다. 정신줄을 반쯤 놓은 채 숙소에 도착해서 컵라면과 망고 주스를 빠르게 해치우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깊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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