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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주 Jan 12. 2024

스리랑카 서핑 여행 4

몸은 피곤한데 잠에 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한참을 뒤척인 탓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바다로 나갔고, 오늘은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션이랑 같이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내가 자꾸 하품을 하니까 쟤 잔다면서 웃었다. 마지막 강습을 받고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조금만 더 타다 나왔다. 이번에도 어제 피드백 받은 걸 기억하면서 타려고 노력했다.


스리랑카에 오기 전에 래쉬가드 세트를 샀다. 분명 모델이 입고 있는 사진에는 배꼽이 보일랑말랑한 정도의 노출이었는데 사고 나서 입어보니 배꼽은 무슨 골반부터 가슴 바로 아래까지 훤히 드러나는 길이였다. 당황스러워서 이걸 어떻게 입고 서핑을 하나 걱정했는데 그 옷을 바로 오늘 처음 입어본 것이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지만 내가 신경이 쓰여서 이동할 때 소심하게 가방으로 배를 가리기도 하고, 파도에 말려 올라가는 걸 시도때도 없이 잡아 내렸다. 그렇게 몇 번 하다보니까 귀찮기도 하고 주변을 보면 나 정도의 노출은 노출의 축에도 못 끼는 걸 알아채고선 모든 걸 내려놓았다. 평소에 나라면 절대 안 입을 옷을 입은 역사적인 날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치킨 커리를 두 그릇 퍼먹고 세번째 서핑 영상 리뷰를 했다. 오전에 그리 잘 탄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불안 불안했지만 영상이 시작 되고 바로 ‘그렇지!’라는 한 마디가 나와 안심이 됐다. 바뀌기는 했구나. 처음에 받은 피드백이 열 가지였는데 줄고 줄어서 두 세가지가 됐다는 게 자신감도 생기고, 더 잘타고 싶어지기도 했다.


Shall we go for a walk tomorrow?


매번 가던 스팟말고 다른 곳에서 서핑을 하러 갔다. 익숙한 보드가 아닌, 점심에 새로 렌탈한 보드를 가지고 처음 타보는 거라 감을 잡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파도에 말려서 세탁기 속에 들어간 빨랫감처럼 빙글뱅글 돌아보기도 하고, 눈, 귀, 코, 입에 들어간 바닷물을 뱉어내면서 연습을 했다. 마음처럼 잘 안되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뭐가 잘못됐는지, 어떤 걸 신경써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탔다. ‘내가 제대로 타고야 만다’라는 느낌으로.


신나게 서핑을 즐기고 있는데, 다른 외국인에게 강습을 해주던 스리랑카인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웃어주니까 두 손으로 양 어깨를 빠르게 비비며 자기 너무 춥다고 그랬다. 그러다 내가 옆에서 패들링을 할 준비를 하니까 도와주겠다며 보드를 밀어서 쉽게 파도를 탈 수 있게 해줬다. 진짜 이름인지 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애플이라고 했다. 애플이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고마웠다. 강습을 하는 도중에도 짬이 날 때마다 어디서 지내냐, 얼마나 있다 가냐, 인스타그램 있냐 물어봐서 대답을 해주고 나는 먼저 나와서 해변에 잠깐 앉아있었다.

5분 뒤 강습이 끝났는지 물 밖으로 나오더니 1분만 기다려달라며 핸드폰을 가져와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달라고 했다. 서핑하는 영상도 보여주는데 기가 막히게 타는 게 아닌가.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 둘이서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저녁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애플이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찍은 사진을 보내주고선 ‘Shall we go for a walk tomorrow? You and me’라며 내일 같이 걷지 않겠냐고 묻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당돌한 녀석을 봤나. 친구야 사귀면 사귈수록 좋으니 알겠다고 내일 보자고 했다. 어디서 만나냐고 물었더니 ‘오늘 우리가 만났던 곳. 내가 내일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답했다. 꽤 낭만적인 문장이었다. 혹시 납치 당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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