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서핑을 하다가 물벼룩에 잔뜩 물린 탓에 밤새 가려워서 잠을 푹 자지 못했다. 팔, 다리, 배 안 가려운 데가 없어서 고생을 했다. 밤에 잠을 설친 이유 때문인지 오전에 서핑을 한 타임 타고 나와서 나도 모르게 기절하듯 한숨 잤다.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까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쿨쿨 자고 있더라. 컨디션을 회복 하고 나서 다시 서핑을 하니까 파도도 잘 잡히고 한결 나았다.
해변 근처에 음료 파는 가게가 있는데 과일 주스 맛집이다. 망고, 파인애플, 파파야 등등 여러 가지 과일 종류가 있고 잘 익은 과일을 잔뜩 넣고 갈아준다. 가격도 싼데 맛도 진해서 서핑 전이나 후에 한 잔씩 먹어주면 극락을 갈 수 있다.
오후에는 충분히 쉬다가 4시에 서핑을 하러 갔다. 같이 온 지인이 쉰다고 하셔서 혼자 툭툭이 타고 갔는데 이것도 좋았다. 홀로 방에 있어도 밖에서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리고, 항상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가 간만에 온전히 편안한 시간을 즐겼다.
리욘과 션이 있는 서핑샵에는 11살짜리 꼬마 남자애 ‘바완’도 있다. 바완은 션의 동생이라고 하는데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어주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곤 한다. 얼굴은 주먹만하지, 눈은 또 엄청 커서 귀여워 죽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션이 어디가냐고 여기가 너네 집 아니냐며 장난을 쳤다. 이 친구들을 볼 날이 이제 고작 며칠 안 남았다는 게 아쉽다. 내년에도 스리랑카에 올 수 있다면 꼭 오겠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저녁에는 애플이 집으로 초대를 해서 집에 잠깐 들렸다. 설마 가족들이 나를 애플의 미래 부인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면서. 빈손으로 가기 뭐해 쿠키 한 상자를 사들고 갔다. 스리랑카 가정집에 가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한국 가정집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480p 정도 되는 화질의 티비, 전체적으로 어두운 내부, 갈색 장식장, 오래 되어 보이는 이불. 우리나라 옛날 시골집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엄마, 아빠, 쌍둥이 형, 형수, 아기 조카, 강아지, 서핑샵에서 본 애플 친구까지. 달달한 차와 과자 바나나를 내어주셔서 야금야금 먹으며 앉아있었다. 정말 정말 정말 불편했다. 그래도 최대한 예의 바른 아이로 보이기 위해 간식을 하나씩 가져다 줄 때마다 연신 ‘이스뚜띠(고맙습니다라는 뜻)’라고 말하며 가족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슬며시 웃었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자세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배가 불렀지만 애플 아빠가 권하는 바나나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2개나 먹었다. 이번주 일요일에 조카 생일이라고 또 오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다가 애플을 버리고 한국으로 훌쩍 떠난 배드 코리안 걸이 되는 게 아닐까?
저녁은 애플과 둘이서 햄버거를 먹으러 예쁜 식당으로 갔다. 애플은 오늘도 어김없이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거냐 물었다. 얼마나 봤다고 사랑 타령인지. 물어볼 때마다 어물쩍 웃으며 넘어갔었는데, 계속 말해달라고 보채서 널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친구라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마음을 아파하는 것 같기는 한데 안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