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아 Jul 26. 2024

정들고도 남을 시간

겨울방학 학습 돌봄

 교사 활동을 시작하고 3개월이 되었을 즈음, 장기로 학습 돌봄을 하나 시작하게 됐다. 초등학교 남학생이었는데, J라고 하겠다. 처음 인사했을 때 J가 수줍어했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서 만났는데 집에 가기 위해 우산과 실내화, 준비물을 잘 챙긴 뒤 나왔다. 처음 만난 지라 돌봄 시간 내내 어색해하고 어려워하긴 했는데, 수학책을 같이 보면서 계속 말을 거니 하나씩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웃다 보니 나름 꽤 친해졌다. 그 이후에도 국어책도 같이 읽고, 같이 피아노도 치고 보드게임도 열정적으로 했다. 무승부였지만.


 다음에 학교에 방문하니 J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학교를 나와서 같이 집으로. 그래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1주가 지나 만나니 고새 쑥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빵이랑 차를 먹으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같이 읽었다. 집중을 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 독후감 숙제를 같이 하는데, 유난히 어려워했다. 수학은 잘하면서. 우선 책 속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J에게 물었다.

J는 이 주인공처럼 어른이 되면 어떤 느낌일 것 같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인공 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묻고 어떤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지 물었더니, 하나씩 대답을 했다. 맞아 맞아. 지금 J가 떠오르는 이 생각을 노트에 적으면 되는 거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J는 서툰 솜씨로 한 자씩 적어 내려갔다. 수학은 해야 되는 이유를 알겠는데, 독후감은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하하. 그럴 수 있지. J를 달래면서 잘 이해시키려 노력했던 것 같다. 수학도 필요하지만, 너의 생각도 중요하다고. J가 자신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잘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J가 부모님께 자랑했다고 한다. 독후감이 어려웠는데 자신감이 생겼고, 선생님이 도와줬고 함께 숙제를 했다면서. 짜식.


 이후로는 더 자주 만나게 됐다. 하루 간격이거나 2~3일 간격으로 만나서 수학은 기본이고, 영어를 하거나 국어를 같이 공부했다. J는 매번 독후감 숙제를 가장 어려워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J는 대화를 하며 묻고 답하기를 어려워하고, 대답도 문장을 완성해서 말하기보다 단어 그 자체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혹시 평소에 친구들이랑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속마음은 어떤지를 많이 질문하면서 그 대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이 바쁘시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친구들이랑도 몸으로 노는 놀이를 많이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하던 대로 질문을 통해 J가 자연스레 드는 생각을 적을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같이 밖에서 뛰어놀거나 집에서 보드 게임을 하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즐겁게 보냈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아이에게 다가가야 하는 부분 때문에 개인적으로 걱정도 있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J를 따라 웃게 되는 게 덩달아 행복해지기도 했다. 다른 돌봄보다도 유난히 마음을 쓰게 됐던 활동이었다. 그렇게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약 2개월간 활동을 하면서 J랑 정도 많이 들었다. 헤어질 때 참 아쉬웠는데, 그래도 안녕.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봄이 끝날 무렵, J 어머님이 한 번 연락을 주신 적이 있다. 이번에도 학습 돌봄이 가능한지였는데, 당시에는 내가 다른 일정이 있었는지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결국은 하지 못하게 됐었다. 시간이 꽤 지났다. 지금은 많이 컸을 것 같다. 아이는 금방 자라니까. J가 잘 지내길.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