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재밌게 놀지
아이와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바로 안전이다. 나만 해도 초보 교사 시절에는 간 떨어질 뻔한 적이 한 3번 정도 있었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살짝 식은땀이 나려고 한다. 허허.
홍대 입구역에서 만나기로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오후 약속이라, 그전에 활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면 되겠다 싶어서 오전에 시작하는 홍대 쪽 돌봄을 잡아두었다. 돌봄 지와 홍대입구역까지는 따릉이로 10분 거리라 활동 끝나고 약속 장소까지 가기에도 딱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따라 참 운이 없었던 것 같다.
분명히 앱 상에는 주소와 지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걸 도착지로 하고 그곳에 도착을 했는데 주택 밀집 지역인지라 도저히 그 집을 못 찾겠는 거다. 시간은 가고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데 계속 찾기만 할 순 없었다. 불가피하게 전화를 드려서 집을 겨우 찾았다. 활동 시작이 5분 정도 늦어졌다. 으음, 어머님의 안색이 좋진 않았던 것 같다. 죄송한 마음에 늦은 만큼 더 활동하고 가기로 하고, 손부터 씻고 아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날은 2층에서 모래놀이, 인형놀이를 주로 하면서 놀았다. 모래놀이까지는 즐겁게 잘 놀았고, 치우는 것도 깔끔히 치웠다. 인형놀이도 서로 역할을 맡아서 따라 하면서 잘 놀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1층에서 올라오셔서 주스와 과자를 챙겨주셨다. 그리고 머지않아 일이 생겼다.
아이가 주스를 마시고 그 컵을 바닥에 내려놨었다. 그런데, 인형을 갖고 침대에서 방방 뛰다가 침대를 비집고 나온 이불로 인해 그 컵이 넘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 너무 놀랐고, 아이도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님도 소리를 듣고 올라오셔서 같이 바닥을 말끔히 치우고 아이부터 달랬다.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내 기억 속의 상황은 그렇다.
돌봄이 어찌어찌 끝나고, 홍대입구역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따릉이를 탈 수가 없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와 어머님도 그랬을 거다. 어머님은 더 많이 놀라셨을 거다. 다친 사람이 없어서 매우 다행이었다는 거 하나에 그나마 위안을 하고 내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활동 시간 동안은 내가 그 아이의 보호자나 다름이 없었는데 안전하게 활동을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그 순간에 어떻게 했어야 컵이 깨지지 않았을까. 바닥에 내려둔 컵을 테이블에 다시 올려놨어야 했나. 그러면 활동이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었을 텐데.
걸어오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마음의 불편함을 리뷰 없이 만족도로 표현하셨다. 2점. 서로 당일에 얘기하지 못했던 그날의 상황과 입장들에 대해선 째깍 악어 측의 도움으로 잘 전달되었다.
그 이후로는 내게 '즐거운 놀이/미술 활동', '완벽한 학습 활동'과 같은 요소들보다도 '활동에서의 안전함'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이 되었다. 원래도 안전을 생각하며 활동을 했지만 그때 일이 경각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렇게 경각심을 갖고 아이와 활동을 진행해도 꼭 무슨 일이 하나씩은 터진다. 한 번은 활동 내내 정말 잘 놀다가 끝날 무렵 엄마를 만나겠다고 뛰어가던 아이가 문에 발가락을 찧은 사고가 있었다. 또 한 번은 책을 읽으며 잘 있다가 이제는 공놀이를 하려고 거실에 나갔다가 꽈당하고 대자로 넘어지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흠칫 놀라게 된다.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인 거다. 또 이러한 사고에 대해서 부모님이 문제 삼는다거나 보상을 하라거나의 방식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으셨다. 맨 처음 그 일에 있어서도 그러셨고. 그리고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이럴 때임을 종종 느끼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이 좋았을 때도 많았어서 1년 여의 악어선생님 활동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갈수록 노하우도 생겨서 안전하지 않을 법한 요소들이 있다면 미리 치워두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는 사고가 생기지는 않았다. 사실 째깍 악어 시스템에서는 안전사고를 대비해 아이는 보험에 가입하게 되어있다. 보험이 적용될 큰 사고까지는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때때로 유치원 교사, 초등학교 교사이신 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대 1 혹은 2~3명의 그룹 케어도 아니고 무려 '반'을 구성해 아이들을 케어한다는 게 너무 어려우며 존경스러운 일이라는 게 나의 돌봄 활동 이후에 더 더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부모들은 교사를 무시하고 오직 '내 아이'만 중요하게 처신하는 모습을 종종 뉴스로나 기사로 알게 될 때 마음이 굉장히 헛헛해진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 왜 그랬을까? 그 부모는. 왜 ‘교사’는 보호받기가 어려울까?
언젠가 교사가 어떤 한 아이를 차별한다거나 학대한다거나 하는 뉴스가 자주 나왔던 시기를 기억한다. 지금도 종종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는 당연히 정말 심각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때부터 비롯된 걸까. 한 개인이 저지른 실수와 잘못 덕에 퍼져나간 사회의 불안감이 '교사'라는 직업에까지 번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불안에서 비롯된 교사를 향한 의심이 주된 원인이 되어 무시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야 그러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고.
하지만, 교사에 대한 불안은 불안이라는 감정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모든 교사가 이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서, 초등 교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했을 수고로움은 아이를 위한 마음이 없다면 결코 동반될 수 없을 수고로움일 거라 생각한다. 그걸 해낸 사람들이다. 그 부분을 교사라는 하나의 지위로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람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들은 항상 벌어지는데 하물며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더욱 예측 불허의 상황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이이므로 통제는 필요하다. 그 역할을 교사가 해낼 수 있으려면 교사도 인정된 권위가 있어야 한다. ‘임의로’ 통제하거나 ‘교육‘해야만 비로소 상황을 해결하거나 아이들도 하나씩 배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던 거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를 받쳐줄 만한 교사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없었고, 학교가 그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교사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통제 불가피한 상황들은 모두 교사의 탓이 되었다. 아이의 안전까지도 교사에겐 어느 정도의 의무가 부과되니까. 마음먹으면 악용되기 쉬운 구조.
교사를 위해서도 부모와 아이를 위해서도 교사의 권위와 그에 대한 존중은 필수 요소인 것 같다. 그래야 교사도 발전할 수 있고, 때로는 보호받기도 하며 부모의 그 '내 아이' 또한 안전하게 좋은 환경에서 질 좋은 교육을 받아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