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에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 좋다. 광활한 세상에서 사람은 이성을 사용하여 판단하지만, 이성으로도 한 번에 이해되거나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빈 종이를 마주 보고 솔직하게 펜을 움직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장난처럼 보이는 낙서가 나올지, 만족스러운 훌륭한 그림이 나올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나온 그림이 무엇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몇 년을 묵혀온 스스로의 불안일지, 바람에 스쳐 지나가는 감정일지 알 수 없다.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그것을 뿌듯해해야 하는 것인지 즐거워해야 하는 것인지 혐오스러워해야 하는 것 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아마 그 감정은 외로움일 것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전부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며, 아무것도 설명되지 안되어서도 안 되는 존재다.
이것은 하얀 숲에서 길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얀 숲은 스스로 들어가야 한다.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길을 갔다는 것이다. 너는 하천의 튀어올라 사라지는 물처럼 사라진다. 갈대 사이로 나부끼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눈이 오는 날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고요함과 백색으로 너는 사라진다.
영원함으로 걷는다는 것은 거꾸로 걷는 것과 같다. 흰 시간이 나부끼고 그림자는 경계가 흐려져 너에게서 나온 그림자인지 어둠 그 자체인지 알 수 없다. 그런 것을 너는 솔직함이라고 불렀다. 뻔한 소리를 뻔하게 하다 죽는다. 그 공간에 너는 없는 것처럼 텅 빈 눈으로 저 멀리를 바라본다. 그곳에 있던 것은 하늘과 구름과 봄, 여름, 가을, 겨울보다도 하찮고 작은 일이었을 뿐이다. 역시 그것 또한 뻔한 얘기이다.
존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틀이 있고, 몇 개의 예시가 있고, 유행이 있고, 유행이 지난 것들도 있다. 안은 우주의 암흑 공간으로 가득 차있다. 반복되어 같은 형태의 모양으로 찍어 내려지는 인생을 꿰뚫는다. 차곡차곡 쌓아지는 생은 처음의 모습과는 달라졌다. 유리병에 넣어 바다에 띄운다고 해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