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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28. 2022

자기 합리화 대장의 임무 수행

이대로 괜찮은 걸까

자기 합리화 대장의 대처법

"그때 진구 있잖아. 걔가 지금 서울지법 판사로 있다고 최근에 들은 것 같은데? 현주도 그때 한의대 갔다고 네가 말했었잖아"


최근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를 만나 소위 잘나간다는 동창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정말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구..? 좀 퉁퉁했던 앤가?" 

"아 뭐래. 진구가 어딜 봐서 퉁퉁했다는 거야~"


기억이 안 난다. 이름이 진구라고 하니 왠지 퉁퉁할 것만 같다. (이상한 논리)


"현주는 또 누구지? 그렇게 똘똘한 애들이 우리 학교에 둘이나 있었어?"

"야. 분명히 우리 대학교 때 네가 나한테 해준 말이거든????"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현주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누군지 모를 현주의 한의대 합격에 대한 정보 전달을 해줬단다. 환장하겠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든다.

이날 만난 친구와는 둘 다 전학 간 초등학교에서 3, 4학년을 같이 다니고 우리 둘 다 또다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어서 이 친구가 기억하는 당시의 똘똘한 진구와 현주는 기껏해야 2년간 함께한 친구들이다. 

 

자기 합리화 대장으로써 역시나 역할 수행을 위해 노력해 보자 하니 그랬다. 

2년간, 그것도 초등 3-4학년 시절을 보낸 친구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겠지? 심지어 나는 어릴 때 전학을 두 번을 했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 무려 세 군데 초등학교를 다닌 초등 다(多) 경험자다. 

거기서 중간에 끼어있는 3,4 학년 초등시절 친구들을 기억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게 황급히 자기 위로와 합리화 과정을 마쳤다.



  

얼마 전 가족들과 리조트로 여행을 갔다. 리프트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 루지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리프트 여기저기에는 "리프트 아래로 물건을 떨어뜨리면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성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해당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지금 춥지 않다며 입지 않아 내손에 들려있는 4살의 재킷을 더욱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리프트에서 폴짝 뛰어내려 신나게 루지를 타고 내려왔다. 평지로 내려와 정말 재밌었다며 아이들과 조잘조잘 떠들고 다른 놀이기구도 타고 한참을 놀고 있는데 어쩐지 손이 헐빈하다. 루지를 타러 올라갔다 온지는 한 시간도 더 넘어서야 내 손의 허전함을 깨달은 것이다.

리프트 탑승구 쪽 직원에게 잽싸게 달려가 간절한 표정으로 문의했다. 그들은 서로 간 무전기로 소통하더니 위에서 발견하여 보관 중이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이 째려본다. 그제야 다시 보니 남편은 마찬가지로 챙겨 나왔는데 춥지 않다며 입지 않은 9살의 가디건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있었다. 


자기 합리화 대장이 나설 시간이었다. 우리가 챙겨야 했던 아이들의 옷 종류가 분명히 달랐다. 남편이 담당한 9살의 겉옷은 부드러운 가디건으로 남편 몸에 장착 가능한 종류의 것이었지만 4살의 자켓은 뻣뻣하고 더 작아 내 몸에 붙여두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리프트 위에서 저 아래 그물로 떨구지 않기 위해 분명히 더욱 꽉 움켜쥐었고 그 점에 있어 나는 성공했다. (비록 루지 타기 직전에 땅바닥으로 내팽겨 쳤겠지만)

난 분명 최선을 다했다. 

대장은 임무 수행을 마쳤다. 




이번엔 가족들과 호텔이 함께 있는 놀이공원에 갔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우리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는 놀이공원 내 구경과 부가적인 게임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날도 남편은 커다란 인형을 따내기 위해 농구공 게임, 병 입구로 작은 링 던지기 게임, 공 던져 바구니 넣기 게임, 물속 오리 건지기 게임 등등 게임이란 게임은 다 참여했다. 아이들은 우리 아빠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인형을 따내는 장면을 직관하기 위해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각 게임은 한번 시도에 3천 원, 4번이면 만원, 이런 식이라 만원을 아니 꺼낼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아이들도 한 번씩 참여하므로 돈을 바닥에 그냥 흩뿌리는 셈이다. 어쨌든 이것저것 전부 다 해보더니 (당연히 모두 실패함) 공을 던져 바구니에 넣는 게 가장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며 다시 공던지기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소 지루하게) 남편의 성공을 기원했고 무려 4만 원을 투자하여 (16번 던진 셈) 양손으로 들기도 벅찬 크고 동그란 닌자 머리 인형을 획득했다. 

오랜 시간과 돈이 투자된 만큼 우리 가족은 잠시 방방 뛰며 환호했다. 해당 게임가게 앞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획득한 전리품을 들고 세상 신나서 자랑스럽게 사진도 찍었다. 


해가 지고 귀가할 시간이 되어 남편이 먼저 멀리 있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오기로 하고 나와 아이들은 카페에서 있다가 1층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아이와 유모차와 캐리어들을 챙겨 호텔 로비에서 체크아웃을 마쳤을 때 남편이 도착했고 함께 캐리어와 짐들을 차에 싣고 바로 출발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어두운 차 안에서 남편이 물었다.


"근데 인형은 어디 있어?"


"응? 무슨 인형?" 


"...."


남편이 째려본다. 

아마도 그 압도적 크기로 존재감을 자랑하는 닌자 머리 인형은 마지막 우리가 머물던 카페에서 앉아있던 그 소파에 덩그러니 있을 것이다. 


자기 합리화 대장이 나설 타임이다. 

그 닌자 머리는 정말 커도 너무 컸다. 그리고 닌자 머리의 노란색 털은 자꾸만 내 옷에 들러붙었다. 아무런 굴곡 없이 동그랗기만 한 모양이라 드럼 세탁기 입구에 들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혹여나 숱한 먼지들로 세탁을 하고 싶다면 무조건 욕조에서 손빨래만 가능할 각이다. 그렇게 손빨래를 성공했다 한들 건조는 또 어찌해야 하나. 며칠을 바깥에 두고 말려도 정 가운데 위치한 빼곡한 솜들은 쉽사리 마르지 않아 꿉꿉할 것이 뻔했다. 한마디로 처치곤란 일등 아이템이다. 

역시나 신속하게 대장의 임무가 완료되었다. 


나는 연신 닌자 머리의 존재감을 무시하고 카페를 나선 나 자신을 향해 "와 진짜 대박이다"를 외치며 호텔로 다시 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미 깜깜해진 하늘과 갈 길이 구만리였기에 남편도 그걸 원치는 않았다. 역시 대장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적재적소에서 자기 합리화 대장은 언제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가끔 찜찜함은 남아있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시간 즐거웠으니 되었다"   -자기합리화대장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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