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

- 누가 나의 글에 영원히 살아 줄까

by 두아두



담배연기






후- 담배연기가 퍼지며 살결의 겉에 묻는다. 담배가 외출의 목적인 양, 추운 날 반팔 차림으로 나온 남자의 것이다. 일반적으론 미간을 구기며 눈을 흘길 테지만, 난 그 연기가 어떤 신기루인 양 혼자 아련해진다. 딱 이 무렵,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여 겉옷의 두께를 갈피 잡지 못하는 현재처럼, 그 당시 3월의 마지막 날 나는 낯선 곳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떤 이와 처음 조우할 때를 상기시키면 인사를 했다는 기억만 존재할 뿐 그 사람의 행색이 뚜렷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만약 남는다면 그 사람의 착의가 누가 보더라도 매우 강렬했거나 아님 그 사람 자체가 강렬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품이 넉넉한 청자켓에 알맞게 쓴 비니. 모자 아래로 살짝 긴 머리. 옆 귓가에 꽂힌 이어폰. 버튼 한 번에 렌즈 너머의 순간을 담아내는 폴라로이드처럼, 후자의 그는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어 내 인간관계 폴더 속 맨 첫 번째에 담겼다.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건 개인이 소유한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가벼운 사생활부터 자신조차 어렵게 꺼내야만 하는 내밀한 구석까지 공유하는 일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모난 구석이 있어 나와 상대를 슬프게 하거나, 희미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눈길을 끌지 못한다. 친해지고 싶다거나 마음에 꼭 차는 친구가 생기더라도 나는 나의 감정을 억지로 삼켜 입만 뻐끔거리곤 했다. 난 나를 드러내지 않으며 들어주는 쪽을 택했다. 이러한 삶이 지속되었고 또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는 묘하게 차가웠지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난 이상하게도 악의는 없지만 가시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에겐 내가 찔릴지언정 더 다가갔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세워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또한 그랬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세를 일부로 적대적으로 하며 살갑게 굴지 않았다고 했다. 첫인상에 만만하게 보여선 안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완벽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꾸며 낼 수 없다. 늘 어느 부분에 새어 나와 들키고 만다. 그는 묘하게 차가운 만큼 묘하게 다정했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그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탓인지 우리는 더 빨리 친해졌다. 그가 일을 끝낸 마지막 날, 가고 싶은 곳이 생겼으니 나와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나에게 낯선 이와의 약속이란 언제나 겉으로만 친절하게 답할 뿐 거부하기 바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래전부터 다이어리에 적어둔 약속처럼 기다려지며, 다른 요일의 유무가 걸리적거렸다.


당일, 어느 때보다 기온이 따스했다. 겉옷을 들고 기분 좋게 걷는데, 갑자기 그가 “원래 그렇게 빨리 걸어요?” 하고 물었다. 알고 보니 나의 걸음이 한 발 앞서있었다. 항상 혼자 걸으며 나란히 걷는 일이 없던 나는 옆 사람과 발을 맞춰 걷는 법을 몰랐다. 나에게 걸음이란 어떠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아 늘 빨랐다. 숨 쉬는 걸 의식하면 자연스러운 호흡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는 나의 걸음을 의식해 걷는 법을 배우듯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그가 데려간 곳은 복합 문화예술공간이자 카페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낯선 공기에 숨을 뱉듯 계속 말을 걸었다. 그는 친해지자며 말을 놓았고, 달라진 말투로 나를 대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르고 쌓인 것이 다르므로 우리는 그 상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다른 삶을 여행한다. 그는 흥미로우며 신선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주로 자신이 어릴 때 살 던 곳에서 겪은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들려줄 이야기가 없어 평소처럼 듣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행지로 따지자면 그는 자극적이며, 독특한 음식과 볼거리가 있는 관광지고, 나는 익숙하게 무난한 음식과 머물기에 편안한 휴양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나를 편안하게 보았고 나는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시차에 금세 적응했다.


자리를 옮겨 넘어간 이태원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걷고 있었다. 그날 이태원을 처음 방문한 나는 낯선 이방인처럼 쭈뼛거렸다. 그걸 알아챘는지 그곳을 아는 그가 가이드가 되어 몇 걸음마다 단골집을 알려주고, 맛을 보게 해 주고, 설명을 해 주었다. 해외에서 유학을 하다 온 그는 서울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태원을 자주 방문했다고 했다. 이곳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이곳에 방문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진작에 사람을 통해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삶의 모든 것에 무난한 나에게 관심을 보인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하늘이 더 짙어져도 날씨는 춥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반팔 티에 남방만 입고도 계속해서 거리를 걸었다. 저녁으로 베트남 음식을 먹고 가게를 나왔을 때, 그가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 일을 할 때 그가 종종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걸 보았었다. 한 번은 일을 끝내고 그와 같이 가야 할 때, 그가 먼저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담배의 연기가 싫어 저 멀리 그를 피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남은 탓인지 그가 향이 약한 전자담배를 가지고 나왔다. 나에게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것 같아 전자담배로 바꿔왔어”라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당장 끊을 수 없어 배려의 차원에서 그것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가 피는 담배에선 옥수수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그것을 호기심 가득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보더니 “한번 피워 볼래?” 하고 물었다. 난 별 편견 없이 “어떻게 피는 건데요?” 하고 다시 되물었다. 그러자 그가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담배의 머리를 입술로 감싸 가볍게 들이켰다. 눈짓으로 내게 말을 건넨 뒤, 그것을 떼어 나의 입에 물려주었다. 살짝 물어 들이키는데, 순간 맵고 싸한 공기가 목을 쳤다. 나는 곧바로 케케 거리며 손사래를 쳤고, 그가 괜찮냐며 나를 살피곤, 그것을 다시 느리게 자신의 입술에 물었다. 담배는 생각처럼 별로였다. 나에게는 굉장히 어색한 그것을 그는 자연스럽게 피워댔다. 그 담배가 나와 그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에겐 익숙하지만 나에겐 어려운 세계…….


내가 후식으로 달달한 디저트를 꼭 챙겨 먹듯,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 섭취가 늘어나듯, 그와 같은 맥락으로 그는 담배를 자주 즐겼다. 그가 담배를 피울 때 난 일정한 거리에 서서 관찰자가 된다. 담배는 그와 꼭 닮아 있다. 그는 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예술을 위해 일찍 죽고 싶었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예술가는 죽음으로 인해 예술적 가치가 상승하는 일이 많아 지나가듯 그런 말을 했었다. 그 뒤, 그가 담배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죽음을 마시고 삶을 내뱉는 것 같았다. 삶에 집착은 없으나 죽음은 피하려는 나와 달리, 삶에 방대한 애착을 갖고 사는 그는 죽음에 관대했다.


이제 담배를 피는 그를 관찰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담배 연기는 내 생활 곳곳에 자주 나타난다. 내 곁에 머물던 것들이 옆에 없어도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남는다. 금세 공중으로 사라지지만 진한 향을 남기는 담배연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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