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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28. 2023

7천원짜리는 어느새 3만원이 되었고

불편한 티켓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목표지향적인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고쳐보려 노력하지만 상황이 닥치면 또다시 본성이 솟구치는 걸 막기 어렵다. 5년 전쯤 집 근처에 피트니스가 또 하나 생겼다. 새로 개업한 터라 다양한 프로모션을 했고

그중 피트니스에서 하는 운동 프로그램을 모두 다 이용할 수 있는 일일권을 장당 7천원으로 저렴하게 판매했다. 그때 할인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남편이 덥석 50장을 사버렸다. 1년에 자전거 두어 번 골프연습 두어 번 정도 하는 운동꽝인 남자가 그딴 걸 왜 사는지 속이 부글거렸었다. 사용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오픈한 언제 망할지 모르는 가게 티켓을 사다니. 돈을 버리는구나 싶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시간도 체력도 배터리 간당간당하게 살아가는 나는 감히 운동하러 다닐 엄두를 못 내고 있던 터라 더 어처구니없는 소비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티켓은 화장대 서랍에 들어간 뒤로 5년 동안 누렇게 변색이 되도록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올해부터 수영을 배우고 있는 나는 의욕이 넘쳤고 자유형, 배영, 접영, 평영 진도 나갈 때마다  유독 잘 안 되는 영법이나 자세가 있을 때는 못된 승질머리가 하늘로 승천해서 열이 뻗쳤다.  어떻게든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따로 연습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주 3일 수영을 주 5일로 바꿔야 되나 고민하던 차에 바로 누렇게 떠 있는 그 티켓이 번뜩 생각났다. 다행히 피트니스 센터는 아직도 건재했다.


횡재 아닌 횡재한 기분으로 티켓을 들고 가던 첫날 부스에 있던 직원이 이리보고 저리 보더니 언제 구매하신 거냐 묻는다. "좀 됐는데요. 왜요?"

"이건 오래전에 발급한 거라 사용기간이 있어요."

"구매할 당시에 그런 설명들은 바가 없고 사용기간이 티켓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데요?"라고 의문을 제기하자 "요즘 일일권은 3만 원 정도 해요. 이건 워낙 오래전에 프로모션으로 저렴하게 판매된 거라 사용기간이 있었는데,,, 몇 년이나 지나 가져온 고객님은 처음이라서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하는 직원이다. "몇 장이나 더 갖고 계세요?" "50장이요." 답을 듣더니 더욱 어려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올해까지만 사용하시는 걸로 해드리겠다고 했다. 그 정도는 무난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동의했다.





뭐야 한 장에 3만 원이라고. 나 같은 사람은 운동을 2-3시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끽해야 1시간 정도인데 시간에 3만 원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과 실제 3만 원을 주고 산 것은 아니지만 꼭 그 돈만큼 본전을 뽑아야 된다는 압박감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그렇게 열심히 사용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아까워 운동에 충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 끝나고 삼삼오오 뜨거운 탕 속에 느긋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40번 훨씬 넘도록 왔다 갔다 하면서 탕에서 몸을 누그러뜨리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제 보이는 건지.

어제 잘 안됬던 영법을 오늘 충분히 연습해야 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정작 그런 시설이 있었는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자신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날 탕 속에서 한껏 여유 있어 보이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이제 딱 두장의 티켓이 손에 남았고 올해가 며칠 남지 않은 이때 수영을 가면서 고민했다. '찜질만 하다 오기는 너무 아까운데. 아니 아니야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찜질만 맘 편히 해봐' 빙글빙글 도는 마음과 함께

수영장에 도착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끈한 탕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 즐길 생각을 못했던 것이 억울하기 짝이 없어 꺼냈던 수영복을 냅다 다시 짚어 넣고 운동 대신 느긋한 찜질을 택했다. 개운한 몸으로 밖을 나와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누구나 가야 되는 길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걸어가면서 파란 하늘도 뭉개 뭉개 피어나는 흰구름도 손끝에 스치는 바람도 코끝으로 느껴지는 풀내음 꽃향기도 온 감각으로 느끼며 살아가보자 다시 다짐해 본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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