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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카야 Feb 11. 2024

산동네 파란 지붕집 둘째 딸

난 어렸을 때 우리 집이 가난한 줄 몰랐다. 다 고만고만하게 사는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선 오히려 다른 집보다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했었다.

산동네 부녀회장인 엄마덕에 동네에서 가장 먼저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한 집이 우리 집이었다. 억척스럽고 손재주가 있던 엄마는 집에서 재봉틀로 홈드레스를 만들어 동네 아줌마들에게 팔거나 냉장고나 텔레비전 같은 전자제품을 몇 대 팔면 한대 씩 공짜로 받아오곤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엔 당시 귀했던 냉장고와 텔레비전도 있었다. 엄청 무서웠던 전설의 고향을 보러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와 함께 보기도 했었다.


몇 년 동안 사우디로 돈 벌러 갔던 아빠가 돌아오고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 아빠는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어려서 왜 싸우는지 몰랐지만 언니말로는 사우디에서 돌아온 아빠가 엄마를 계속 의심했다고 한다. 그때 시작된 아빠의 의처증으로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행복할 수 없었다.


소심하고 조용한 그리고 생활력 없는 아빠에게 아빠와 너무나 다른 술 먹고 노는 거 좋아하고 억척스러운 엄마는 항상 못마땅하고 의심스러었나보다. 장사를 하는 엄마는 일이 끝나면 주변 상인들이랑 항상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산동네에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어렴풋한 기억에 엄마 아빠가 싸운 다음 날이면 학교 가는 길에 다른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너무 지옥같이 싫었다.

그때 난 아빠도 싫지만 아빠가 그렇게 싫어하는 데도 기어이 매일 술을 먹고 들어오는 엄마도 정말 싫었다.

나는 50이 된 지금도 어스름하게 어두워지는 저녁시간이 되면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어렸을 적 그 시간이 되면 오늘도 엄마가 늦으면 어떡하나 불안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아주 진한 불안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다.


초등학교 때였다. 그날도 엄마가 술 먹고 들어와 엄마 아빠가 아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아빤 칼을 들고 엄마를 죽이겠다고 덤볐고 당시 엄마가 죽을까 봐 겁이 났던 나는 아빠가 들고 있던 칼을 뺏으려다 손가락을 크게 베었다. 그 길로 엄마는 언니만 데리고 집을 나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 있던 손수건으로 대충 손가락을 묶고 혼자 도시락을 싸 학교를 갔는데 담임 선생님이 손은 왜 다쳤냐고 물었다. 조각칼로 베었다고 하니 내 머리통을 출석부로 세게 때렸다. 손가락은 아프고 엄마는 언니만 데리고 나가 속상한데 담임 선생님까지 내 사정도 모르고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대하니 너무 속상해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가족 중 누구도 그날 내가 손가락을 다친 줄 모른다. 그때 제대로 치료를 안 해 신경이 다쳤는지 그 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굽혀지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 그날의 나의 상처를...


대학교 때 우연히 이모들이 하는 얘기를 엿듣다 알게 되었다. 엄마가 미혼모로 언니를 낳아 총각인 아빠와 결혼했다는 걸. 

언니와 내가 전혀 안 닮은 것도, 엄마가 아빠랑 싸우면 항상 언니만 데리고 집을 나간 것도, 그리고 언니 결혼식에 이모들이 왜 그렇게 울었었는지 그제야 다 이해가 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가족의 비밀을 알면 엄청 충격을 받고 하던데 난 별로 그렇지 않았다

그냥 그래서 그랬나 조금 이해되는 정도?

아마 아빠는 남의 자식을 낳은 여자와 남의 자식을 사랑할 만한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친자식까지 모두를 사랑하지 않는 쪽을 택했나 보다

감당도 못할 선택으로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산 아빠 인생도 측은하지만

그런 아빠의 선택으로 외롭게 자란 나도 언니도 모두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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