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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Jun 05. 2023

꿈꿀 수 없는 프로야구

존중하지 않는 야구계 시리즈 마지막- 한국 야구의 실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KBO의 캐치프라이스이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줘 미래 세대를 이끌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으며 야구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라는 뜻을 함축적으로 담은 말이다. 다시 말해 야구를 통한 문화 관람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프로야구 선수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행동거지에 신경 써야 한다. 공인인 만큼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다면 사회작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젠 파장이 곳곳에 생겨나는 중이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은커녕 좌절과 실망을 안겨준다. 지금의 한국 야구가 그렇다. 


프로의식은 종목을 불문하고 프로야구 선수들이 꼭 갖춰야 할 덕목이다. 프로야구는 모기업이 팬들을 모아 기업을 홍보하는 효과가 있기에 팬 중심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선수들은 팬들이 있기에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그들 역시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선수들을 보고 자랐을 것이며, 예시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순간을 지켜봤던 어린이들은 지금 어엿한 프로 선수로 자라났다. 어린이 시절에 '팬'이었기에 야구를 보고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좋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프로 선수의 덕목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제는 진짜 프로야구 선수들을 찾기 어려워졌다. 한국 야구계는 지금이 위기란 걸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 원인을 경기시간이나 공인구 같은 잡다한 것에서만 찾는다. 주된 원인은 서로 존중하지 않는 야구계 문화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런트와 현장으로 시작해 심판과 선수, 선수와 선수, 선수와 팬, 은퇴선수와 선수 등등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존중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가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보면 나와 있을 테지만, 야구의 인기저하 요인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젠 선수들이 팬들을 기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23년 WBC 참사는 한국 야구 역사에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겨질 게 분명하다. 경기 수준이 낮아져 예선 탈락을 했고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주축 투수들이 경기 전 음주를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유감스럽게도 세 명의 투수(김광현, 이용찬, 정철원)들이 사실을 인정하며 야구계에 혼란이 왔다. 특히 SSG의 김광현은 내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국제대회에 헌신하며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는 가슴에 새겨놓은 태극마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이번이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 가능성이 컸다. 김광현은 대한민국의 에이스였고 자존심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고 성장한 어린이 팬들을 선수 대 선수로 만나 한 경기에서 같이 뛰었다. 10년이 지나도 한일전 선발은 김광현이었다. 


김광현 이야기를 길게 쓴 이유는 나 역시도 팬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김광현은 팬서비스도 좋고 야구도 잘하는, 소위 말하는 '롤모델'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메이저리그에 다녀온 후 팬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김광현은 사비를 써서 팬들에게 줄 선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랬던 그의 일탈은 믿기 힘들었다. 여기서 느낀 건 한국 야구계에는 실력이나 인성 쪽으로는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원년의 캐치프라이스는 잊은 지 오래 같다. 갈수록 국제 대회 경쟁력이 떨어지고 크고 작은 사건들은 계속해서 생각난다. 팬들은 점점 떠나가는데, 그 요인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으나 보려 하지 않는다. 지금 야구계가 그렇다. 단단히 박힌 돌에 이끼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단단히 박혔다는 이유로 꺼내지 않는다. 팬들이 가장 응원했고 격려했던 선수마저도 팬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이들은 사명감을 갖고 있었을까? 국가대표라는 것은 나라를 대표해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겼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있었지만, 그들은 김광현, 이용찬, 정철원 개인이 아닌 '코리안'이기도 했다. 국가대표의 행동 하나하나가 국가의 행동이 된다. 혹자는 반문한다. "그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헌신했는데, 이 정도면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라고. 그러나 '헌신'이란 그 말을 했을 때의 기분이 사라진 뒤에도 무언가를 하겠단 자신의 말에 충실한 것이다. 김광현은 끝이 아름답지 못했다. 그가 보여준 건 헌신이 아닌 허영심일지도 모르겠다. 김광현은 들어갈 때보다 나갈 때 문을 더 잘 닫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냉소적으로 표현하면 이게 부끄러운 한국 야구의 민낯이다. 


팬들은 잘하는 걸 보고 싶어 한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특화되어 있고 특히 국제대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응원한다. 경기 결과가 기대했던 만큼 나오지 않으면 팬들은 실망하지만, 비난은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적 부진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면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 국가대표라는 걸 인지한 김광현이 보인 이중성은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눈치 보여서 회식도 못한다."라고 말한 김광현은 어디로 갔는가. 대한민국 선수들의 연봉은 높지만, 그 값을 못하고 있다. 연봉은 성적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팬들을 모으는 영향력을 책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냉정히 말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은 실력이나 인성 면에 비해 높게 책정되어 있다. 


한 술 더 떠서 이번 WBC는 안우진을 뽑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야구인이 많았다. 지난해 리그 최고의 투수였던 그는 실력 면에서는 뽑히는 게 당연했으나, 그에게는 학교폭력이라는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뽑아야 한다는 사람과 프로야구의 본질을 훼손하지 말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으며 기술위원회를 비롯한 협회는 안우진을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안우진은 엔트리에 들지 못했으나 예선 탈락을 빌미로 안우진을 뽑았어야 한다고 말을 바꾸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과감히 생각을 밝히자면, 표현하면 안우진은 안 뽑는 게 맞다. 오히려 이걸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제도를 강화해서 안우진 같은 대형 선수도 과거의 잘못을 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면 뛸 수 없게 해야 한다.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 흔히 말하는 "야구로 속죄하겠다."는 말을 차단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박탈감을 줘놓고 좋아하는 일로 속죄를 한다? 말이 안 된다. 아무튼 안우진 같은 대형 선수를 선례로 해 아마추어, 프로 선수들에게 프로의식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제도(체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작아도 단단한 것 말이다. "안우진을 뽑았어야 했다.", "야구로 속죄하겠다."라는 말은 그래서 멀다. 말은 신중해야 한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야구계 사람들이 함께 나아가야 하며 그 시작은 상호 간의 존중이다. 야구계 사람들에게 야구의 인기저하가 두려운지 묻고 싶다. 그 답이 어떻든, 두려움은 당신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기에 생기는 것이며 행동에 나설 때 사라진다고 대답할 거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낼 거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게 프로야구다. 학교 폭력 가해자, 성범죄자, 음주운전자가 버젓이 리그에서 뛰고 있고 또는 뛰고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이들을 응원하라고 해야 할까? 어린이에게 범죄자를 응원하라고 하며 꿈과 희망을 줘야 할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 한국 야구에서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응원해 주기 때문이다. 선수들을 믿어준다는 팬심을 비판할 생각은 없으나 이러한 팬들의 인내가 당연한 것인 줄 아는 몇몇 선수들은 자신을 성찰할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그들은 왜 야구를 시작했는가? 자신이 꿈에 그렸던 야구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라 야구를 시작한 건 아니었나? 기본조차 망각해 버린 이들에게 '프로'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프로야구는 어린이의 꿈과 희망, 어른들에게는 전쟁터 같은 사회 속의 쉼터다. 어린이들은 프로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추억을 쌓아 훗날에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야구장을 찾고, 어른들은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서 드라마가 써지길 바라는 애환을 담아 야구장을 찾는다. 우리 팀이 못하면 나도 아쉽고, 갑자기 잘하면 아쉬웠던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이런 야구를 야구 자체로 즐기고 싶은 건 과한 욕심인지 묻고 싶다. 내가 이전 글에서 계속 말했듯 야구의 본질은 사람이다. 야구는 인본주의적이며 공동체적인 스포츠다. 야구의 본질은 사람이고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가치가 야구 안에서도 정립될 필요가 있다. 


팬들이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프로다. 팬들이 실망하고 떠나가면 야구계에서 좋은 유망주가 나오기 힘들뿐더러 야구가 특정 연령의 스포츠로 굳어져 미래는 암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선수들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 이전에 아이들을 비롯한 팬들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이라 함은 팬서비스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자신이 프로라는 의식과 함께 팬들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야구를 사랑할 수 있도록 플레이와 생활에서 보여줘야 한다. 그게 프로다. 완벽하라는 게 아닌,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예술이 된다. 진정한 가치가 선수라는 존재 안에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팬들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스포츠에 열광하며 이 과정에서 감동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야구는 예술이다. 선수들을 비롯한 야구계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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