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로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커서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될 건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대안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부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가족, 초등학교 친구들, 야구를 같이 했던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 질문을 했다. 심지어는 미용실 이모까지 말이다.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당연히 알고 있다. 이들의 주변에는 나처럼 대안학교를 택한 이가 없어서다. 이들에게 있어 나는 생소하고 특이한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회고해 보면 늘 편견에 맞섰던 것 같다. 내가 받는 대안교육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편견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냔 질문부터 시작해 노는 학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 소년원 대신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까지 참 다양했다. 사람들은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으로 내게 커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나 편견에서 비롯된 질문이 숨겨질 리 없었다. 사람들의 질문의 본질은 "그런 학교 나와서 커서 뭐 할 건데"였다. 다소 극단적으로 비칠 수 있으나 어딜 갈 때마다 이런 질문을 5년 동안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도 학교가 부끄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사회의 불쾌한 질문에 회피하거나 혹은 욱해 버린다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안학교의 인식은 그대로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난 나에게 떳떳해지고 싶었다. 난 5년 동안 받은 대안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받은 대안교육에 대해 사회가 가진 편견에서 비롯된 푸념을 좀 늘어놓으며 글을 다시 이어가 보겠다. 결국 오늘 쓸 내용과 이어지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아마?). 작년 나의 학교 생활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자서전을 100페이지 분량으로나마 짧게 쓴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걸 쓰는 시간에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중에 여러분이 진로를 결정할 때 내가 잘할 수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인지 이 세 가지를 고려해 보길 바랍니다."
이 말씀이 내 머릿속에 쏙 박혔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내 삶의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곧 졸업을 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이 조건이 부합하는 일이 무엇인지 긴 시간 생각했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기 위해 성장기록부를 뒤지고 그때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틈틈이 적어두기 시작했다. 브런치 글도 여기서 비롯됐는데, 예전과 지금의 생각의 틀은 크게 바뀌지 않아도 생각의 깊이 정도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꾸준함이었다. 나는 남들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만 묵묵히 했고 남들이 뛰었다 쉬었다를 반복할 때 계속 걸었을 뿐이다. 꾸준함은 내가 가진 특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꾸준함은 학교생활을 전반적으로 해낸 것인데, 개인이 해야 하는 과업만 아니라 지난 글에서 설명한 학교의 가치인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 스스로 살아가는 자립정신 같은 부분에서 배움을 얻고자 하고 계속 유지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이것밖에 없다. 내가 5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며 확인한 건 그저 꾸준함 뿐이다. 화려하지 않았고 남들만큼 돋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한 반의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이나, 학생회장으로서의 역할 등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다한 게 전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다. 뭐든지 적당히 안 되는 사람 말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일이니까 열심히 했던 거고 그래서 더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열심히 했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노력하는 게 내 일인가?' 결론은 간단했다. 학교에서 배운 게 이거니까. 나에겐 당연한 거였다. 항상 생각해 보면 난 학교 사람들이 좋았다. 이유는 없었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만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선후배, 친구들, 선생님들이 좋았다. 특히 그중 후배들,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게 너무나 좋았다. 예전의 내가 선배에게 받았던 도움이나 조언을 후배들에게 해주며 후배들의 학교생활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느 부모님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실 때는 그저 쑥스러웠으나 이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댈 수 있고 어깨를 내줄 수도 있는 친구들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잘 지낼 수 있기에 난 이들에게 항상 고맙다. 각자 다른 우리가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까닭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이유야 어떻든 난 내 친구들이 정말 좋다. 그래서 같이 여행을 가면 일찍 일어나 밥을 하기도 하고 내가 했던 귀중하고 도움 되는 경험을 친구들도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에 대규모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저 이들과 함께하는 게 좋다는 이유로 꽤 많은 경험을 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그냥 좋아서 말이다.
진로를 슬슬 고민해야 하는 지금 나는 학교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길 바란다. 내가 했던 경험을 해보기도 하고 혹은 더 넓은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내가 졸업하고 들어올 수많은 후배들이 더불어가는배움터길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어쩌면 나는 학교에 들어올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야구할 때도 후배들을 아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들도 그렇다. 항상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며 혹은 주기도 했다. 이런 공동체의 매력을 아는 내가 공동체를 떠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다.
이제는 모두 이야기한 것 같다. 나는 이제 졸업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사회를 경험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걸 배우고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교사라는 신분일 것이지만 말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보고 듣고 읽고 쓰고 말하며 지식의 폭을 넓힌 채 다시 작은 공동체 돌아와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나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며,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은 대안학교 교사인 듯하다. 내가 이곳에서 느낀 점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아이들도 느끼고 볼 수 있게 지도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현실적인 대학, 군대라는 문제점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이상 그 장애물들은 길가의 돌멩이로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조차 내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발판으로 삼으며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싶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 메이저리거 팀 웨이크 필드의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절대 잊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멘토가 되세요. 여러분은 혼자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며, 인생에서 어떤 지위를 얻었든 간에 자신보다 불우한 사람들을 도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다양한 자선단체에 참여해 왔으며, 내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또한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집이 얼마나 큰지, 어떤 종류의 차를 운전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는지’입니다.
- 팀 웨이크 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