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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Nov 29. 2024

홀로 서려는 마음, 룩백


후지노는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연재한다. 어느 날 학교를 나오지 않은 교모토에게 만화 칸을 양보해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는다. 네 컷 만화에 교모토의 만화가 실리고, 교모토의 그림실력에 후지노는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좌절하고만 있을 후지노가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그림을 더욱 열심히 그리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집에서도 그림에만 열중한다. 그렇게 연습한 캔버스가 쌓여가지만, 교모토가 연재한 네 컷 만화를 다시 보는 순간 결국 만화 그리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만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재능 앞에서 결국 좌절한다. 


졸업식 날 선생님의 부탁으로 교모토에게 졸업장을 가져다주러 간 후지노는 교모토의 방 앞에 수북이 쌓여있던 캔버스를 보게 된다.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모든 건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후지노는 이 순간 어렴풋이 깨닫지 않았을까


불러도 대답 없는 교모토의 방 앞에 졸업장을 놓아두고 네 컷 만화를 즉흥적으로 그리게 된다. 

"나오지 마"

"나와"


네 컷 만화를 완성하는 순간 손에서 미끄러진 종이는 떨어지며 문 틈을 통해 교모토의 방으로 들어간다.  당황한 후지노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온다. 결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던 교모토가 맨발로 뛰쳐나와 후지노가 그렸던 네 컷 만화를 칭찬한다. 그렇게 둘은 만나게 된다. 아니 어쩌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들의 만남은 예정되어 있었던 같다. 


후지노가 줄거리와 인물을 만들면, 교모토는 배경을 그렸다. 그들의 만화는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출판사에서 만화 출판 제의를 받고 돌아오는 길 교모토는 후지노에게 더 이상 함께 만화를 그리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너한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일어서고 싶어. 정말로 그림 실력을 늘리고 싶어."


후지노는 그렇게 말하는 교모토가 야속했다. 결국 교모토는 미술 대학에 입학했고, 후지노는 만화 작가의 길을 간다. 이후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교모토의 '홀로 서려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후지노보다는 교모토에 가까웠기 때문일까. 



항상 후지노의 등을 보며 달려갔던 교모토. 

교모토는 이끌어주던 후지노의 손을 놓을 결심을 한다.


영화가 끝나고 그 마음을 되돌아봤다. 

홀로 서려는 이유는 나란히 걷기 위해가 아닐까.

'독립'과 '함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일지 모르겠다. 완전한 독립도, 영원한 함께도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선다는 것은 자립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뜻한다. 하지만 이 독립은 타인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평등하게 나란히 걸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상대방에게 의존하거나 지나치게 기대는 관계는 종종 균형을 잃어버린다. 홀로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나란히 걸을 때, 서로의 존재를 더욱 온전히 존중할 수 있다.


교모토는 결국 후지노를 사랑했기 때문에, 

후지노에게 의지 하는 자신을 떠나보내기 위해 후지노를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떠나지만 머무르는 것. 교모토는 여전히 후지노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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