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금 유머 인문학 06.
요즘 말중에 ‘얼죽아’라고 있다. ‘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인 말로 추위에도 차가운 음료를 마시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을 가리킨다.
한 겨울에 반바지 민소매를 입는 아이들처럼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추우면 남도 추울 것 같고,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을 것 같은 이런 생각들은 동정과 공감을 낳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중심적인 고집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자기보다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은 모두 멍청하고, 자기보다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미친 놈이다.”
자기 중심적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꼬집은 미국 코미디언 조지칼린의 조크다.
내가 한 일은 옳고 중요하며, 상대방이 한 일은 무관심하거나 하찮게 생각하는 이런 성향은 내 마음이야 내가 잘 알지만, 상대방의 속내는 그만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능력, 취향등을 과대평가하는 인지적 왜곡을 ‘자기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이런 편향을 지니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역지사지’가 필요한 이유다.
다만 현실에서는 서로 “네가 먼저 입장바꿔 생각해봐!” 라고 반박하기 일쑤다.
역지사지의 핵심은 막연한 이타심이 아니라 타협이다,
서로 줄다리기를 통해 중간지점에서 타협하는 ‘흥정’이 일반적이지만 이는 한쪽을 얻으면 다른 한쪽을 잃는 제로섬게임이다.
흥정보다 윗길이 '협상'이다.
둘 이상의 거래조건을 두고 서로에게 더 중요한 하나씩을 양보하여 전체 만족도를 높이는 윈-윈의 기술이다.
결국 서로의 입장에서 주고 받을 대안을 찾아 협상하는게 올바른 역지사지 사용법이다. .
실라스와 샐리는 종종 옥수수밭에 나가서 사랑을 나누곤 했다.
어느 날은 비가 내리는 오후였지만 샐리는 옥수수밭으로 살라스를 불렀다.
그들은 옥수수밭에서 일을 벌이다가 마침 비에 젖은 진흙속으로 조금 미끄러졌다.
일을 한창 벌이다가 실라스가 말했다.
“여보, 지금 내 물건이 당신 속에 있는 거요, 진흙속에 있는 거요?”
그러자 샐리는 기가 막히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몰라서 물어요? 진흙속에 있다구요!”
“아, 그래요? 그럼 다시 당신속으로 옮기겠소“.
잠시 후 샐리에게 다시 물었다.
“여보, 내 물건이 진흙속에 있는 거요? 아니면 당신 속에 있는 거요?
“내속에, 어보, 내 속에 있어요…”
샐리는 코먹은 소리로 신음을 내며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이제 물건을 꺼내서 다시 진흙속에 넣어도 되겠소?
말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비 오는 날 진흙으로부터 얻은 뜻밖의 발견. 이런 걸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다만 맥락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뜻밖에 마주한 일인데 왠지 운명처럼 느껴지는 ‘우연찮은 행운’을 뜻한다. 그래서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은 세렌디피티를 계획된 우연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인류의 성욕이 혁신적으로 확장된 것도 세렌디피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하루 평균 남자가 34회, 여자는 19회씩 떠올린다는 ‘섹스’에 대한 집념이 만들어낸 준비된 우연임이 틀림없다.
바로 발기유발제와 피임약이 그것이다.
당초 목적한 협심증 치료효과는 고사하고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임상실험 약이 있었다.
그런데 일단의 남자 환자들이 이 약을 반납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부작용으로 생긴 발기증상이 뜻밖에 혁신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것이다.
남성들의 희망, 비아그라의 우연찮은 탄생 순간이었다.
피임약도 생식주기를 조절하는 성호르몬의 동물 추출 연구가 당시 어려움이 많았는데, 뜻하지 않게 ‘멕시코감자’ 뿌리를 다루던 다른 연구에서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섹스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세렌디피티가 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기회의 여신이라 불리는 로마신화의 ‘오카시오’는 세렌디피티 포착 방법을 암시해준다.
‘오카시오’의 앞 머리칼은 무성하여 알아보기 어렵고 뒷쪽은 대머리이며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다고 한다.
무성한 앞 머리카락 때문에 발견은 어렵지만, 일단 찾으면 잡기는 쉽다.
대신 놓쳐버리면 뒷 머리카락이 없어 잡기도 힘들고 특히 날개로 신속히 사라져버려 다시는 붙잡지 못한다.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에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만반의 준비’라든가 ‘위기가 곧 기회’같은 다짐이 금새 막연해지는 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하다.
굳이 위로하자면 오늘 그 기회의 축복을 잡지 못했더라도, 오카시오는 내일 또다른 앞 머리카락을 휘날릴 것이다. 집념이 있는 곳에는 늘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는 작곡가 헨델이 맞이한 세렌디피티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중풍과 사업실패로 심신이 피폐해진 헨델은 마지못해 뜯어 본 어느 가사의 첫마디 “Comfort ye”(위안받으라!)에 바로 전율을 느
낀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신의 미션임을 직감하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덕분에 불과 24일 만에 2시간이 넘는 총 53곡의 대곡을 완성하며 헨델은 우연이 낳은 화려한 부활을 하게 된 것이다.
가장 널리 애청되는 44번째 곡 ‘할렐루야 합창’을 함께 들어보자. 세렌디피티를 맞이한 순간이라면 누구라도 할렐루야를 외치며 경건하게 신의 은총을 찬양하고 싶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