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어니언 Dec 22. 2023

피아노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유키구라모토, 이루마를 알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좋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그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 그러한 마음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다고 말하는 나라는 걸 알아차린다.


어린 시절 양손의 같은 손가락이 달리 움직이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며 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만 먹었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을 얘기할 줄도 모르는 어린 시절이었고, 돈이 들어가는 어떠한 것을 배우려면 그에 응당한 성과를 요구하는 어머니의 요청사항에 대응하기 싫었다. 물론 공부 잘하기를 원했던 어머니에게 피아노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눈앞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쫓는 도파민에 중독이 되어있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친구들과 만나 술과 당구 그리고 술로 일상을 흘려보내고 다음날 숙취로 괴로워하는 패턴을 유지했다.

혼자 지내던 시간에 무언가 도전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지 않았다. 결혼과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개인적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기가 왔고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아이는 성장해 가며 7세가 되었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 하고 싶은 바람도 있지만 양속의 손가락을 달리 움직이면 뇌 근육이 발달하고 사고의 확장까지 이어질 거라는 나의 욕심에서 출발했다. 문화센터에서 시작된 아이의 첫 번째 시즌이 끝나고 두 번째 시즌에 등록을 할 때 아내는 나의 피아노 수업까지 결제를 했다. 나 안 해도 되는데, 이 돈이면 다른걸 더 하는 게 좋지 않나? 내가 하는 게 맞나? 내가 이런 교육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복잡했다. 고맙게도 아내는 주저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손수 등록을 하고 나의 등을 밀어주었다. 


일과 전혀 연관이 없는 어떠한 것을 배운다는 것이 마음이 이상했다. 여태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나는 해야 할 일들이 산재되어 있어하고 싶은 것을 배운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어쨌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뒤로한 채 아이가 앉던 피아노 의자에 내가 앉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수업은 떨렸다.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기억력이 음악의 기초적인 용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신기하다. 배운 지 30년이 다 되어 갈 텐데 기억하고 있는 게 웃음이 났다. 오래된 기억이 떠오르면서 신이 나기 시작했다. 어깨춤이 자연스레 펼쳐졌으나 건반을 누를 때 소심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왼손의 검지와 오른손의 약지를 동시에 누르는 내 감각이 익숙하지 않았다. 악보와는 다르게 자꾸 엉뚱한 건반을 누른다. 다시 가다듬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또 틀린다. 또 처음부터 다시 해 본다. 그런데 부끄러운 마음보다 즐겁다. 악보를 보며 건반을 양손으로 누르려 노력하는 내가 너무 좋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렇게 좋은 것이었던가? 


내가 많은 일상을 보내는 회사에서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내가 팀원들에게 아침 스탠딩 미팅 시 하는 얘기가 해야 하는 것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라고 늘 언급한다. 조직에서는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며 개인의 감정은 배제한 채 공통된 모습으로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피아노는 달랐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출발은 아내 덕분에 시작했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은 서투르고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세운 계획에 매몰되어 엇나가면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연습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할 때 어린아이처럼 들뜨며 재미있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틀렸음에도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반성한다.

왜 그렇게 일상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조급해하고 답답해하고 흥분해하며 화를 냈었는지, 잘못한 나의 행동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실수해도 틀려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피아노를 치지 않는 일상에서는 조금만 틀어져도 불편하다. 계획하고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상황이 펼쳐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한다. 이 모든 게 내게 발생되는 일들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의무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니 생각한 데로 되지 않을 때 힘들었던 것 같다. 일상을 의무감으로 행동했던 나를 돌아본다. 


다행인 건 알아차렸다. 티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 중이다. 완성해야만 된 것이 아니라고, 불편하더라도 뜻대로 안 될 수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연습이라 생각하며 즐기던 나를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공간에서 재미있게 잘 살아보고 싶다. 마음에 들지 않고 계획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다. 짜증 내는 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의무감이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때 예민해지지 않았던 경험을 살려 나의 일상에 녹여보려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피아노를 배우러 간다.

작가의 이전글 꾸준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