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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졸빙 Oct 04. 2022

촌(村)장이 되고 싶었던 나는,

방이 6개인 큰 집을 빌려 같이 살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 문턱_경계와 호기심


자신있게 내향적인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 있어요? 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딱히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가 나의 슬픔과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그 관계를 장시간 지속시켜 줄 만한 인생의 격동적인 드라마가 없었다. (혹은, 일상의 소소한 사건에 대해 신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귀엽고 순수한 마음이 없었다*).  


20대, 책을 좋아했던 나는 독서 모임에 가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치킨을 먹었고, 자연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을 때는 등산회에 껴서 새벽을 깨우며 아저씨들과 산을 뛰어다녔다. 외로움이 궁금해질 때면 강 곁에 앉아 혼자 가만히 있는 날들도 있었는데 그 때는 낯선 "친구"들이 다가와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해주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서서히 점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누군가를 만나는데 있어서 책과 산, 강과 x*가 제 3점이 되어줄 때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공이 오면 가야하는 탁구 같은 관계의 역학이 나는 오랫동안 부담스러웠다. 나이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탁구를 꽤 능숙하게 치게 되었지만, 안치고 싶어도 쳐야하는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제 3점의 존재는 매우 대단해서 선(line)이 면(plane)이 되게 하고, 그 면은 나에게 큰 자유 허락해준다- 아무리 즐거운 시간이더라도 지치거나 숨고 싶을 땐 제 3점 뒤로 가서 쉴 수 있음.        




아기를 낳고 나서 오랜만에 "마을"이라는 단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마을 전체가 공을 들여야 아이가 자란다"는 이 나라의 속담을 처음 듣게 되면서 이다. 불쑥 제 3점이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무의식 세계에 들어와 무언가와 부딪치면서 금새 뚜렷한 소망이 되었다- 촌장. 


나는 마을이라는 정서가 사라져가는 끝자락에 간신히 어린 시절을 걸칠 수 있었는데, 그 기억 속에는 꽤 생생하게 키가 큰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늘 인자한 미소로 허허 인사를 건네시는 "그 할아버지"와는 많이 다르시고, 오히려 말이 없으시고 주로 혼자 활동하시는 분이었다. 매일매일 당신의 속도와 걸음걸이로 아파트 사이를 누비시며 마음의 물을 주시는 분이셨는데, 그 분의 눈이 참 갈색이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사이를 가르는 사거리에서 매일 아침 호루라기를 부시며 교통 정리를 하셨고, 여름 방학이 되면 노인정에서 한자를 가르치셨다. 늘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넘어졌던 나는 한 번도 그분과 눈이 마주치거나 인사를 나눈 적이 없지만 나는 지금도 그분을 너무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분이 나의 마음에 무언가 조용히 심어두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를 돌보시던 시절, 나는 너무 안전했다. 그 연결됨이 좋았다.          


그 후로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세상은 "인터넷 연결망"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스마트폰의 갯수만큼 잘게잘게 찢어졌다. 촌장이 되고 싶은 나는 찢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붙이고 싶어졌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깜깜한 흙 속에 씨앗을 일단 넣고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마음의 물을 주는 것, 무작정 기다리는 것,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집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100살이 훌쩍 넘어 조금 무식해보이지만 듬직한 주택을 발견했다. 버스나 큰 트럭이 지나가면 살짝 진동하는, 방이 6개나 되는 아주 커다랗고 재밌는 집을 1년동안 빌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인터넷에 공동체로서 함께 실행하고 싶은 가치관들을 모아 사진과 함께 공고를 올렸다:


1.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대량공동구매, 리필 제품 사용 (세탁세제, 주방세제, 핸드워시), 비즈왁스랩 등

2. TV로부터 자유로운 공간, 책이 읽고 싶어지는 환경 

3. 공동체 생활이 도움이 될 수 있는 한부모 가정 환영!

4. 모두가 매일 함께 먹는 저녁 (채식 선호)

5. 매주 한 번 공동체를 위한 회의 및 인생 토론  


나와 남편, 그리고 딸


나를 날 것으로 그렇게 처음 인터넷에 노출을 시키고 난 후, 조금 초조해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누가 그런 불편하고 쾌쾌묵은 공동생활에 관심이 있어?', '너가 뭐라고 세상을 붙여?', '앞으로 혼자 월세 어떻게 낼래?' 하는 소리 없는 질문들이 엄습해왔다. 공모에 대한 무관심은 이 질문들과 힘을 합쳐 나에게 아주 큰 한 방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이 접은 쪽지와 함께- "그냥 조용히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담배를 입에 문 고릴라 프로필 사진과 함께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당신의 공동생활 아이디어에 관심이 있습니다,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일찌감치 진정으로 나와 공감해줄 사람이 있지 않을 거라고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 교환, scrabble, 체스, 합주, 부탁



/ 지구_ 환경 보호 차원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나의 생각

/ 2번 방_ 연두색 후디와 드레드락

/ 5번 방_ 봄 바람이 나풀거리던 치마

/ 햇빛 방_ 제 3점이 있는 관계

/ 1번 방_ 20살 타키

/ 4번 방_ 반짝반짝 빛나는

/ 다이닝 룸_ 동양인과 서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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