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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Sep 06. 2023

낭만은 내 가슴에

저녁을 못 먹고 퇴근을 했다. 유난히 바쁜 하루였다. 통근버스 안에서 전참시를 보며 잠시나마 피로를 잊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터벅터벅 지친 몸을 이끌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라면과 삼각김밥을 산 뒤 집 가는 길에 먹을 초코바도 하나 샀다.


처음 보는 맛이라 신선해서 샀더니 식감은 영 별로였다. 초코바는 똑똑 부러뜨리며 먹는 게 제맛인데 이 초코바는 그런 식감이 아니었다. 스펀지처럼 퍼석하니 한 입 물면 바스스 뭉개졌다. 기대와는 다른 식감의 초코바를 먹으며 조금씩 걷다 보니 내 앞으로 다가오는 동네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오늘따라 거리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서 그런가...? 핑크뮬리 같은 뭉근한 분홍빛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 순간 오토바이를 탄 커플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남자는 운전대를 잡았고 여자는 뒤에서 남자를 폭 끌어안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그들에게서 나는 낭만을 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낭만이 있다면 저것이 낭만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은 슬로 모션처럼 여러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이 코피를 흘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 킬미힐미에서 신세기가 떠나기 전 오리진을 태우고 거리를 달리는 장면, 그리고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영화 비트에서 정우성의 오토바이 타는 장면까지...


그 커플이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참 다양한 장면이 떠오른 건 그 시절의 낭만이 생각나서일까. 그 커플의 모습이 그 시절의 낭만과 닮아서일까.


내게는 지친 퇴근길이지만 그들에겐 분홍빛 거리만큼 낭만적인 저녁이었을 거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낭만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낭만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그 분위기와 감성에 충분히 젖어있을 수 있을 때. 그 순간, 그곳에 나의 낭만은 존재한다.


하동 여행에서 만난 섬진강 그 모래 위를 걸으며 느꼈던 모래의 폭신함,


동해의 바닷가 근처 카페에 가서 바닷가를 마주하며 마시던 쑥라떼의 향기,

어느 봄날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렸던 그날의 쾌감,

야경이 비치는 울렁이는 강을 바라보며 ‘일종의 고백’을 듣던 그 밤의 공기…

이 모든 게 나의 낭만이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다양한 낭만을 마주하게 될까?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낭만을 마주할 그 순간들이 기다려진다.

나이가 더 들수록 내 가슴에 낭만이 더욱 가득 차면 좋겠다. 삶에 지쳤을 때 비스켓처럼 내 낭만의 순간들을 꺼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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