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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Works Oct 28. 2022

‘영화기획’ 왜 중요한가?

1장. 영화기획이란?

4. Why planning is important?



"시작이 반이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할 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의 시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라고 했다. 이는 시작이 중요하고 일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노자는 도덕경 제64장에서 "千里之行(천리지행) 始於足下(시어족하), 천리 길도 발밑 한걸음부터 시작한다.”라고 하였고 “길을 잘못 들면 아무리 잘 뛰어도 소용이 없다.”라는 격언도 있다. 이런 명언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시작의 중요성과 일을 함에 있어 순서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기획은 그 첫 단추를 끼우는 단계이다. 하지만 우리가 셔츠의 첫 단추를 하나 잘못 끼우면 바로 마지막 단추가 끼울 곳이 없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듯이 기획은 영화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한다. 그래서 기획은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기획을 잘하였다는 것은 그 과정을 순조롭게 만들고 곧 좋은 결과를 맺게 만든다. 다시 말해 좋은 기획은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 물론 좋은 영화가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획이 잘 된 영화는 의미 있고 좋은 영화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사소한 것,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들, 해결하기 힘들고 복잡한 일들이 생기면 흔히 ‘야 그것은 대세에 지장이 없어~ 그냥 넘어가!’, ‘어쩔 수 없잖아~’ 또는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이렇게들 이야기며 그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대세에 지장 없는 것들,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정말로 대세에 지장이 생기게 되고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이런 경우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기획 과정에서의 간과한 작은 실수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결국 흥행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부실한 기획은 영화 제작의 첫 관문인 캐스팅과 투자의 허들조차 넘기 어렵게 만든다.


영화는 창작품인 동시에 하나의 상품이다. 즉 극장에서 다른 영화와 경쟁하여 관객들의 선택을 받아 수익을 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내 영화는 돈을 벌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기대만으로 영화는 만들려는 시도는 절대 금물이고 ‘도 아니면 모, All or Nothing’과 같은 무모한 도전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번 장에서는 기획이 중요한 이유를 9가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 무한경쟁에 뛰어들다.

- 나날이 상승하는 제작비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 1도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비극

- 동상이몽을 막아라

- 일관성을 유지하라

- 시간이 곧 돈이다

- 높은 투자의 관문

- 성공의 확률을 높여라




1)  무한경쟁에 뛰어들다.


기획이 중요한 가장 첫 번째 이유를 꼽는다면 너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이 경쟁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영화시장은 성장과 확장이 필수적인데 안타깝게도 한국영화시장은 성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2019년의 극장 관객수 2억 3천만 명이 연 관객수의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의 급격한 성장이 결코 영화산업 성장에 그린라이트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화들끼리만 경쟁하면 되던 예전과 달리 웹툰, 게임, 여행 등 다양한 오락거리들이나 새로운 콘텐츠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즉 영화 이외에도 즐길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K-Drama, K-Pop과 함께 K-Movie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조금씩 해외시장이 확장되고는 있지만 이는 소수의 감독과 작품에 국한될 뿐 대다수의 영화는 아직도 전적으로 내수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영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폭발적인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살아남을 작품을 만드는 무한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얼마나 경쟁이 치열할까?


영화진흥위원회는 매년 2월 경에 직전 연도의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를 발표한다. 2020년 이후부터 2022년 현재까지는 코로나로 인해 영화 산업 전체가 정지된 상태이기에 2020년 통계로 영화산업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2020년 2월에 발표한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통계를 가지고 한국영화는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2019년 1년간 극장을 찾은 우리나라의 총 관객수는 2억 2,668만 명으로 역대 최대이다. 총 관객수를 인구수로 나누어 보니 1인당 극장 관람 횟수는 연평균 4.37편으로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극장 입장권 매출 또한 1조 9140억 원으로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이다. 이 중에서 천만 영화가 5편이 나왔는데 1위는 <극한직업> 1,627만 명, 2위 <어벤저스: 엔드게임> 1,393만 명, 3위 <겨울왕국 2> 1,337만 명, 4위 <알라딘> 1,255만 명, 5위 <기생충> 1,009만 명이었다.


그런데 역대 최대 관객수와 수익 기록 이면에는 몇몇 대작 영화가 수익을 독점하는 문제가 숨어있다.


2019년 1년간의 일별 상영 점유율을 보면 1위 한 영화가 36%, 2위가 20%, 3위가 13%로 하루에 상영할 수 있는 전체 상영 횟수의 70%를 단 3편의 영화가 독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5년 간 상위 3편의 영화가 점유한 상영 점유율을 살펴봐도 2015년 62.9%, 2016년 61.8%, 2017년 64.5%, 2018년 67.9%로 해마다 독점 비율은 상승하고 있다. 특히 2019년 천만 영화 5편 중 <알라딘>을 제외하고 4편 모두는 한 편의 영화가 일별 상영 점유율 50%를 넘기며 스크린의 과반수를 차지했고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사상 최초로 80%를 넘기기도 했다.


당연히 영화 매출 또한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흥행 순위별 영화 매출을 보면 1위였던 <극한직업>이 그해 전체 영화 매출의 7.5%를 차지했고 10위까지의 매출이 46,2%, 50위까지가 85.1%이고 150위까지가 98%의 매출을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영화들이 고작 매출의 2%를 나누어 가졌다.


그렇다면 일 년에 극장에서 몇 편의 영화가 개봉될까? 2019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에 한국영화는 509편, 외국영화 1,238편으로 총 1,747편이 극장 개봉하였다. 영화는 통상적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개봉하니 주당 33.5편의 영화가 새롭게 개봉하였다. 언제 그렇게 많은 영화가 개봉했지? 의아하겠지만 매주 소리 소문 없이 상영됐다 사라지는 영화가 이렇게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1,2,3위 영화 3편이 스크린의 70%를 차지한다 했으니(물론 성수기, 비수기 시기마다 월별로 다르겠지만) 3,000여 개의 스크린 중에서 약 900개 정도의 스크린을 30여 편의 영화가 나누어 가지는 꼴이 되고 1,747편 영화 중 150편이 98%이 매출을 독점하고 나머지 1,597편의 영화가 2%의 수익을 나눠가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보면 한국 영화의 경쟁이 얼마나 피 말리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당신이 만들 영화가 개봉해서 다른 영화들을 제치고 1,2,3위 안에 들지 못한다면 극장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수익을 내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다음 통계를 보면 스크린 확보가 어려운 영화들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한국영화 509편 중 199편, 외국영화 1,238편 중 448편, 총 647편만이 실질 개봉작이다. 실질 개봉작이란 연간 상영 회차 40회 이상, 최소 1개 스크린에서 7일 이상 전일 상영한 작품을 말한다. 이러한 실질 개봉작 외에 나머지 1,093편은 극장에 형식적으로 상영한 영화들이다. 그나마 이 작품들은 극장에서 한 번이라도 상영했으니 행복한 편에 속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화가 완성되었지만 극장에 상영조차 하지 못한 작품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은 영화는 2018년 2,500편, 2019년 2,714편, 2020년 3,118편으로 매년 8~15% 정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중 매년 1,000편 이상의 영화들이 상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프로듀서나 감독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까’ 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제로 자신들의 영화가 완성 이후에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지 깊은 고민 없이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험난한 개발의 여정을 미소로 마무리 짓고 싶다면 성공적인 영화가 되도록 충실히 기획 과정을 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에 걸쳐 애써 키운 자식 같은 작품의 미래는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영화를 한 번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 한 편 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그렇게 어려운 기회를 얻어 놓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이는 단지 영화 한 편의 실패로 그치지 않고 당신이 다음 영화를 만들 기회를 사라지게 만드는 일임을 명심하라!

 



2) 나날이 상승하는 제작비


오늘날 한국영화의 평균 총제작비는 100억에 육박한다. 불과 20년 전에 비해 5배 정도 올랐다. 물론 영화산업이 커졌고 수익이 커졌으니 당연히 배우의 개런티도 오르고 스태프의 인건비도 올라야 하고 물가상승과 비례해서 제작비 자체가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제작비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커졌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년간 제작비가 약 5배 오를 동안 극장요금은 2배 정도 올랐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 차이만큼을 관객수의 증가가 메꾸어주었지만 관객수 증가가 둔화될 것이 예측되는 가운데 제작비의 증가는 영화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꼭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제작비는 영화의 제작환경을 오히려 위축시키고 다양성을 해치는 부작용은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제작비가 상승하자 영화 제작현장에서 멜로나 휴먼 드라마와 같은 장르가 사라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장르의 영화는 만들어봐야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멜로 영화의 평균 관객수는 100만~150만 명 내외이고 그럼 6~70억 원 정도 수익이 예상되는데 제작비가 100억 원 정도 든다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물론 가끔가다 잭팟이 터지는 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뻔히 손해가 예상되는 영화를 굳이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앞으로 공포영화도 곧 극장에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위기가 느껴진다. 결국 이러한 제작비의 상승은 다양한 영화의 제작에 걸림돌이 된다. 특히 독립예술영화는 더 심각하다. 순제작비가 2~3억 원 정도에 제작하던 이들 영화는 주 52시간, 최저시급 적용, 물가상승 등의 이유로 이제는 최소 5~8억 정도는 있어야지 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대다수의 독립예술영화의 관객이 1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현실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만으로 투자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CGV가 독립예술영화를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로 CGV아트하우스 팀을 만들어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에게 적극적인 투자를 했었다. 이를 통해 [님아 그 강을 거는지 마오], [차이나타운] 등 좋은 작품이 탄생시켰고 능력 있는 감독과 장래가 유망한 배우들을 발굴하는 등 나름 독립예술영화의 활성화에 기여를 했다. 히지만 CGV아트하우스는 2019년 11월 독립예술영화 투자배급사업을 접었다. 이유는 지속적인 사업을 이어갈 만한 최소한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제작비는 당신의 꿈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제작 가능한 영화를 기획해야 한다. 꿈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3)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제 주장대로 배를 몰려고 하면 결국에는 배가 물로 못 가고 산으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주관하는 사람 없이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사공이 많아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배의 키 역할을 하는 것이 기획이다. 기획이 탄탄하면 산으로 가려는 배를 다시 바다로 향하게 돌릴 수 있고 여러 사공들의 주장에 대해 왜 그들의 주장이나 의견이 이 영화와 맞지 않는지 또는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영화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의 출발은 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갈수록 관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시나리오에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종합되어 녹아들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공동창작 작업이다. 이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좋은 영화가 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여러 사람의 생각이 통일성 없이 하나로 응집되지 못하면 시나리오는 앞으로 전진하기보다 뱅글뱅글 맴돌게 된다. 때론 입김이 센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고 애초에 어떤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지 조차 헷갈리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 시나리오 개발할 때 이런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보게 되는데 만약 명확한 초기의 기획이 잘 설정되어 있다면 과정 속에서 수많은 의견이 쏟아진다 할지라도 꼭 받아들여야 할 의견과 무시해도 되는 의견을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뿐 아니라 잘 설정된 초기의 기획은 방향 또는 중심을 잃었을 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의 주변의 훈수, 거절할 수 없는 입김, 절대적 힘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획자, 감독, 작가는 없다. 그렇게 개발된 시나리오를 보다 보면 어떤 때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헷갈리데 이때 자신의 초기 기획으로 돌아가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당신이 초기에 기획서를 쓰며 많은 고민을 담아 세심하게 작성해 놓았다면 당신이 미궁에서 빠져나올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 안에는 처음 기획할 당시에 떠오른 소재와 의도가 적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지금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방향이 옳은 길이다. 긴 호흡의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혼란스러울 때 때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길이 보일 때가 많다. 결국 주변에 수많은 훈수로 길을 잃었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그 핵심 문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기획이다. 기획은 당신 영화의 본질적 재미 무엇이고, 그것이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거나 왜곡되었는지, 왜 표현이 안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게 한다.


사공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사공이 바다로 향해 노를 짓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4)  1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비극


골프는 직경 42.67mm의 작은 공을 긴 막대기(클럽)로 몇 번에 걸쳐 300~500m 정도 떨어진 지름 108mm 구멍에 넣는 운동이다. 특이한 것은 모든 구기 스포츠는 점수를 많이 내면 이기는데 반해 골프는 클럽을 휘두른 횟수가 적은 사람이 이기는 경기이다. 이 골프에서 우리는 기획의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원리를 배울 수 있다. 첫 번째는 깃대가 중요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타수를 줄일 수 있도록 원하는 곳으로 정확하게 공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초보 골퍼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볼을 쳐서 멀리 보내려 하는 것이다. 처음 골프를 배워 필드에 나가 친 공이 바람을 가르며 쫙 펼쳐진 그린 위를 시원하게 쭈욱 쭈욱 날아가는 걸 볼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특히 내가 친 공이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날아가 맨 앞에 있으면 왠지 어깨가 우쭐해진다. 그런데 정작 골프는 비거리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운동이다. 아무리 비거리가 많이 난다고 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오히려 타수는 늘어나게 된다. 결국 골프를 잘 치려면 원하는 곳으로 똑바로 공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골프는 매 샷을 칠 때마다 목표지점(깃대 또는 핀)을 정하고 에이밍(aiming)을 한다. 이때 에이밍이 조금이라도 틀리게 된다면 공은 날아가며 원하는 곳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출발에서 1도만 어긋나도 공은 100미터 뒤에서는 목표지점보다 몇 미터는 떨어지게 된다. 이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오차는 심해진다. 심지어 1m 퍼팅에서는 0.1mm 오차 때문에 공이 홀컵을 벗어나 버리니 참으로 골프는 어려운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는 목표지점 즉 핀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혹시나 실수로 공이 다른 곳으로 쳤다고 해도 다시 목표를 향해 조준하여 핀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아예 목표지점이 없다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까? 바로 네버엔딩 게임이 될 것이다.


왜 갑자기 골프 이야기를 하지? 싶겠지만 바로 영화의 기획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당신 영화의 핀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기획단계에서 핀을 정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가 어디로 가는지 절대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시나리오 개발은 네버엔딩이 되거나 결국 중도에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런 영화 재미있을 것 같아 하며 막연하게 만들겠다가 아니라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명확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 이것을 확정하는 과정이 기획이다. 그것은 두리뭉실해서는 안되고 명확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자칫 엔딩을 정하고 그쪽을 인물과 사건을 보내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런 뜻이 아니다. 처음에 아이템을 선택하고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려 갈 때 방향성을 설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 영화의 정체성이자 당신이 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다. 무조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눈 감고 대충 아무 데나 총을 쏘는 것과 같다. 쓰면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허송세월은 불보다 뻔하다.


결국 영화의 기획이란 목표를 정하고 그 방향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디로 시나리오를 보낼 것인가 목표를 잘 정해야 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첫 티샷에서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세컨드 샷에서 다시 핀을 조준할 수 있고 그래서 몇 번의 샷을 통해 결국 그린 위에 볼을 올려 10.8cm의 작은 홀컵에 볼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5)  동상이몽을 막아라


분명 같은 것을 보고 있는데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이 영화의 기획의도는 무엇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은 디벨롭먼트 단계에서 작가, 감독 그리고 제작자가 끊임없이 반문하고 토론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분명히 같은 생각, 같은 기획의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전혀 같은 의도가 아닌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그것이 다르다고 말해도 아니라며 우기고 나오면 정말 노답이다.


왜 그럴까? 교통사고 장면을 목격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자.

어느 날 건널목에서 사고의 목격한 두 사람의 목격자가 경찰서에 와서 진술을 했는데 진술이 서로 달랐다. 한 사람은 “차가 왼쪽에서 달려와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을 미쳐 못 보고 충돌하였다”라고 말하고 다른 목격자는 “오른쪽에서 진행하던 차량이 왼쪽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미쳐 보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라고 진술을 했다. 분명 두 사람은 당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고 목격한 사고에 대해 사실대로 진술을 했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본 그래도 진실만을 말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두 사람의 서로 반대 위치에서 사고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서로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개발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시나리오 개발하다 보면 프로듀서가 작가나 감독과 시나리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한 후 수정 방향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해서 만족스럽게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프로듀서는 글을 쓸 작가나 감독에게 다시 한번 자신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강조하며 수정사항을 노파심에 거듭 확인하다. 이때 감독과 작가는 웃으며 “걱정 마세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 들었어요. 좋은 생각이세요!… 그렇게 수정해 볼게요…” 그래도 미심쩍은 프로듀서는 온갖 영화의 예를 들어가며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신신당부를 한다. 한 달 후, 작가에게서 수정한 시나리오 보낸다는 연락을 받는다. 제일 먼저 프로듀서는 “내가 말한 대로 수정 잘 됐나요?”를 궁금해 묻는다. 그럼 여지없이 “물론입니다. 피디님 말씀하신 것 거의 다 고쳤어요!”라고 대답하는데 이에 기대에 차 시나리오 읽던 프로듀서는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어 “아니 왜 우리 지난번 회의 때 얘기한 것하고 다르죠?”,  “아니 지난번 말씀하신 것들 다 잘 적용했는데요? 하나도 안 빼놓고…” 그러다 보면 점점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고 한쪽은 화를 내고 한쪽은 오히려 ‘실컷 원하는 대로 고쳐 놨더니’ 하며 빈정 상해한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접점은 찾지 못하고 공허하고 답답해지기만 한다. 그러면서 한 달이란 시간을 그냥 날린 것 같아 화가 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무엇이 문제일까?


오랜 시간 회의를 하며 아주 디테일한 예화까지 들어가며 수정사항을 이야기했지만 서로 동상이몽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은 손잡이 없는 밋밋한 컵을 반대에 앉은 사람은 손잡이 달린 머그컵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같은 소재, 같은 스토리, 같은 주인공, 같은 사건을 가지고 회의를 하더라도 각자가 그 시나리오에 대해 해석하고 디벨롭해 나갈 방향, 이해하는 지점, 시점, 의도가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1년 이상 시나리오 개발을 같이 했는데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의견 충돌이 심해져서 폭발하고 나서야 서로 다른 생각을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시나리오 개발은 어떠한 구체적인 형태를 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건축 설계라면 그림을 그려가며 또는 샘플이라도 보며 확인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각자의 머릿속의 떠도는 관념적인 생각이나 이미지를 말을 통해 전달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감정과 떠올린 이미지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서로 완벽하게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서로가 자라온 환경이나 지식의 정도,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시나리오에 대한 깊이와 공감하는 정도의 차이는 미묘하게 서로 다르다. 두리뭉실하게 말하다 보면 같은 의견 같지만 그 의도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실제 영화는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진 다른 영화가 되어 버린다. 아무리 동일한 스토리라인과 사건, 인물일지라도 보는 관점과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충분한 소통을 해야 한다. 같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서로 다른 감독이 연출하면 똑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데 하물며 시나리오 개발하는 과정은 오죽하랴




6)  일관성을 유지하라


영화가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상영 후 종료하는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적으로 일 년 정도이다. 반면에 기획 기간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시나리오 초고를 뽑아내는데 6개월 정도 걸리는 아주 빠르게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집필 시간만 계산한 것으로 대부분은 아이템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그것을 계속 숙성 발전시키고 자료조사를 하여 방향을 설정하고 시나리오로 옮기기 까지를 생각보면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봉준호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생충> 차기작으로 호러 액션 영화를 준비 중이라며 “이 영화는 2001년 아이디어를 구상해 18년째 개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 아이템이 떠올랐다고 바로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해 6개월 안에 완성된 시나리오를 내어 놓는다는 것은 아무리 천재라 해도 쉽지 않다. 여기에 패키징에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초고속으로 진행해도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프로덕션의 두 배 이상의 긴 시간은 기본이다.


이 긴 시간 속에 얼마나 다양한 변수와 시행착오가 발생할까?


기획 초기에 있었던 작가는 어느새 다른 작가로 교체되어 있기도 하고 감독 또한 여러 번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제작사와 프로듀서마저도 바뀌어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이미 애초의 기획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무슨 영화를 개발하려고 했는지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경우마저 생긴다. 이렇게 되면 문득 ‘이 시나리오를 왜 계속 파고 있지? 원래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지? 앗! 그런데 처음 기획이 다 사라졌는데 오히려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다른 영화인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미 당신의 영화는 일관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때론 명확한 기획을 가지고도 이런 시행착오를 보게 되는데 하물며 명확하지 않은 기획을 감만 믿고 개발하려 하거나 그런 영화가 투자받기를 바란다는 것은 기적을 꿈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영화의 기획이 완벽할 수는 없고 또한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을 완벽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은 당신의 영화가 오랜 기간 동안 방황하거나 뒤로 후퇴하지 않도록 일관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




7)  시간은 곧 돈이다. 방황하는 만큼 시간과 비용이 늘어난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고 깃발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긴 제작기간 동안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거나 설사 깃발은 있으나 모두 동상이몽 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뻔히 예상하겠지만 영화는 정처 없이 이리저리 헤매며 방황하게 된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방황이 아니다.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이 허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심히 달려서 올라간 산에서 ‘이 산이 아니구나!’하고 또다시 방향을 바꿔 다른 시나리오를 쓰고 그러다 안되면 작가를 바꾸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이러한 시행착오는 영화 제작의 동력을 잃게 만들고 당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게 만든다. 물론 시행착오 하나 없이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뚜렷한 기준 없이 왔다 갔다 시행착오를 하다 보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더더구나 시나리오는 수정할 때마다 앞으로 전진하며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것 같이 초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그런데 흔히 이런 상황에서 작가, 감독, 프로듀서는 이런 시간을 ‘시나리오 개발이 그리 쉽나? 다 이런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는 거지!’ 라며 당연한 개발 과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낭비되는 시간이다. 물론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 숙성된 좋은 작품이 나오겠지만 결코 '인고의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의 낭비'라는 뜻은 아니다.


시간이 곧 돈이다!


많은 영화인의 경우 ‘밥은 먹고 있으니 얼마든지 시나리오 쓸 수 있다’라며 시간을 돈이라 여기지 않고 당신의 열정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이 시나리오 쓰는 시간만큼 노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복잡하게 당신의 경력과 나이를 고려하여 계산하지 말고 그냥 최저 시급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하고 단순 계산해보자. 왜냐하면 당신이 기획에 들이는 시간을 나중에 영화가 만들어져 받는 각본료나 기획료로 계산해보면 최저 시급도 안된다는데 놀랄 것이다.


2022년 올해 최저 시급이 9,160원이다. 이것을 한 달 임금으로 하면 209시간 근무에 1,914,440원, 1년 일하면 22,973,2800원이다. 시나리오 쓰는데 3년 정도 소요되니 최소한 당신이 집필 중이라면 적어도 68,919,840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물론 매일매일 8시간씩 시나리오만 쓰는 것이 아니니 그만큼의 노동시간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창작의 순간은 잠자는 시간 말고는 늘 작품을 생각하고 있는 시간이다. 만약 현재 당신이 무보수로 시나리오를 쓰거나 기획 과정에 있다면 이미 당신은 영화에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당신의 시나리오가 좋아 투자도 되고 캐스팅이 돼서 투자사로부터 기획비와 시나리오 각본료를 정산받는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당신은 손실을 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기회비용이라 여기겠지만 그러기에는 허비한 3년이 결코 작은 경제적 손실이라 할 수 없다.


만약 이 과정을 감독, 작가, 프로듀서 3명이 함께 했다면 3년 동안 2억에 가까운 돈을 투자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경상비를 모두 빼고 순수하게 인건비로만 계산한 것이다. 진행비, 자료 조사비, 경상비 등을 포함하고 회의하고 고민하며 함께 마신 소주값까지 친다면 얼마나 될까? 이쯤 되면 기획 기간 동안 돈을 못 버는 것은 둘째치고 당신은 열심히 빚을 내 영화에 투자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영화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체...


시간을 돈으로 계산해보니 어떤가?


그런데 정작 작업하면서 작가와 소통이 되지 않아 몇 달을 보내고 '이 산이 아닌가 봐?'하고 몇 달... 마치 도돌이표를 만난 모양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다 1년, 2년을 그렇게 보낸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한번 써보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빚뿐이다.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획의 부재는 결국 시간의 허비를 낳고 시간의 허비가 곧 비용이다'는 점은 꼭 인지해야 한다.


한국 제작 환경에서 기획 단계는 매우 열악하다. 기획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도 많지 않은 데다 작가와 감독에게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며 기획할 여력이 있는 제작사들이 손에 꼽힐 정도로 별로 없다. 요즘은 1인 기획사 형태로 작가, 감독, 프로듀서가 혼자 또는 몇몇이 모여 영화사를 차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대박을 꿈꾸며 열심히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다. 운 좋게 기획개발비를 투자받은 경우라면 잠깐 여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메이저 투자사나 규모 있는 제작사를 찾아 공동제작을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주머니 돈을 쌈짓돈 삼아 버티며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발 시간이 흐를수록 심적 부담과 고통은 점점 커지고 마음은 조급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여유 있게 천천히 생각하고 검증하고 시나리오를 쓰겠는가? 결국 아이템이 떠오르면 그것이 정말 좋은 기획인지, 방향은 어떻게 가야 되는지, 시장에서 관객들이 좋아할 것인지, 핵심 테마는 무엇이고 그 테마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치밀하게 기획하고 고민해야 하는 기획의 기본은 건너뛰고 막연한 상상과 자신의 Feel만 믿고 불쑥 시나리오부터 쓰기 일쑤이다.


여기서부터 일은 꼬이는데 제대로 기획 검증도 없이 시작한 아이템은 얼마 가지 않아 좌초되고 설령 계속 개발한다 해도 시간이 갈수록 더 꼬이고 나중에는 죽은 자식 OO 만지기처럼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미련을 버리지 못해 붙잡고 늘어지게 된다.


옛 선인들은 바가지에 잎사귀를 띄어 찬물을 마셨다 한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듯이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이고 기획 기간도 단축하고 싶다면 이 점을 유의해서 반드시 기획을 철저히 한 다음에 하나하나 순서대로 가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이다. 특히 시나리오는 한번 쓰고 나면 그 시나리오에서 방향을 틀어 다르게 고쳐 쓰는 것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그래서 초고 쓰는 것보다 재고를 쓰거나 각색을 할 때 만족도가 떨어지고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다.


물론 기획의 부실했지만 버티고 버틴 끝에 성공한 기획도 있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성공하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그런 행운이 당연히 올 거라 기대하고 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면  무모한 도전이거나 투기가 아닌지 따져 보기를 바란다. '시간이 곧 돈'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충분한 기획 없이 시작을 하거나 섣불리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덤벼들지 말고 최소한 당신의 작품이 지금부터 몇 년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된다고 경제적 판단이 될 때 올인해도 늦지 않다. 이것이 당신의 돈을 아껴줄 것이다.




8)  높은 투자의 관문


시나리오를 쓰는 이유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럼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영화 제작의 필수요소는 ‘시나리오’, ‘배우’, ‘감독’, ‘제작비’이다. 여기서 무엇 하나 빠진다면 영화는 만들 수 없다. 물론 시나리오 없거나 현장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촬영하는 감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인 경우는 아니다. 위에 말한 시나리오 없이 촬영하는 감독의 경우는 제작을 본인이 하거나 아니면 각종 영화제 등에서 각광을 받아 그 실력을 인정받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예술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다.


결국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작비를 조달해야 하는 숙명에서 시나리오는 필수이고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모여 작품을 찍으려 해도 투자가 되지 않아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하면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이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국내의 유명한 감독들 역시 매번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 대해 영화 <아가씨> 각본집 출간에 맞춰 채널예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각본을 쓴다는 것은 투자자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쓰는 것이죠. 그들이 읽고 돈을 대고 싶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첫째예요…”


결국 기획과 시나리오 개발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목표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20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국내 극장에서 실질 개봉작 190편을 대상으로 평균 제작비를 분석해 보았다. 평균 순제작비(영화를 완성하는데 들어가는 순수 비용)는 21.5억 원, P&A 비용(완성된 영화를 배급하고 마케팅하는데 소요되는 비용 Print & Advertising) 7.5억 원으로 총제작비(순제작비와 P&A 비용을 합한 금액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상영할 때까지 소요되는 모든 직접 비용)는 29억 원으로 나타났다. 190편 중 10억 미만의 독립영화는 115편 60.5%, 반대로 100억 이상의 소위 블록버스터는 8.9%, 17편이었다. 이중에서 상업영화 45편을 간이 조사한 것에 따르면 순제작비가 76.3억 원, P&A 비용이 25억 원으로 평균 총제작비가 101,3억 원이나 된다. 이는 2015년 53.5억 원이었던 평균 총제작비가 해마다 늘어나 2017년부터는 평균 100억 원을 웃돌고 있다.


만약 당신이 상업영화를 기획하고 있다면 개발한 시나리오로 평균 1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의 시나리오는 '100억을 투자받을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관문을 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디 남의 주머니에서 100억을 쉽게 꺼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 기나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이다. 영화의 흥행이나 관객들의 평가는 나중 문제이다. 좋은 시나리오라도 투자가 안되면 그 시나리오는 종이에 쓰인 활자이고 그 종이는 결국 이면지에 불과하다. 이면지의 종말은 어디인가? 어느 순간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당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이 당신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이면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획 과정은 내 영화의 가치를 만드는 과정이다. 충분한 가치가 있도록 철저하게 분석하고 계획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개발한 시나리오가 투자의 높은 관문을 넘지 못해 원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당신은 열심히 휴지를 만들고 있을 수 있다.




9)  성공할 확률을 높여라


기획을 충실히 잘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충분히 파악을 했다는 것이고 이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많은 리스크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측과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하나의 상품 즉 제품이라 했다. 이 점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100억이 넘는 상업영화이던 10억 미만의 저예산 독립, 예술 영화이던 마찬가지이다.


기업들이 제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제품을 팔아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제품을 기획할 때 ‘아 이 제품 만들면 많이 팔릴 것 같아’ 하는 막연한 기대로만 만들지 않는다. 제품을 생산 출시할 때까지 치밀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자의 니즈, 문제점, 극복 방안 등을 파악하고 계획하며 특히나 앞으로 이 제품을 통해 돌아올 수익에 대해 예상해 보고 이를 위해 얼마의 자금을 투자해야 할지, 손익이 분기점이 어떻게 되는지, 순이익은 언제부터 얼마나 발생하게 될지 등 수많은 고려 사항을 예상하고 분석해 볼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변수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예측하므로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이러한 기획을 통해 생산하는 제품의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고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문화상품으로써 영화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은 당연한 목표이다. 최소한 투여된 제작비를 회수해야 다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2019년 한국 상업영화 추정 수익률을 보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총 45편을 대상으로 평균 5.9% 수익률을 나타냈다. 이는 극장 매출과 극장 외 매출을 포함한 것으로 이중 극장 매출로만 추정치를 산출해보면 -21.3%라는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전체 45편 영화 중 극장 매출로만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1편으로 추정되고 총매출 기준으로 추정해도 손익분기점을 넘기 영화는 18편에 불과하다. 이중 수익률 100% 이상을 상회한 작품은 4편 (2018년 3편)으로 전년과 비슷했다. 반면에 -50% 수익률 이상을 하회한 작품 수는 17편(2018년 11편), -80% 이상을 하회한 작품 수는 10편(2018년 2편)으로 전년 대비 크게 늘었다. 이를 보면 수익률이 -50% 이상인 작품이 28편으로 대상 45편 영화의 50%를 상회한 것을 볼 수 있다.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어렵게 투자를 받아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 후 극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대부분 실패한 영화를 분석해보면 의외로 기획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기획 자체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결국 초반의 기획이 반드시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기획의 부재나 기획의 실패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왜 이렇게 힘든 영화를 만들려고 하세요?"라고 질문하면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는 한방이 있잖아요?”라고 대답한다. 맞다! 영화는 한방이 있다. 하이 리스크인 만큼 하이 리턴이 가능해 대박 한방에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꿈은 꾸기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 ‘Dream comes true’가 되려면 충실한 기획은 필수이다. 당신의 시간과 청춘을 바친 꿈이 자칫 ‘A Midsummer Night's Dream’이 될 확률이 큰 곳이 바로 이 영화계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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