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면 이렇게...
신문 한가운데 늦은 중년쯤의 부부가 크게 웃는 사진에 눈이 멈추었다.
“바보같이 살아도 큰일 나지 않고, 좀 논다고 굶어 죽지 않더라”라는 제목에
“부부가 둘 다 퇴사하고 놉니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나이가 50대가 넘은 부부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놀기로 작정했다.
남편 P 씨는 30년 가까이 갑(甲)을 위한 '을(乙) 질'을 하면서 보냈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을질'이라는 말에 마음이 섬뜻하다.
평생 월급쟁이였던 내 속의 억울함, 속상함 같은 것들이 울컥 올라온다.
기사 속의 남편 P 씨는 나와 달리 고객 때문에 '을질'을 했겠지만,
나보다 강한 누군가 때문에 '을질'을 했다는 입장에서 동료애가 느껴졌다.
남편 P 씨는 평생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광고 만드는 일은 멋진 일이다.
예술인 듯 예술 아닌 듯 어쨌든 고진한 창작의 고통이 따르고,
누군가의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쫄깃함을 동반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렇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이 50대 중반이 되어 이제 좀 편해질 듯도 한데, 사직서를 던진 것이다.
왤까?
그는 월급과 명함을 잃었지만, 내려놓음에서 자유로움과 자기다움을 선택했다.
나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나 자신을 던져 제대로 불태워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늘 타다만 장작 같은 안달감과 안타까움에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러면서도 사직서를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직장 그만두면 뭐 먹고살지?' 때문이다.
남편 P 씨가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했을 때 아내 Y 씨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게 해, 결심하느라 마음고생 했겠네"
나는 남편 P 씨에게 빙의된 듯, 아내의 대답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구나, 기다려 줘서 이해해 줘서 고마워~'
부창부수, 천생연분, 수어지교, 종고지락이다.
아내는 '직장 그만두면 뭐 먹고살지?'에 대해서도 답이 확실했다.
"그저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되지"
이 커플 너무 멋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부모로서의 무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보니, 이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날들의 무게를 느낀다.
그리고 시작과 변화, 자유와 탈출, 도전과 모험 이런 말들에 사로잡힌다.
"60세가 넘어 OOO에 도전하다!"
하지만 부러움도 잠깐,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바로 합리화를 한다.
세월의 무게는 어깨에서 팔과 다리로 내려온다. 그래서 앉은자리에서 일어나기도 걷기도 힘들어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 타다만 장작을 마저 태우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
나도 신문기사 속의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월의 무거움을 내 일부가 되어 같이 들어줄 수 있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뭘 하고 싶다고 말할 때, 꿈을 말할 때, 언제나 응원하고 내편이 되어 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그렇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아니었다...
그냥, '지란지교를 꿈꾸며' 차 한잔 마셔야겠다.
(2022년 어느 날에 씀)
< 읽을거리 >
☞ 이옥진. (2022.08.13). “바보같이 살아도 큰일 나지 않고, 좀 논다고 굶어 죽지 않더라”,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QDK3FGRSKZEE5EP3BUJIFMZY7I/)
☞ 『지란지교를 꿈꾸면』유안진 저, 아침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