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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모 Mar 09. 2024

여의도, 돈의 궁전과 119 전화통

서강대교 위의 119 전화통이 말을 건다

퇴근길 서강대교를 건널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있다.  

 < 돈의 궁전과 119 전화통 > (서강대교 위에서)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서강대교 난간에 붙어있는 전화통이 말을 건다. 전화통에는 119의 빨간 버튼과 생명의 전화의 초록색 버튼이 위아래로 나란히 달려있다. 1년에 몇 명이나 버튼을 누르겠나 싶기도 하지만, 자살률 세계라는 오명이 그냥 만들어진게 아니기에 이 작고 볼품없는 전화통이 사람 살리는데 톡톡히 제 몫을 했을 것이다. 


유난히 길고 힘든 하루를 보낼 날에는 전화통이 내 손을 잡아 끄는 듯하다. 마치 수화기 너머 힘든 하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줄 누군가가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전화통에서 고개를 돌려 한강다리 남단 여의도를 바라보니, 세련되고 미끈하게 뻗어있는 돈의 궁전들이 보인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잘 나가는 금융 회사들이 즐비한 곳이다. 손으로 잡힐 것 같이 서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나올 때는 피투성이가 되거나 온몸에 지폐를 휘감은 개선장군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인 곳! 저기 돈의 궁전에서 피투성이로 빠져나온 누군가가 여기 전화통 앞에서 울먹인 적도 있으리라.


누군가 일순간 몇십억을 손에 넣어 파이어족이 되었다면, 
그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질까?

돈의 궁전에서 승리하여 일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들,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ely)족이 등장하였다. 월급만으로 파이어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파이어족은 투자로 돈을 번 신흥 '벼락부자'들이다. 


성공은 땀의 결실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던 때, 전국이 부동산 개발의 열기로 뜨거울 때 '벼락부자'들이 나타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벼락부자'가 조롱거리였는데,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벼락부자'가 못되어서 안달이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인생 한 번뿐인데, 빨리 많이 벌어서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다.


내가 청소년기에 아버지는 하시던 사업을 정리하고 일찌감치 본업에서 은퇴를 하셨다. 그 당시에 흔치않은 파이어족이셨지만, 맨 손으로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에게 삶을 즐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하셨다. 늘 책상 위를 가득 덮고 있는 경제지와 오전 내내 수화기를 붙잡고 계시는 모습이 익숙해지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와 가족들 사이의 벽도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주식투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크게 손실을 보시고는 손절하겠다고 하셨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 주식창 앞을 떠나지 못하고 계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돈의 궁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돈의 궁전에서 패잔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돈이 게으른 나랑은 벌로 친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든 부자였으면 좋겠다. 경치 좋은 곳에 넒직하고 멋진 북카페를 열고, 친한 사람들 초대해서 근사한 파티도 열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유럽에서 한 달 살기도 해 보고,  그리고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한 때는 식구들과 모여 앉아 치킨 먹으며 수다떨 때인데 부자가 되면 가장 행복한 때도 바뀔까?


(2022년 어느 날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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