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는가?
근처 대형마트 입구에서, 꽃 화분들이 높이 쌓여있는 매대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보고 미국의 봄은 이렇게 오나 싶었다. 집 밖에 보이는 나무나 풀에서는 아직까지 그다지 봄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정원사들을 기다리는 마트의 꽃 화분들은 진작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집 앞 산책길에 본 개나리 더미들과 듬성듬성 핀 벚꽃나무를 보고는 이제 드디어 집 앞에까지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은 우리나라의 봄 꽃인 줄 알았는데 태평양 건너 이곳에서도 피어나다니, 헛된 애국심을 꽃들에게 부려보게 된다.
벚꽃 역시 일본과 가까운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교회나 성당에서 관광차 빌려 벚꽃 구경 간다하니, 사는 게 다 똑같은 건지 아니만 한국 사람은 어디서도 다 똑같은 건지... 아무튼 산책로에 줄지어선 가냘픈 벚꽃나무들을 보니 문득 2년 전이 생각났다.
2022년 4월, 여의도 윤중로가 다시 열렸다.
코로나19 때문에 몇 년 동안 맘 편히 즐기지 못했던 벚꽃 나무와 꽃잎과 그 그늘을 맘껏 즐긴다. 여의도의 벚꽃나무는 '왕'벚나무의 명성에 걸맞게 그 자태가 웅장하다. 다행인지 서울 한가운데에서 웅장한 자태로 국회를 철통보안하고 있는 이 왕벚나무들은 우리나라 고유종이라고 하니, 한번 더 눈길이 간다.
아름둘레만 한 몸통이 세월의 질곡을 표현하듯 베베 꼬여있다. 그런데 그 몸으로 어린 새색시 같은 꽃들을 피워내니, 그 속이 참으로 궁금하다. 하지만 눈부시게 화려했던 벚꽃의 향연은 일주일 만에 끝난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는 사실 때문에 늘 찜찜한 느낌이다. 줄기를 흔들 때마다, 바람 한 번에 우수수 쏟아지는 꽃잎들이 진중하지 못한 변덕쟁이 같다. 땅바닥을 연분홍으로 덮어버리는 떨어진 꽃잎들도 유난스럽다. 그래서 정 주기 어려운 꽃이다.
강가의 샛노란 개나리도 칙칙한 서울에 봄을 알린다. 노란색은 별로지만 개나리가 꽃잎을 살짝 드러내기 시작하면 봄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성실하게 늘 자리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서울의 진달래는 어디에 있는가? 봄 꽃 중의 봄 꽃이라고 해도 그리 흔하지 않고, 보여도 떼를 지어 있지도 않으니, 제법 귀한 몸인 듯하다. 개나리, 벚꽃보다 볼 품 있는 꽃잎으로 다소곳이 피어나 화전에도 올리고 술도 담고 약으로도 쓴다니 귀할 만도 하다. 조용하고 정숙한 모습으로 나서지 않는 종갓집 안방마님 같다.
목련을 잊어서는 안 되지. 우람한 빌딩들과 견주어도 그 기세가 죽지 않는 멋진 꽃이다. 그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태 때문에 아름답다는 감탄보다 부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꽃들이 때를 다했을 때 땅바닥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젊음도 아름다움도 한때라는 말이, 그리고 모두 흙으로 돌아갈 몸이라는 것이, 이 봄에 봄꽃들을 보면서 더 많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