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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May 23. 2024

삶이 버거울 때 백팩을 메고 오키나와에 갑니다

소울 오키나와인으로 잠시 살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도시 오키나와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길게 혹은 짧게 글로 남겨두려고 이 매거진을 만들었어요.


저의 삶은 우주에서 보면 아주 짧은 생애지만 누군가 이토록 좋아하는 도시가 있다는 거 자체로 꽤나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좋아하는 도시나 장소가 있다면 언제든 댓글로 남거주세요. 각자가 사랑하는 도시나 장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애정 듬북 담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아 벌써부터 마음 깊숙이 따듯해지는 듯하네요:)



몸도 마음도 모두 한계에 도달해서 더 이상 글조차 쓸 여력이 없던 몇 주간을 보냈다.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삶을 이어나갈 에너지라곤 하나도 없는 모든 배터리가 방전되어 텅 비어버린 버려진 껍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업무와 치료를 병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느꼈다. 아무 여력이 없던 내가 마지막 힘을 다해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라곤 병가 휴직과 퇴사 그리고 가족들에게 내 상태에 대한 일종의 ‘이해’를 받는 것이었다. 즉, 회사를 다니기 싫어 꾀병으로 아픈 것, 병을 앞세워 사회적 활동을 중지하려는 것이 아닌, 정말로 몸의 이상이 생겨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걸 모두에게 절규하며 알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십거리의 중심이 되었단 소릴 전해 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해명할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


갑작스레 몸은 더 안 좋아졌고, 원치 않은 과호흡 증세와 식욕 부진 그리고 티가 날 정도로 체중이 빠지는 등 다양한 몸의 변화는 며칠 사이에 병가 후 퇴사가 결정되었다. 사이사이 진행된 면담에서 몇 번이고 내 진심을 전달했다. 난 정말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달려온 이 시간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내 병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만이라도 내 병을 병으로 보면 안 될 텐데, 나만이라도 나를 정상이라고 괜찮다고 해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


매 면담마다 나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했고, 내가 받은 정과 애정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게 행동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남에게 한 없이 너그러우면서도 나에게만큼은 그러지 못한 자신을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가장 너그러워야 할 대상은 ‘나’였다. 병가 퇴사가 결정된 직후 오키나와행도 결정되었다.


모든 일들이 빠르고,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때, 전화 너머로 엄마가 선뜻 “오키나와 다녀올래?” 라며 먼저 말해주었다. 마음속에서 간절히 원하던 걸 엄마가 대신 말해주었다. 원래 나였더라면 시간을 갖고 생각했겠지만, 그러겠다고 바로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 출근일 다음 날 오키나와 출국이 결정되었다.


오키나와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 가장 크게 앞섰다. 비행기 안에서 내 공황 증세가 더 악화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잠을 조금 설치고 여전히 알람을 전혀 듣지 못했지만, 늦은 비행기 시간 덕분에 별 탈 없이 공항에 도착해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공복에 아침 식후 약을 삼킨 뒤 곧바로 필요시 약을 두 개 연이어 뜯어 입에 넣은 게 전부였던 터라 공항 라운지에서 시금치 뇨끼를 먹으며 나에게 너무나도 큰 호사를 누렸다.


이륙 5분 전, 비행기안에서 완전히 잠에 들었다. 난 비행기에 타면 바로 잔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잠에든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할 때 승무원분이 깨워주셔서 한번 깨어나서 작성한 이후 다시 잠에 들어 착륙할 때까지 잤다.


오키나와 도착

”めんそれ “ 오키나와 방언으로 쓰여진 정겨운 환영 인사를 보고 난 뒤, 마음이 이상하게 놓였다. 역시, 나는 오키나와의 영혼을 갖고 태어난 사람인 걸까? 하지만 난 오키나와 방언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하수인걸. 최근에 새로 사귄 오키나와출신 친구에게 오키나와 도착 소식을 알렸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습하다 못해 숨이 턱 막히는 듯싶었다. 중국 난징에서 느끼던 습함을 오키나와에서 또 느끼다니 새삼 기분이 좋았다. 비는 우산을 찢어놓을 만큼 억세게 내렸다. 그리고 오키나와 출신 친구에게 온 문자, ’ 너 괜찮아? 장마인 거 같아. 호우 주의보 내렸다더라. 네가 있는 곳은 시내라 아마 괜찮긴 할 거야 ‘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난 오키나와에서 혼자가 아니야. 난 이곳 모든 사람들과 함께인 거야. 그렇게 앞 뒤로 배낭을 멘 백패커의 모습으로 오키나와에 올 때 마 오는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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