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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Apr 24. 2024

23살, 나에게 찾아 온 불청객과의 대면

입사 4개월차에 공황/불안/ADHD를 진단 받다

   2023년 12월 어느 날, 여느 아침처럼 출근을 해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당시 입사한 지 4개월이 체 안된 신입 사원이었던 나는 평상시 오전 5시 정각 혹은 5시 30분쯤 침대에서 일어나는 꽤 부지런한 생활을 했다. 다니던 곳이 규모가 있는 외국 회사이다 보니, 자율 출근제를 행하고 있어서,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춰 출근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핸드폰의 알람이 울려 퍼졌지만, 난 도무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늦잠을 자고 싶다거나,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싶다는 투정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누군가 침대 아래에서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얼른 팀장님께 상황을 공유하고, 연차를 냈다.

그렇게 연이어 일주일 정도 일반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다시 집에 와서 누어 잠만 잤다. 하루 17시간 이상을 잤다. 허리가 아파질 때까지 잤다. 최소한의 물과 음식을 먹고, 배설을 하고 다시 잤다. 자의적 취침이 아니라 그냥 누우면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갔다. 링거를 맞으러 병원에 가도 아무런 이상 증상을 찾을 수 없다 했고, 나를 포함한 주위 모두들 몸살로만 알 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회사에 갔다.

하루 종일 아무런 정신도 차려지지 않은 채, 업무를 했다. 당연히 업무 집중도는 상당히 저조했다.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보다 나에게 아무런 욕구가 없었다. 식욕도 당연히 사라졌다.


정신이 하나도 차려지지 않아 생각나는 데로 행동하기로 했다. ‘코 피어싱을 뚫자, 이걸 뚫고도 정신이 안 차려지면 그때 정신과에 가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면 별나다고들 말하는데, 내 생각의 방향은 항상 이런 패턴이라 나에겐 별나지 않은 판단이었다. 퇴근을 하고, 홍대로 갔다. 목적지인 피어싱 가게에 들어가서 피어싱을 고르고, 곧바로 뚫어달라고 말했다. 피어싱 가게에 들어 간지 단 10분도 안된 시간 만에 내 얼굴에 무언가를 뚫는다는 결정을 끝냈다.

뚫는 순간까지도 온몸에 식은땀이 엄청났다. 한 번 마음의 결정할 시간을 두고, 직원이 마음이 괜찮아지면 부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마음을 다시 굳게 잡고 직원을 다시 불러 나의 작은 왼쪽 코에 반짝이는 큐빅을 하나 달았다.

평일이었지만 홍대 9번 출구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신없을 정도로 사람과 차로 가득했다. 그때 문뜩 ‘저 차에 치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의적 죽음에 대해,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정 반대인 사람이다.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글로 쓰거나 말로 해보라 하면 50개 이상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순간적이었지만, 그 생각을 한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집 근처 정신과에 방문하기로 했다.


집 근처 정신과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초진인 지라 간단한 정신 건강 설문을 했다. 그리고 진료들로 들어갔다. 나는 여태 내가 느끼던 증상들을 의사에게 말을 했다.

• 원인 모를 불안함

• 심장이 두근거림

• 호흡이 빨라지고, 숨쉬기 버거움

• 손발이 저리고, 손과 발에서 맥이 크게 느껴짐

•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음(일상생활 불가능)

• 과도하게 잠

등등 당시 내가 느낀 증상들을 말했다. 의사는 공황/불안장애 같다는 말을 했고 일단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 주겠다 말했다. 그리고 뇌파검사를 하길 원했지만, 난 무서워서 다음에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취침 전의 먹는 항불안 제와 안정제가 처방이 되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내원하는 날이 왔고, 나는 이번에 뇌파 검사를 받기로 했다. 검사를 진행하기 전 난 당연히 내가 엄청나게 정상적이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 10만 원이나 내고해야 하는 검사를 의사가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큰 의심 없이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말에 진료실로 들어갔고, 진료실엔 의사 선생님과 나 단둘뿐이었다. 순간의 정적을 깬 건 의사 선생님의 한숨 섞인 걱정의 말이었다. “여태 어떻게 사셨어요?”라는 말로 진료 결과를 차근차근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뇌파 검사의 결과지는 일반적으로 8가지의 각기 다른 뇌파를 색깔로 판명하는 결과였다. 결여가 되었다면 채도 높은 남 푸른색으로, 과도하게 분비가 된다면 적 붉은색으로 말이다. 정상 범위라면 초록색으로 보인다. 의사 선생님의 모니터 속 나의 뇌는 뇌 전체가 적 붉은색이거나 엄청나게 진한 남색으로 나와 있었다. 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조차 알아볼 정도로 붉고 푸른색이었다. 이때,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정상인인데, 지금 이 병원의 환자 중 내가 제일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자신만만하던 몇 분 전의 나는 사라졌다.

검사 결과를 간단히 말하자면, 나의 뇌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안정’을 느끼는 뇌파는 전혀 활동을 하지 않고, ‘불안’을 느끼는 뇌파는 남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지금은 증세가 많이 호전된 것 같지만, 성인이 되기 이전 중증 ADHD였을 것이라 예상된다고도 말해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뇌파 결과를 계속해서 보시면서 의아하다는 듯이 그리고 많이 걱정이 된다는 듯이 여태 어떻게 살았냐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셨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치료에 집중할 것을 여러 번이나 권유하셨다. 치료 기간은 대략 1년 정도 걸리고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호전도를 보고 치료 기간을 더 늘릴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치 처방되었던 안정제와 전혀 다른 약을 아침/점심/ 취침 약으로 나뉘어 먹게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향정신성 약을 먹게 되었다. 약을 2-3주마다 바꿔가면서 몸에 적응시키는 과정을 할 때면, 차라리 입원을 하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몸도 마음도 점차 지쳐갔다. ​내 병에 관해 회사에 공유했고, 업무 조정을 받았다. 집중력 약으로 남용되며 이름이 알려진 ‘콘서타 OROS’의 복용이 시작되었다. 나는 집중력 결여로 의사 진단 하에 치료 목적으로 복용을 하게 된 거라 공부 잘해지는 약이다 하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난 콘서타 복용을 중단하고 싶은 사람이다.

콘서타 처음 복용하던 주는 정말 끔찍했다. 인간의 모든 욕구가 사라졌다. 식욕이 아예 사라졌다. 콜라만 마셨다. 콜라, 영양제, 치료제. 이게 그 당시 내가 섭취하는 영양분의 대부분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일정 기간 18mg를 복용하고, 없어진 식욕에 적응했지만 어느새 27mg으로 약 용량을 올려야 하는 시기가 와버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치아시드, 오트밀, 요거트, 카카오닢스로 요거트볼을 매일 만들어 아침으로 꼬박꼬박 먹었고, 그 후 약을 복용했다. 처음 콘서타를 복용했을 때보단, 확실히 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적응 단계를 이전 보다 더 잘 버틸 수 있었다. 약을 받으러 내원하는 날이었다. 원래라면 그날 콘서타 약을 27mg에서 36mg으로 약을 올려야 했지만, 또다시 적응하는 게 무서워서 한 달만 더 같은 용량으로 복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콘서타 27mg을 한 달 더 복용하던 3 주째가 지날 무렵 내가 다시 고장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몸이 같이 복용하고 있던 약이나, 콘서타 27mg에 완전히 적응한지라 집안일, 업무, 대외활동,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 이전보다 훨씬 윤택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이 딱 일주일 치 남았을 무렵 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 둘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지어 약을 챙기는 것 그리고 먹는 것조차 잊었다. 외부 자극에 취약하단 걸 인지하고 있어서, 유튜브나 OTT를 아예 보지 않고, SNS를 모두 끊었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거나 줌바를 하고, 책과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극도의 우울감에 시달리고 불안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병원에 내원해서 진료를 받았다. 근래 내가 느낀 우울감이나 다양한 몸의 이상 증상을 말씀드렸다. 결론적으론, 내 고집으로 콘서타를 27mg으로 지속 복용한 게 화근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약 먹는 걸 잊었던 날들은 불이 난 차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던 것. 의사 선생님의 입장에선 머피의 법칙처럼 너무나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후, 나는 복용하던 콘서타의 용량을 36mg으로 증량했다. 그리고 또 여전히 약에 적응하는데 미친 듯이 힘들어했다.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세상에 미련이 다 사라진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내 상황을 공유하는 거 자체가 불효라는 걸 알지만, 난 끝이 보이지 않은 그 어둠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난 내 몸과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 기분을 아니 현실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런데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이 가득 남아있는 사람처럼 난 일으킬 수 없는 몸을 침대에 두고 핸드폰으로 쇼핑 어플을 열었다. ’ 무신사‘, ’SSF’, ’Kream’. 패션 온라인 몰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보면서 신상 혹은 리셀 아이템과 옷을 구경했다.


“이 옷 이쁘다. 월급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네. 그래도 품절되면 어쩌지?”


여태 삶의 미련 더 이상 사라진 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하던 내가 얼마 안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멋쩍게 느껴졌다. 난 멋진 옷을 입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유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여전히 그렇다. 난 무기력에 갇혀 몸과 정신이 죽어가는 걸 느껴가면서도, 내 마음 한편엔 여전히 삶에 대한 미련이 가득 남아 있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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